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6일(선교지 8개월차)

 

때로는 말보다, 사진 한장이 주는 메세지가 더 강렬하다.

나의 아들과 키르키즈스탄의 아들보다 조금 어린 여자아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고 한국인이 조금 더 깨끗하고 더 교육을 잘 받았기에 더 우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나는 솔직히 그러하다.

그들보다 더 우월하고 문화적으로 교육적으로 우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교육한다.

 

그러나 나의 아들은 전혀 그러한 모습과 행동을 보인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나의 아들은 여기 키르키즈스탄에서의 무리에서 오히려 열등감 있는 존재로 느낄 수는 있을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을 잘하지 못하며,

단순히 그들과 놀이에 만족해야 하는 

수준이 낮은것이다.

 

'관점'

 

이는 우리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동일하게 보시지만,

우리들은 배워온 교육과 관습, 소속감에 따라서 성경과는 다른 가치관을 많이 가지고 있다.

 

때로는,

아니,

자주 어린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그들도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잘못된 교육, 학습으로 인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단순히 재밌게 놀 수 있고 어울릴 수 있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피부색도, 나라의 배경도, 부모의 배경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우리들은 이러한 배경을 무시할 수 없음을 또한 깨달으며, 절망과 회의감에 빠지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들이 이곳 친구들을 사귀는 마음으로,

내가 이들을 사귈 수 있다면 그것이 선교의 시작이자 끝 아닐까?

 

역사는, 결국 나의 마음 중심에서 시작된다.

 

예수그리스도는 낮은곳으로 오신것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더 낮은곳이라는 생각의 개념속에 갇히면,

내가 그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

 

나도 그들과 동일하다라는 개념이 인식되면,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동일하게 그들에게도 전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된다.

 



2014년 3월 29일 <선교지 7개월차>


선교사는 무모하다.



우리는 수도인 비시켁에서 6개월을 지내고

이제 본 사역지인 오시를 향해서 출발했다.


짐은 트럭으로 보내고,

차를 보낼 방법이 없어서 직접 가지고 내려간다.


그런데, 가는 길이 무려 12시간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지만


도와주는 분이 계셔서 따라서 내려갔다.

그래도 이곳에서 운전이 아직 익숙치 않은 나에게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래도 방법이 없기에

무모하게 차를 가지고 온 식구를 데리고 내려간다.


가도 가도 끝이 날것 같지 않고,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겠고,

한국처럼 중간에 휴게소가 있는것도 아닌데..


그래도 무모함.

그리고 그 무모함 뒤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는 믿음이

이 모든것을 가능하게 한다.


12시간 길이 고속도로도 아니고

도로는 중간중간 움푹 패여있는곳이 아주 많으며,

높은 산도 올라야 하고,

험한 터널도 지나야 한다.

그리고 높은 산을 다시 내려오기도 한다.


중간중간 퍼져있는 차들이 보인다.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산을 오른다.

여기는 차가 퍼지면 방법이 없다.

그래서 차가 퍼져서는 안된다.

철저한 사전점검과 기도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도 위기상황엔 언제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주신다.

그 믿음으로 내려간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을 향해서..

우리에게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2014년 3월 13일(선교지 7개월차)





나는 두부요리를 좋아한다.

참 좋아하는것도 그렇게 비싼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이곳 선교지에는 두부가 없다. ㅠㅠ

아..


두부만 없는게 아니고

돼지고기도 없고.

없는걸 찾자면..끝도 없다.

다 없는것 같기도 하다. 


다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없는게 더 잘 보인다.

두부를 평생 못먹을 생각을 하니..

괜찮다가다..또 생각이 날때가 있다가..어차피 생각해도 못 먹으니 포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식탐도 줄어들게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나의 아내가 만능 요리사라서..

내가 좋아하는 두부를 직접 만들어 줬다.


콩을 구하고..

두부를...어찌어찌..기계도 없이..어떻게 만들어 냈다.

대단하다!!

감탄에 감탄!!!!


맛도 대박이다!!

아니...다 맛있다..여기서는.

왜냐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어떤 두부맛집보다도 맛있다.


이래서..

