버리지 못한 죄,습관들을 극복하는 법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열왕기하 18:5~6)”

 

믿음의 경주에서 버리지 못한 죄, 습관들로 인하여 계속해서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지 못하고 낙담하거나 뒤로 뒤쳐지는 많은 믿음의 경주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열왕기하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의 행동을 통해 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은 여전히 몇 가지 우상들을 남겨두고 섬겼는데, 히스기야왕은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결정과 더불어 행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가 우리가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과거의 죄, 습관들 그리고 육신적인 좋지 못한 것들을 제거하고 이길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특별히 5절 말씀과 6절 말씀에서 2가지 구절이 히스기야왕이 모든 우상을 제거할 수 있는 비결로 보여집니다. 두 구절은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여호와께 연합하여 입니다. 그는 우상을 제거함에 있어서 철저히 자기 자신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상들을 제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여호와와 연합하였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여졌던 것입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옛육신의 습관과 죄악들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는 비결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된 모습과 습관들을 앞에 두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전히 옛육신의 열심과 옛육신의 방법들로 이것을 극복하고자 애씁니다. 이러한 것들을 조금은 도움이 되는 듯이 보이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실패하고 마는 모습을 여러 번 경험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육신의 좋지 못한 것들은 오직 성령으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를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을 의지하였을 때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는 죄악된 습관들에 더 이상 빠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건넜지만 그는 물에 빠지게 됩니다. 왜 그는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두려움에 빠지게 한 것입니까? 그것은 그가 주목하고 바라보았던 주님으로부터 시선이 다른 것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동일하였지만 그는 어느 순간 영광스러운 주님을 놓치고 주위의 환경을 바라보아서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주님과 동행하게 될 때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 때 죄악된 삶과 이전의 헛된 습관들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놓치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금 이전의 육체의 습관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그 죄를 짓는 원인의 실제는 주님과 멀어졌기 때문에 다시금 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죄악으로부터 건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주님이시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은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과 계속적으로 동행하는 삶(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만이 우리의 모든 좋지 않은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KEY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주님과의 임재를 계속적으로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버리지 못한 죄, 습관들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열왕기하 15:3~4)

 

열왕기하를 읽다 보면 위와 같은 구절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증거되는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특별히 제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두 문구 입니다.


첫 번째로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라는 구절입니다. 이는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희 또한 많은 이스라엘의 왕들과 같이 주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많은 것들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주님 앞에서 행하는 많은 선행들과 깨끗한 양심으로 성도들과 불신자들을 섬기는 많은 행위들이 있습니다 이는 주님 앞에 참으로 값진 것들임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를 읽으면서 제 마음에 주님께서 묵상케 하시는 말씀은 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많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주님 앞에 정직히 행하므로 주님께 칭찬을 받았으나 한가지 크게 잘못한 점이 있음을 성경은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왜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을까요? 여러가지 많은 이유가 있겠지요, 많은 이유 중에서 두 가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위의 말씀에는 백성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백성들이 그 산당을 원해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두 번째로는 그 산당이 계속적으로 있어 왔던 것이라 그것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분명하고도 절실한 목적이 그 왕들에게 없었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 두가지를 개인적으로 묵상케 되었습니다. 이제는 거룩한 신분을 입은 자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이지만, 때로는 하나님 앞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 나의 모습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이지 않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둘째는 그 동안 습관적으로 가지고 있던 죄악된 습관들,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에도 알게 모르게 육신적으로 행하는 습관들을 큰 위험의식 없이 계속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처리하지 않고 그냥 간직하고 있는게 없는지 묵상케 되었습니다. 분명히 저에게는 두 가지 모두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의식하는 행동, 그리고 아직 여전히 버리지 못한 옛 육신의 습관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거룩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산당을 완전히 없애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두고 주님께 기도하며 산당을 완전히 부수어 버리길 소망합니다. 특별히 히스기야 왕이 이 산당을 제거하는 걸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말씀 전체는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는 우리 안에 있는 남아 있는 산당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님앞에 회개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조금씩 남아 있는 옛 육신의 습관들과 주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우상들이 온전히 제거되어 거룩하신 주님만이 우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역사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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