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읽을 수 없다. 알수도 없다. 때로는 본인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모른다.
 -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신다. 나의 마음속도 알고 계시므로 어떠한 것도 숨길 수 없다.

12절.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모두 씻기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 주님이 행하신 이 일을 제자들이 아는지 물어보신다.
 - 모르는걸 아셨을텐데, 그들로 하여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하시는것 같다.

13절.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 제자들중에는 예수님을 선생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었고, 주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선생님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주인으로 여기는지 진지하게 물어봐야 한다.

14절.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인이셨다. 그리고 선생님이셨다. 그것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예수님이 그렇게 되셨다.
 - 어떤이에게는 선생님이었고, 어떤이에게는 주님이셨다. 
 - 실제로 예수님은 모든이들의 주인이시지만 그 결정권을 그것을 주인으로 받아들일 사람들에게 양도하셨다.
 - 그러므로 실제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주님이시지만, 그것을 절대로 강요하시지 않으신다.
 - 언제나 인격적으로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기를 원하신다.
 - 왜냐면 그분이 인격적이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를 창조할때도 그러하였고, 구속사도 그러하였고, 성화의 삶도 그러하다.
 - 아마 영원의 세계에서도 동일하실것이다. 그분은 변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대하는지가 지금의 삶에서도 이 삶이 마감하고 영원의 삶에서도 너무나 중요한 요소가 된다.

 -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중요한 것을 알려주신다.
 - 자신이 우리의 주인 또는 선생님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은것 처럼 너희들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말씀이었다.
 -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다투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서로서로 섬기는 것을 원하셨다.
 - 그 섬김은 실제로 행하는 삶으로 나타내 보일것을 원하셨다.
 -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섬김을 실천하고 있고, 이러한 섬김의 대상은 누구여야 하는가?

15절.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원동력은 말보다는 행동이다.
 - 예수님은 직접 행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다.
 - 성경학자 에스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한 후에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 가르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의 삶에 말씀을 적용하는 일이 있은 후에 가르치는 것이 성경의 기본적인 원리다.
 - 예수님은 그 본을 보이셨고 그렇게 행하도록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 우리는 말만 하는자들인가? 아니면 직접 행함으로 보이는 자들인가?

16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
 - 그리고 보냄을 받은자가 보낸자보다 크지 못하다.
 -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 보다 크지 못하다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셨다.

17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우리의 행함에 있어서 행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 예수님은 우리의 행동의 모든 것의 이유를 알고 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가르쳐 주신다.
 - 우리가 행동하는 것의 이유를 알때 우리에게 복이 넘칠 것이다.

18절.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셨다. 그리고 그 택하신 자들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
 - 그러나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택하심에서 제외가 되었다. 그 택하심의 제외는 누구의 선택인가?
 - 예수님께서 그렇게 선택하신것인가? 아니면 가룟유다 본인이 선택한 것인가?
 -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이 가룟유다에게 행하신 행동들을 본다면, 그것은 가룟유다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고 많은 부분 생각해 볼 수 있다.
 - 예수님은 계속 기회를 주셨지만 가룟유다는 끝내 그 모든 기회를 거절하고 자신의 길을 갔다.
 - 지금도 동일하게 예수님은 모든 인류에게 동일한 기회들을 계속적으로 베푸시고 계신다.
 - 그러나 죄에 빠진 인류가 끝내 자신의 길을 고집한다면, 예수님도 강제로 그들을 구원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19절.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황스러워 할 일들을 미리 아셨다.
 - 그리고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할 것들도 모두 아셨다.
 - 그 일이 일어날때 제자들이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셨다. 
 - 그러나 실제 십자가 사건이 있었을때, 그 순간 그 사건을 이해하는 제자들은 없었다.
 -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알려주신다.
 - 그리고 여러 상황을 통해서 그러한 일을 당할때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하여야 하지만 대부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신뢰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신뢰를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 혹 우리가 신뢰하지 못했다면, 너무 자책하지도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그것 조차도 아셨기 때문이다.
 - 다만 어떠한 행동을 우리가 보였건, 우리가 예수님 안에 계속 거하고 있고, 믿음의 길에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한층 더 성숙해 질 것이다.
 - 우리가 무엇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보다 중요한건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고 그분이 어떠하신가 이다.
 - 우리는 항상 우리 스스로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하신다.
 - 나는 나를 어떻게 보는가? 예수님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보는가? 아니면 내 스스로의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는가?