사람은 잃어봐야 안다.

있을때는 모르나..없어져보면 감사를 알게 된다.


선교지의 축복은.

감사를 알게 된다는 것이고.

잃은게 많기에..존재함에 대해서 감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기본적으로 선교사들은 음식들에 대해서 겸손하다.

그렇다고 선교사들이 입맛의 수준이 낮다는것은 아니다.

겸손하다는것으...그 어떤 음식에 대해서도 감사히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교지에는 없으니깐..


없으면..다 맛있다.!!


두부에..

나는 아내의 사랑을 엄청 경험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결코 맛보지 못했을...아내의 두부사랑!!



2014년 3월 8일 (선교지 7개월차)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얻는 유익이 여러가지가 있다.

여러가지 유익중에서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것이 큰 유익이 아닐까 한다.


특별히 한국사람들은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힘든 나라에서 지낸다.

단일민족. 단일언어,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있지 않은 나라에서 평생을 지낸다.

물론 가끔 해외여행도 가고, 언어연수도 가고 하지만..그런 사람도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한 민족, 한 언어, 한 문화속에서 평생을 지낸다.


여기저기 다른 나라들을 여행해본 이들이 많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으로 단일문화속에서 사는 이들은 의외로 적다.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은 2-3언어를 사용하고 다민족으로서 삶을 영위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타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고, 자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자문화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구지 이해하고 배울 필요가 없이 이것이 당연하다라고 느끼고 배우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문화적 차이를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문화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해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문화를 공부해본적은 없는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스스로 필요를 느껴서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이다.

어쨋건, 선교지에 와서 얻는 유익중 큰것은 자문화와 타문화에 대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토요일 아침 밖에서 무슨 큰 소리가 나서 창문을 열어서 보았더니 저런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우리집은 아파트 4층이었는데, 반대편 아파트에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아니 본적이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프로포즈를 하거나, 아니면 생일축하를 하거나, 기념일을 축하하거나..등이었을 거다.

어쨋건..저런 기가막힌 장면을 볼 수 있는것도 이곳의 유익중 하나다.


공사에 사용하는 리프트카를 사용해서 창문으로 많은 양의 풍선을 보내고자 하는...

역시나 세상 어디를 가도 러브스토리만큼 기막힌 스토리는 없는것 같다.

상상할 수 있는, 그리고 현실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일들을 'Love'는 가능케 한다.





풍선이 집에 다 들어가지를 않는다.

이런 기막힌 일이...


토요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것은..

이토록 사람들로 하여금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고 신나게 하는 일이다.


이곳에서 겪게 될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은 기쁨과 즐거운 일들이 어디서나 일어난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의 러브스토리는...

국가와 민족과 문화..그 모든것을 초월해서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다.









2013년 10월 14일, 선교지 2개월차

계획하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교지 도착하자마자 둘째를 주셨다.
아직 언어도 제대로 못하고, 무엇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상황이었다.
그런데, 둘째의 기쁨을 누리기에도 잠시...병원에서 둘째가 위험하단다.
조산기가 있어서 아내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어느정도 위험한 상태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병원은 사실 신뢰하기가 어렵기에, 한국에 있는 의사에게 물어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무조건 누워있으라고 하고, 한국에서 급히 관련약을 보내주신다고 하였다.

그 약을 기다라며, 그리고 조산기가 사라지길 기도하며 아내는 계속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보낸것 같다.
그 기간에 난생처음으로 집안일을 내 스스로 해야했다.
한국에서도 집안일이 물론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나같이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적 없는 남자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숙제였다.
거기다가 아내는 조산기로 위험한 상황에 있고 아직 첫째도 어려서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최소 한국에서는 밥이라도 시켜서 먹으면 되었지만, 이곳은 그럴수도 없고, 그럴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시켜먹는것 아니라 해먹는것도 재료부터 방법 모든것이 풀기 어려운 숙제! 그 자체였다.
여튼 일주일의 힘든고뇌의 시간을 이겨내면서 다시금 병원을 찾아갔다.

