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Great Commision, 그리스도의 대명령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구절이다.

사명 VS 사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사는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것들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사명'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무엇인가?

각자마다 은사가 다르고 부르심이 다르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다.


1.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2. 세례(침례)를 주고, 

3.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바를 가르쳐 지키게 하는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첫번째 사명은 제자를 삼는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그리스도를 닮도록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양육하고 본을 보여서 가르치는것이다.


우리는 사명이라고 하면 여러가지것들을 떠올린다.

여러가지 교회의 사역이 있고 헌신(헌금,시간을 드림, 재능,은사를 드림)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과 헌신은 '사명'이라는 큰 목표 아래에서 실행된다.

이러한 활동들은 중요하고 계속해서 이땅에 살면서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때로는 사역과 사명이라는 명분하에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된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사람에게 있어서 '일', '사역'은 어떤 면에서 기쁨이고 성취감을 주게 된다.

영적인 일이든 그렇지 않은일이든 성취감은 우리로 하여금 일을 계속하게 되는 동기를 준다.

이러한 동기는 좋은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기가 지나치게 되면 본질적인 사명인 사람을 낳는일에서 멀어지게 된다.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일에서 시작하였다가, 그 본질에서 벗어나 활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활동에는 대부분 큰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활동에는 물질과 숫자와 눈에 보이는것들, 사람들의 명성, 칭찬이 뒤따르는 일들이 많다.

분명 영적인 활동들이 분명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러한 활동들 뒤에 일부의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벌어진다.

분명 이상한 일이다.


예수님은 어떠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셨다.

그들 스스로 떠난적은 있지만 예수님께서 강제적으로 권위적으로 부족함으로 그들을 떠나 보내게 한적은 없다.

예수님은 끝내 자신을 배반할것을 아셨던 가룟유다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사명을 명분으로 삼아 사람을 쉽게 버린다.

내 말을 잘 듣는이들을 제자로 삼고, 그렇지 않은이들은 버리게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정치. 이것과 다를바가 없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혹, 내가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하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이 상처받고 자꾸만 떠난다면....

다시금 나를 되돌아봐야 할것이다.

많은 사역의 열매와 눈에 보이는 숫자들보다도 중요한것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한 영혼의 가치이다.

혹.. 내 주위에 사람들이 자꾸 떨어져 나간다면, 지금부터라도 한 영혼을 주님처럼 가치있게 여기는 일을 훈련해야 할것이다.


한명의 제대로 된 제자를 삼는것이,

수만명이 모이는 대형교회 목회를 하는것보다 주님 앞에 큰 칭찬이 있을 수도 있다.


아가서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에 기록된 2장 10절을 주님의 음성으로 듣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함께 갈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스런 목소리가 느껴지고, 나를 너무나 이뻐하는 주님의 마음이 전달된다.
그리고 저러한 음성을 직접 듣고 그 누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도 아가서와 같은 말씀이 직접 들려진다면 어떠한것 고려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길을 갈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요, 정상적인 제자들의 반응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신약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하셨다.
마가복음 14: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아가서 말씀과 마가복음 말씀은 같은 말씀이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분명 예수님은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였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뒤에 자기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고 부연설명까지 해주셨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것 같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니깐 그냥 기쁨에 아니면 순종하는 마음에, 스승을 따르는 제자들의 당연한 도리로 따라갔을까?

제자들이 분명 예수님이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였을때, 따라 왔다.
그러나 그 뒤의 말씀이 우리를 되돌아 보게 한다.

마가복음 15: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셨다.
제자들이 그 음성을 듣고 일어나서 함께 가려고 하였지만,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흘러가니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했다.
모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에게 함께 갈 것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렸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가자는 음성을 듣기를 좋아하는것 같지만, 실상은 그것을 두려워하는것 아닐까?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길로 주님이 우리를 이끄실때는 기뻐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다른 길들로 인도받을때 그 길에서 도망치지는 않는가?

십자가의 길, 분명 좁은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무리가운데에서도 적은 이들이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길을 걸었고, 지금도 여전히 소수지만 이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 예수님이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할때 함께 갈 수 있는가?
제자들도 모두 함께 가는 행동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모두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는가?
제자들이 왜 예수님을 버렸는지 묵상해볼 필요가 있고, 예수님이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그 음성에 우리는 조금 더 신중하게 응답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길이 험하고 남들의 비방을 받고 버림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 마지막에 영광스런 주님께서 우리를 맞아 주실것이다.
세례요한의 마지막이 목베어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는 목베이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가셨던 그 길을 가는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린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버려도 된다는 당위성을 제공하진 않는다.
먼저 제자들이 한 행동을 교훈삼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드럽고 사랑스런 음성에 신중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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