20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 그러므로 예수님을 잘 아는 이가 성부 하나님을 잘 모를리 없고
 - 성부 하나님을 잘 아는 이가 예수님을 잘 모를리도 없다.
 - 또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잘 아는 이가 성령 하나님을 잘 모를리도 없다.
 - 세분의 속성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동일하신 속성을 가지고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에 대한 이해가 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분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전부를 잘 모를 수도 있는 일이다.
 - 나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에 대한 오해는 없는가?
 - 혹 한분에게만 더 친근한것 같지는 않은가?

 -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이긴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우리에게 다가오는 실제적인 상황을 현실감 있게 이해할 필요는 있는것 같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다

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는 날이 다 되었다.
 -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의 사명을 다 끝마치고 사랑하는 아버지께 돌아가는 기쁜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 그 시점에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기쁨이 넘치셨을까?, 십자가에서 당할 고난의 아픔이 생각이 되셨을까? 제자들이 자기를 부인할 일을 앞에 두고 마음이 아프셨을까? 
 - 1절의 마지막에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는데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이 자기사람들에 속한 이들이 누군지 살펴보면 더욱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깨닫게 된다.

2절.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가 등장한다.
 - 본 말씀에는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실제 마귀는 인생들에게 악한 생각을 넣고자 하고 그 행동을 하게끔 유도한다.
 - 인류 최초에 하와에게 그러했던 일이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일을 함에 있어서 이것이 어디로부터 온 생각인가를 점검해보는것은 중요하다.
 - 그러나 마귀가 어떠한 생각을 우리에게 줄수 있을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정하는건 우리에게 있다.
 - 결국 어떠한 일의 책임을 마귀에게로 돌릴순 없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이 지는 것이다.

3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 성부 하나님은 모든 일을 성자 하나님께 맡기셨다.
 -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님은 자기가 이땅에서 성취해야 할 사명을 확신하고 이제 사랑하는 아버지께 돌아갈 것 또한 아셨다.

4절.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 3절에는 저녁을 먹는중이었고, 그런 와중에 일어났는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 보통 식사시간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시간은 아니었으므로, 전체 저녁이후의 시간을 의미할 수도 있다.
 - 중요한건 예수님께 맡겨진 사명을 이루기 바로 전에 행하시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배울 것들이다.
 - 예수님은 자신의 겉옷을 벗으셨고 수건을 가지고 오셨다.

5절.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 그리고는 직접 대야에 물을 받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제자들의 발을 닦기 시작하셨다.
 - 이 제자들중에는 이미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기로 작정한 가룟유다도 있었다.
 - 예수님이 자신의 발을 씻기시고 닦으실때 가룟유다는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 그리고 그 발을 씻고 닦는시간이 짧은 시간이 아니었기에 침묵가운데 행하지만은 않았을수도 있다.
 - 여러 대화를 하셨을 수 있는데, 어떠한 대화가 오고 갔을까?
 - 아니 그러기를 원치 않지 않았을까?
 - 예수님은 어떻게 보면 원수같은 가룟유다를 친히 자신의 손으로 그 더러운 발을 씻기시고 닦으셨다.
 - 그러므로 1절에 예수님께서 자기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은 실로 진실이다.
 - 예수님은 자신을 파는 가룟 유다도 끝까지 사랑하셨다.
 - 비록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이에게도 동일하게 자신의 사랑을 베푸는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사랑이다.
 - 나는 나에게 좋게 대하는 이들에게는 잘 대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떻게 대하는가?
 - 원수같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베풀 수 있는가?
 - 성경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것 같다.

6절.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 종이 주인의 발을 씻기는 것이 정상인데, 예수님은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셨다.
 - 예수님은 자주 우리의 상식을 깨는 행동을 많이 하셨다. 그런 행동을 통하여 우리의 가치관의 변화를 주고자 하신 것 같다.
 - 당연히 종이 주인의 발을 씻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가치관
 - 그러나 예수님은 주인이 종의 발을 씻는것이라고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셨다.
 -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 상식적인 생각, 그리고 이 땅에서 일반적으로 그러하다고 믿는 가치들, 그 모든것들 위에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
 - 그러한 가치관의 변화가 올때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때가되면 주님께서 우리의 한계가 있는 가치관의 영역도 넓히시리라..