기도도 많이 했고, 한국에도 여러 성도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에 큰 걱정없이, 좋아졌을거란 기대로 병원을 간것이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아기의 심장이 멈췄단다.
그리고 산모가 위험하므로 급히 수술을 해야한다고 얘기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후로 시작되었다.
이곳 병원은 일반적으로 조산의 경우 수술시 마취를 하지 않는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식 의료가 조금 거칠다.

그래서 마취 없이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강압적으로 얘기하였다.
급히 한국의사게에 물어보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그렇게 하는것은 너무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어렵지만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이 좀 걸려도 좋으니 마취를 반드시 하고 수술을 하자고 얘기하였다.
의사는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때 우리를 도와줬던 통역하는 사모님께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통역을 도와주셨던 사모님 남편분이 한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덕에 많은 정보와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게 되었다.

감사히 마취 후 수술을 하게 되었다.
한국병원과는 달리, 이곳은 2차 감염이 많이 일어난다.
이후에 여러차례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하였는데,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끝나고 모든것을 마무리 하고 집에왔다.
사실 이때 나의 아내는 큰 고통속에서 아픔을 호소하게 되었다.
그것은 둘째를 잃은 아픔, 병원에서의 무서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갑작스런 충격.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였고, 기도도 그 어떤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말, 극적으로 그런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었던 아내를 주님께서 건져주셨다.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유산 후 그렇게 길지 않은 어둠의 통로속에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할때 주님이 건져주셨다.

인생에서 정말 우리 스스로 하기 힘든일이 있을때, 그럴때 주님께서는 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뭐라고 설명할순 없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피할길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극적인 도움으로 나의 아내는 둘째를 잃은 유산을 큰 트라우마로 가지진 않게 된것 같다.
오히려 내가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오는 아픔과 눈물이 있다.

아내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수술대위에서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
오직 주님께만 필요를 구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

고통과 아픔은 사람을 성숙시킨다고 했던가...
그러한 것이 우리의 성숙과 또한 그 성숙으로 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계기로 만든것이 주님의 섭리였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주셨던 그 아이를 하나님이 빨리 보고 싶으셨던것일까?

신앙은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분을 신뢰하기위한 것인데..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었을까?

고통과 아픔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아픔은 참 겪고 싶지 않지만...그래도 그 아픔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 또한 적극적으로 겪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모든 내 삶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매순간 고백하는것.
그것이 기도의 삶이고, 신앙인의 삶이고, 크리스챤의 삶이고, 선교사의 삶 아닐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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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 begins at home, 2013년 8월 11일, 선교지 1개월차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다. 사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참 공감이 되는 말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집’이 가지는 의미가 참 많지만 공통적으로 ‘안식’,’쉼’ 이란 단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그러한 안식과 쉼은 가정에 ‘사랑’이 있는것을 전제로 우리가 느낄수 있는 감정들이다.

우리의 삶의 시작이 되는 장소는 ‘집’이고, 그 집의 근본은 ‘가정’이다. 그러므로 집은 우리 모두에게 참 의미 있는 공간이다. 우리의 선교지에서의 시작이 되었고 마침이 되는 장소는 바로 이 ‘집’이었다.

처음 도착 후 우리의 안식처가 되었던 장소이다. 원래 들어가기로 예정되었던 집이 공사를 하게 되어서 조금 작은 이 집을 임시거처로 있게 되었다. 분명 집 주인은 2주면 공사가 끝난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2주면 끝난다는 공사가 2-3개월이 될줄은 전혀 몰랐다. 암튼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집에서의 추억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선교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도착후 1주일은 관광객 모드로 지냈던것 같다. 일반적으로 학생비자부터 시작하므로 우리또한 러시아어학과정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학원을 등록하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비자가 발급되기까지 시간이 있었고 초반에 정착하기 위해서 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까지는 관광객 모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곳에 대해서 적응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러시아어를 조금, 정말 조금 공부했었다. 그 덕분에 서바이벌은 하였지만, 말이 서버이벌이지...정말 개고생(—)했다. 언어의 장벽. 그것은 우리를 여러번 낙담케 하는 주된 소재였고, 우리를 겸손케 하는데 최고의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근데 재미난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단한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고,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걸 경험하게 되었다. 낯선 환경, 너무나 한국과는 다른 집의 구조, 언어의 장벽, 모든것들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곳에서 너무나 잘 자고 잘 먹고 잘 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것, 아니 어렵게 얻을 수 있는것이더라도 이곳에는 못 얻는 것들이 많다. 구할수 없고, 불가능한 환경이 주어지면 사람은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고 그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태도로 빠르게 바뀔 수 있다. 또 새로운 것들을 즐기고 경험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적응이라는것, 그것은 기존의 것을 바꾸는 고통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즐거움도 있다. 결국 우리의 지경이 넓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것은 하나님을 더욱 더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광대하신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해준 첫 집.
내 인생에서, 우리 가족의 인생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집이기에 참으로 소중하다.
나는 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앞이 막막하고 두려울때, 그것을 지나가면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된다.
그길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이라면, 주저하지 말자!
두려움은 금세 사라지고 그분의 광대하심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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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도착, 설레임. 2013년 8월 8일

