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다 큰 좌절과 혼돈속에서 방황할때가 있다.

삶의 고난은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고난은 그저 우연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고난일 수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고난일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되었든,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우리는 그 속에서 숨겨진 하니님의 뜻을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러가지 고난중에서 우리를 아주 혼란스럽게 하고,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는 고난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때 극도로 어려워하고 심한 경우 자살에까지 이르게도 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것이 필요한데,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사실상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주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섭리가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승승장구하던 사업가가 하루아침에 사업이 망하는 경우가 있고,

대기업 임원에 대표까지 승진하였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권고사직등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어떠한 일도 못찾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그뿐인가? 잘 나가던 운동선수가 부상으로 인하여 더 이상 운동선수 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유명한 연예인이 교통사고로 더 이상 연예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위기에서 잘 이겨내는 사람도 있지만, 계속 어려움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위기가 본인에게 다가왔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특별히 내 정체성이 어떠한 사회적인 위치나 직업에 올인되어 있던 사람들의 경우 아주 위험할 수 있다.

그들의 정체성은 사회적 위치와 직업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러한 위치와 직업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큰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의 자존감은 극도로 떨어지고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으로 인하여 심한 우울증에 다양한 정신질환을 겪게 된다.

 

이러한 일이 내 삶에 벌어질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1:11~12)

 

 

예수님이 광야로 시험받으러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고 진정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것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께 '내 사랑 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말을 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 내셨다.

 

아주 적극적인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다만, 광야의 시험전 성부 하나님의 처방전이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이 말 한마디였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 하나님의 태도 였다.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리고 이 천지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위치에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결과물을 낼때 그 결과물로 인하여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많이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우리들이 좋은 결과물을 내지 못할때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비난, 무관심한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세상은 실로 그러하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갈것이기 때문에 열매와 결과물들에 우리의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신다.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기뻐하신다.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하나님의 작품이므로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들이다.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으로 기뻐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다시 일어서서 어깨를 당당히 펴고, 우리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신 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실로 그러하기에

우리의 믿음을 어디에 두고 사는지가 중요하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2차 세계대전 끝날 무렵 생애 마지막 순간 베를린 감옥에서 쓴 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마치 지주가 자기 저택에서 나오듯

침착하고, 쾌할하고, 당당하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명령하는 권한이 있는 듯

자유롭고, 친근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하는 데 익숙한듯

평온하고, 미소 지으며, 당당하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나 자신이 아는 그런 존재일 뿐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뭔가를 갈망하며 병든,

손들이 내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가쁜,

빛깔과 꽃들과 새 소리에 굶주린,

친절한 말과 이웃에 목마른,

압제오 사소한 모욕에 분노로 치를 떠는,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는,

무한히 멀리 있는 친구들로 인해 힘없이 슬퍼하는,

기도하고, 생각하고, 만드는 데 지치고 허무해진,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나는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

내 앞에서는 한심스러울 만큼 슬픔에 잠김 약골인가?

아니면 이미 성취된 승리로부터 혼돈 가운데로 도망치는,

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패잔병 같은 그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나를 조롱하고 이 고독한 질문을 비웃는다.

내가 그 누구든지, 오 하나님 당신은 아나이다.

내가 당신 것인 줄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