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지금 당장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하시지 않으셨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것이라는 생각은 있으셨다.
 - 그날을 기다리면서 제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행동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자 하셨다.

8절.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 베드로는 왜 예수님이 하시는 행동을 그냥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결국 예수님이 행하셨고 설명도 해주셨지만 베드로는 받지 못한다.
 - 그리고는 예수님의 행동을 저지한다. 그 저지된 행동 끝에 예수님은 이 행동이 없으면 너와 상관이 없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베드로에게 권유한다.

9절.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 그제서야 베드로는 예수님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발뿐이 아닌 손과 머리까지 씻겨달라고 한다.
 - 베드로는 왜 씻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다만 예수님이 그렇지 않으면 자기와 관계가 없다고 하시는 말을 믿었을 뿐이었다.
 - 베드로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이 대목에서 또 확인할 수 있다. 

1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으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 예수님은 제자들이 깨끗함을 알려주셨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라고 하셨다.
 - 이는 가룟유다를 두고한 말임이 분명하셨다.

11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자신을 팔지 아셨다.
 - 그러므로 가룟유다를 염두해 두고 이 말씀을 하신것 같다.
 - 끝까지 가룟유다가 회개하고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촉구하시는 듯한 말씀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동일한 사랑을 베푸셨다.
 - 지금도 예수님은 모든 악인들에게 동일한 사랑을 베푸시고 계신다.
 - 예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다.
 -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인류를 내 편에서 정죄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 삶에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까?
 - 나는 나를 괴롭게 하는 이들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 성경은 그것을 요구하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것인가?
 -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나를 악하게 대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베푸는 하루가 되길 기도해본다.




44절.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 예수님은 힘주어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 그것은 실제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눈으로 보여진 그러나 우리랑 별반 다를바 없어보이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에게 보여지는 모든 것들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볼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엿볼 수 있다.
   일반적인 창조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볼 수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신 그분이 실제로 육체를 입고 오셨으니, 그것을 믿는다는것,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다.

45절.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그 육체 안에 있는 예수님의 성품, 인자하심,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등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때, 우리는 그 실제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46절.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빛은 어둠을 물리치고 모든 이들에게 의로운 삶을 살게 한다.
 -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이상 어둠에 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

47절.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는자, 그를 지금 당장 심판하지 않으신다. 왜냐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계속 그러한 것은 아니다.

48절.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 예수님을 버린자,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자. 그에 대한 심판을 자신의 말씀의 권위에 두신다.
- 예수님의 말씀이 곧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엄위하고 놀라운가..

49절.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러주신 말을 예수님은 하셨다.
-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은 한분이시기에 그분의 생각과 마음은 일치하신다.
-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비밀을 예수님도 알고 계시며 그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 하나됨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하나됨같이 그 하나됨을 하나님은 요구하신다.

50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마지막 구절에 나온다.
- 그것은 영생이다.
- 영생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게 무엇인가?
-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것 아닌가?
- 이땅을 살면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삶을 통해서 그리고 주위에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것 아닌가?
-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귀어가고 그 친밀함이 더해지고 신뢰가 더 깊어져가서 예수님 없이는 더 이상 살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교회, 그리고 직업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만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존재하는것 아닌가?
- 그리고 그분께서 모든것을 섭리 가운데 운행하시면서 우리에게 많은 선물들과 축복들을 주신것을 누리는것 아닌가?
- '영생' 우리는 영생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하고, 이 오해를 풀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여전히 정체될 것이다.
- 많은 활동이 우리의 영생을 보장하는것이 아니다.
- 어떠한 사람들의 평가가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아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 우리의 어떠한 직위가 예수님을 우리 삶 가운데 얼마나 친밀한지 알려주지 못한다.
- 어떠한 은사도 우리가 예수님을 친밀히 아는데 약간의 도움은 될 수 있을지라도 아니 어쩔때는 오히려 방해가 될수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 관계란 은사도 능력도 우리의 어떠함이 아닌 우리가 그분과 얼마나 친해지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는게 무엇인지 아는것에 있다.
- 나는 얼마나 예수님과 친밀한 사이인가?
- 예수님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 예수님은 우리에 대해서 잘 아시지만, 지금 나는 예수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듣고 있는가?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아니하다

36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 예수님은 또 무리들 가운데서 떠나시고 숨으시기까지 하셨다.
- 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며 그 속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한다.
-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의 평가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계신 곳에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셨다.
- 나는 사람들의 평가로 나를 여전히 평가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 이것의 가치를 알지만 때로는 사람들의 평가가 나로 하여금 나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강한 작용을 할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 그럴때, 분명히 나만의 고독의 시간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곳에서 주님과 대면하며 내가 주님앞에서 어떠한 자인가 확인하는것이 필요하다.