32세, 이제 인생을 막 시작하는 나이에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과 함께 선교지 땅을 밟게 되었다.
강성 이슬람은 아니었지만, 이슬람 국가이기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함께 이곳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우리 가족은 기쁨으로 도착하였다.
모든것을 버리고 이땅에 도착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모든것을 버려야 얻을 수 있는것이 더 많기에 우리는 더 얻기 위해서 이곳을 선택한것이었다.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가끔씩 드는 두려움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있을 수 있지만 이때는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것 같다.
단지, 젊은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에 여러가지것들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분명 주님 앞에 진실되게 한 기도였고, 주님 앞에서 한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잘 몰랐다.

사실, 우리를 잘 안다고 한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를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그 분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기에 우리는 이 일을 아무런 두려움과 걱정없이 전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키르키즈스탄 비쉬켁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우리 홀로 도착한것은 아니었고,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함께 이곳 낯선곳에 도착하였기에 더욱 우리의 두려움은 감추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는 27세였다.
요즘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이들이 많지만, 나의 아내는 나를 믿은건지, 하나님을 믿은건지, 둘다를 믿은건지 암튼 감사하게 나를 믿고 결혼해주었다.
그리고 신혼을 채 누리기도 전에 아들을 임신하고 아들을 낳고 한참 아이를 키워야 할 시기에 이곳 선교지를 함께 오게 되었다.

사실,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아내다.
겉으로는 남자들이 사역을하는것 같지만, 실제 보이지 않는곳에서 엄청난 수고를 하는건 아내의 몫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선교의 부르심을 받는것 이상으로 아내의 선교에 대한 부르심은 더욱 확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쉽지 않은 선교지에서의 삶에서 버텨내질 못한다.

감사한것은, 나보다는 아내가 훨씬 선교지에서 더욱 잘 살아냈던것 같다.
많은 순간 힘들어한 건 나였으며, 아내는 오히려 선교지에서의 삶을 즐기고 감사하며 생활해 가는걸 옆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더욱 중요한 위치에 있긴 하다.
연약한 자에게 더욱 중요한 자리를 맡기신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까?

나는 연약하였고, 많이 부족하였기에 더욱 하나님께 엎드릴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기대와 설레임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한 부푼 마음을 가지고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고 밖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선교사에게 얼마나 감사와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 단체에 속해있지도 않았고, 어떠한 도움을 현지에서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줄 천사들을 항상 마련해놓고 준비해놓고 계셨다.

하나님을 의지하는것이 맞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분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또 한번 보게 된다.
분명 이때 느꼈던건, 어떠한 어려움과 두려움 고통보다는 설렘, 희망, 도전등의 더욱 진리와 진실에 가까운 감정들이었다.
결국 우리 인생을 이끄는건 희망과 비전, 설레임, 기쁨인것 같다.
미래가 희망적이고 도전적이고 열매들이 기대될때 우리는 설레이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게 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죽음'까지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할 '담대함'이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이다.
분명 이때 우리는 그러한 높은 수준의 감정과 기대로 휩싸여 있었다.
그러한 소망과 비전은 우리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명기 1장 30~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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