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6일(선교지 8개월차)

 

때로는 말보다, 사진 한장이 주는 메세지가 더 강렬하다.

나의 아들과 키르키즈스탄의 아들보다 조금 어린 여자아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고 한국인이 조금 더 깨끗하고 더 교육을 잘 받았기에 더 우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나는 솔직히 그러하다.

그들보다 더 우월하고 문화적으로 교육적으로 우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교육한다.

 

그러나 나의 아들은 전혀 그러한 모습과 행동을 보인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나의 아들은 여기 키르키즈스탄에서의 무리에서 오히려 열등감 있는 존재로 느낄 수는 있을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을 잘하지 못하며,

단순히 그들과 놀이에 만족해야 하는 

수준이 낮은것이다.

 

'관점'

 

이는 우리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동일하게 보시지만,

우리들은 배워온 교육과 관습, 소속감에 따라서 성경과는 다른 가치관을 많이 가지고 있다.

 

때로는,

아니,

자주 어린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그들도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잘못된 교육, 학습으로 인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단순히 재밌게 놀 수 있고 어울릴 수 있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피부색도, 나라의 배경도, 부모의 배경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우리들은 이러한 배경을 무시할 수 없음을 또한 깨달으며, 절망과 회의감에 빠지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들이 이곳 친구들을 사귀는 마음으로,

내가 이들을 사귈 수 있다면 그것이 선교의 시작이자 끝 아닐까?

 

역사는, 결국 나의 마음 중심에서 시작된다.

 

예수그리스도는 낮은곳으로 오신것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더 낮은곳이라는 생각의 개념속에 갇히면,

내가 그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

 

나도 그들과 동일하다라는 개념이 인식되면,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동일하게 그들에게도 전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된다.

 


2014년 4월 9일 (선교지 8개월차)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교지에 도착해서 1개월이 지난시점에 둘째를 주셨고, 1개월만에 금방 데리고 가셨다. 

https://www.ezrabible.net/154


다시금 시간이 흘러, 아픔을 잊은시점에서 하나님은 다시 둘째를 주셨다. 셋째가 되는건가(?)

새로운 생명을 주신것에 기쁨이 넘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다는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아직까지 언어가 능숙하지 못하고,

이곳의 의료진도 신뢰할 수 없고,

검사를 받지만 그 의사의 말을 신뢰할수가 없다.


이곳에서는 의사를 신뢰하기 힘들기에, 더욱 더 하나님을 의뢰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무엇인가 다 갖춘것이 복이 아니라, 무엇인가 없지만 완전한분이 내 옆에 계신것이 복이다.

한번 아이를 잃은 아픔과

이곳의 의료기관에서의 트라우마가 아내에게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트라우마와 아픔을 극복하게 하시기에 충분하신 하나님이시다.


아들일까 딸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2014년 3월 29일 <선교지 7개월차>


선교사는 무모하다.



우리는 수도인 비시켁에서 6개월을 지내고

이제 본 사역지인 오시를 향해서 출발했다.


짐은 트럭으로 보내고,

차를 보낼 방법이 없어서 직접 가지고 내려간다.


그런데, 가는 길이 무려 12시간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지만


도와주는 분이 계셔서 따라서 내려갔다.

그래도 이곳에서 운전이 아직 익숙치 않은 나에게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래도 방법이 없기에

무모하게 차를 가지고 온 식구를 데리고 내려간다.


가도 가도 끝이 날것 같지 않고,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겠고,

한국처럼 중간에 휴게소가 있는것도 아닌데..


그래도 무모함.

그리고 그 무모함 뒤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는 믿음이

이 모든것을 가능하게 한다.


12시간 길이 고속도로도 아니고

도로는 중간중간 움푹 패여있는곳이 아주 많으며,

높은 산도 올라야 하고,

험한 터널도 지나야 한다.

그리고 높은 산을 다시 내려오기도 한다.


중간중간 퍼져있는 차들이 보인다.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산을 오른다.

여기는 차가 퍼지면 방법이 없다.

