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삶의 짐의 무게는 어떤가요?

 

마태복음 11장 28~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나라

 

휴가시즌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바캉스'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놀고, 먹고, 즐기고 등등이 떠오른다.

아니면, 이곳저곳 많은곳을 다니는 그러한 여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캉스(vacance) 말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인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또는 "비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많은 변화로 인하여 이러한 비움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너무 삶이 고되고 힘들어 모든것을 내려놓고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속에서 볼 수 있는듯 하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비울때 다시금 채워지는걸 경험하는 문화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참된 쉼, 휴가란 무엇일까?

 

우리는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인생은 각자 나름의 무겁고 힘겨운 짐을 지니고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는 말씀이다.

 

28절보다 중요한 말씀은 29절인데,

이유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쉬게 하실 수 있는지와 어떤 쉼을 줄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29절에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29절 마지막에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우리 삶의 여러가지 문제들, 어려운 점들, 짐들의 원인을 곰곰히 따져보면,

대부분 걱정과 염려, 근심등 마음의 문제임을 우리가 알 수 있다.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초조함으로 인하여 현재를 잘 살지 못하는 현상들.

그리고 현재의 괴로움이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들.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의 대부분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쉼은 우리의 환경이 나아지거나,

삶의 불편한것들이 해소되고 더 나은 삶이 되는것이 아니다.

분명 우리의 삶의 배경, 환경들은 이전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고, 더 좋아질 수도 있다.

주변의 환경들, 나의 일의 성취 등 많은것들이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할지라도 나의 마음은 괴로울 수 있다.

많은것들이 이전보다 더 나빠지고 있더라도 나의 마음은 기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은 어떻게 기뻐하고 평안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쁨과 평안 가운데 계신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본인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 이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배우게 될때, 우리도 진정한 쉼을 얻고 누릴수 있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울때 우리 삶은 항상 휴가처럼 쉼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멍에를 주신다고 하셨다.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멍에' 를 잘 메고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게 될때,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멍에의 특징 중

첫번째는 쉽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가볍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감당하고 짊어지고 있는 짐이 혹시 무겁고 어려운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멍에가 아닌 나만의 멍에나, 다른 욕심의 멍에를 메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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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Great Commision, 그리스도의 대명령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구절이다.

사명 VS 사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사는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것들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사명'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무엇인가?

각자마다 은사가 다르고 부르심이 다르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다.


1.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2. 세례(침례)를 주고, 

3.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바를 가르쳐 지키게 하는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첫번째 사명은 제자를 삼는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그리스도를 닮도록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양육하고 본을 보여서 가르치는것이다.


우리는 사명이라고 하면 여러가지것들을 떠올린다.

여러가지 교회의 사역이 있고 헌신(헌금,시간을 드림, 재능,은사를 드림)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과 헌신은 '사명'이라는 큰 목표 아래에서 실행된다.

이러한 활동들은 중요하고 계속해서 이땅에 살면서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때로는 사역과 사명이라는 명분하에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된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사람에게 있어서 '일', '사역'은 어떤 면에서 기쁨이고 성취감을 주게 된다.

영적인 일이든 그렇지 않은일이든 성취감은 우리로 하여금 일을 계속하게 되는 동기를 준다.

이러한 동기는 좋은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기가 지나치게 되면 본질적인 사명인 사람을 낳는일에서 멀어지게 된다.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일에서 시작하였다가, 그 본질에서 벗어나 활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활동에는 대부분 큰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활동에는 물질과 숫자와 눈에 보이는것들, 사람들의 명성, 칭찬이 뒤따르는 일들이 많다.

분명 영적인 활동들이 분명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러한 활동들 뒤에 일부의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벌어진다.

분명 이상한 일이다.


예수님은 어떠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셨다.

그들 스스로 떠난적은 있지만 예수님께서 강제적으로 권위적으로 부족함으로 그들을 떠나 보내게 한적은 없다.

예수님은 끝내 자신을 배반할것을 아셨던 가룟유다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사명을 명분으로 삼아 사람을 쉽게 버린다.

내 말을 잘 듣는이들을 제자로 삼고, 그렇지 않은이들은 버리게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정치. 이것과 다를바가 없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혹, 내가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하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이 상처받고 자꾸만 떠난다면....

다시금 나를 되돌아봐야 할것이다.

많은 사역의 열매와 눈에 보이는 숫자들보다도 중요한것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한 영혼의 가치이다.

혹.. 내 주위에 사람들이 자꾸 떨어져 나간다면, 지금부터라도 한 영혼을 주님처럼 가치있게 여기는 일을 훈련해야 할것이다.


한명의 제대로 된 제자를 삼는것이,

수만명이 모이는 대형교회 목회를 하는것보다 주님 앞에 큰 칭찬이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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