그래서 차가 퍼져서는 안된다.

철저한 사전점검과 기도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도 위기상황엔 언제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주신다.

그 믿음으로 내려간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을 향해서..

우리에게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2013년 10월 14일, 선교지 2개월차

계획하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교지 도착하자마자 둘째를 주셨다.
아직 언어도 제대로 못하고, 무엇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상황이었다.
그런데, 둘째의 기쁨을 누리기에도 잠시...병원에서 둘째가 위험하단다.
조산기가 있어서 아내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어느정도 위험한 상태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병원은 사실 신뢰하기가 어렵기에, 한국에 있는 의사에게 물어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무조건 누워있으라고 하고, 한국에서 급히 관련약을 보내주신다고 하였다.

그 약을 기다라며, 그리고 조산기가 사라지길 기도하며 아내는 계속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보낸것 같다.
그 기간에 난생처음으로 집안일을 내 스스로 해야했다.
한국에서도 집안일이 물론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나같이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적 없는 남자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숙제였다.
거기다가 아내는 조산기로 위험한 상황에 있고 아직 첫째도 어려서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최소 한국에서는 밥이라도 시켜서 먹으면 되었지만, 이곳은 그럴수도 없고, 그럴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시켜먹는것 아니라 해먹는것도 재료부터 방법 모든것이 풀기 어려운 숙제! 그 자체였다.
여튼 일주일의 힘든고뇌의 시간을 이겨내면서 다시금 병원을 찾아갔다.

기도도 많이 했고, 한국에도 여러 성도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에 큰 걱정없이, 좋아졌을거란 기대로 병원을 간것이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아기의 심장이 멈췄단다.
그리고 산모가 위험하므로 급히 수술을 해야한다고 얘기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후로 시작되었다.
이곳 병원은 일반적으로 조산의 경우 수술시 마취를 하지 않는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식 의료가 조금 거칠다.

그래서 마취 없이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강압적으로 얘기하였다.
급히 한국의사게에 물어보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그렇게 하는것은 너무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어렵지만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이 좀 걸려도 좋으니 마취를 반드시 하고 수술을 하자고 얘기하였다.
의사는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때 우리를 도와줬던 통역하는 사모님께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통역을 도와주셨던 사모님 남편분이 한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덕에 많은 정보와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게 되었다.

감사히 마취 후 수술을 하게 되었다.
한국병원과는 달리, 이곳은 2차 감염이 많이 일어난다.
이후에 여러차례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하였는데,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끝나고 모든것을 마무리 하고 집에왔다.
사실 이때 나의 아내는 큰 고통속에서 아픔을 호소하게 되었다.
그것은 둘째를 잃은 아픔, 병원에서의 무서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갑작스런 충격.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였고, 기도도 그 어떤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말, 극적으로 그런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었던 아내를 주님께서 건져주셨다.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유산 후 그렇게 길지 않은 어둠의 통로속에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할때 주님이 건져주셨다.

인생에서 정말 우리 스스로 하기 힘든일이 있을때, 그럴때 주님께서는 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뭐라고 설명할순 없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피할길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극적인 도움으로 나의 아내는 둘째를 잃은 유산을 큰 트라우마로 가지진 않게 된것 같다.
오히려 내가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오는 아픔과 눈물이 있다.

아내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수술대위에서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
오직 주님께만 필요를 구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

고통과 아픔은 사람을 성숙시킨다고 했던가...
그러한 것이 우리의 성숙과 또한 그 성숙으로 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계기로 만든것이 주님의 섭리였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주셨던 그 아이를 하나님이 빨리 보고 싶으셨던것일까?

신앙은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분을 신뢰하기위한 것인데..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었을까?

고통과 아픔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아픔은 참 겪고 싶지 않지만...그래도 그 아픔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 또한 적극적으로 겪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모든 내 삶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매순간 고백하는것.
그것이 기도의 삶이고, 신앙인의 삶이고, 크리스챤의 삶이고, 선교사의 삶 아닐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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