37절.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 사람들은 많은 표적, 드러나는 행위들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믿게끔 하지는 않았다.
- 우리 삶에서 행하는 영향력중에서 정말 그 영향력으로 하여금 사람들이 믿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38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 사람들이 믿지 않음도 하나님의 주권하에 일어난 일이었다.
- 인간의 행위 뒤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있음을 나는 인정하는가?

39절.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이 믿지 못했던 이유가 나온다.

40절.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 아니, 그들이 믿지 못했던 이유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고 회개치 못하게 하고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신다?
-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 왜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이 행하셨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가?
- 그 원인은 아랫 구절에 나온다.

41절.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 분명히 성경이 말하고 있는바는, 주의 영광과 주님을 가리켜서 한 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42절.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 분명 믿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특별히 42절에는 관리중에 믿는자가 많다고 기록되어 있다.
- 그런데, 그들의 태도중에서 바리새인들로 인하여 드러나게 말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 그 당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종교기관 안에서 출교를 당했기 때문이다.
- 출교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기존에 속했던 공동체에서 있지 못하고 결국 떨어져 나가서 따로 모이거나 홀로 외로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 그들은 실제로 이러한 일을 두려워했고, 믿음보다는 사람들의 공동체속에 있기를 더 좋아했다.

43절.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 사람들의 무리에서 떨어져나가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을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확실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고 기대하는것 같다.
- 나 또한 이것에서 자유할 수 있을까?
- 그러나 성경은, 계속해서 이러한 것에서 자유해야 함을 강조한다.
- 사람들의 시선, 의식 어떠한 가치관으로 바라보는것에 따라서 나의 행동을 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행동이 정해지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 그것만이 주님 앞에 섰을때,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상급이 있지 않을까?
- 이 땅에서 사람들앞에 이미 칭찬을 받으면, 하늘에서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 아..그러나 물론 예수님도 이 땅에서 칭찬을 받았다. 칭찬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의 근본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나의 마음이 주님 앞에서 모든 것을 행하는가?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20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 유대인 아닌 헬라인들이 어떻게 예배하러 왔을까?
 - 예수님 소문이 벌써 퍼지고 있었다..

21절.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 예수님은 또다시 이해할수 없는 대답을 하신다.
 - 자기를 만나러 왔다는데, 갑자기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헬라인 들이 자신에게 온것과, 하나님의 때와 연관 관계는 무엇일까?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결국 죽음은 많은 열매를 맺게 한다.
 - 나는 죽고자 하는가 살고자 하는가?
 - 내가 죽을때, 많은 열매가 맺힌다.

25절.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 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 내가 나의 생명을 사랑할때, 나는 오히려 잃어버릴 것이다.
 - 그러나 내가 나의 생명을 미워할때, 나는 영생할 것이다.
 - 영생하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생명을 미워해야 할 것이다.

26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 주님을 섬기기 원한다면,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 주님을 따라가면, 그곳에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반드시 거기 있다고 했다.
 - 가치관, 영성, 모든것들 가운데 내가 주님의 것을 취해서 내것으로 만든다면, 그것에 따라는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또 있을 것이다.
 - 중요한것은, 내가 주님을 섬기고 따른다면,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귀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 나는 덧없는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 나의 귀를 기울일 것인가? 그들에게 귀히 여김 받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잠시 잠깐 뿐이다.
 - 나는 아버지로부터 귀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가? 그것이 진짜고 영원한 길이다. 그렇다면 내가 믿는바에 더욱 확신을 가지고 가야 할것이다.
 - 믿음의 길은 좁은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안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교회안에도 세상적인 요소들이 많지 않은가?
 - 그렇다면, 나는 분명히 주님 안에서 좁은길을 가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 그러면서, 또 한가지는 나와 생각이 다른이들을 사랑하는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뜻 아니겠는가?

27절.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 예수님이 마음이 괴로우셨던 이유를 모두 알수 없지만, 예수님이 괴로우셨다고 하니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 오죽했으면, 이 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분명히 알았고 그때가 왔음을 알았다.
 - 사랑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사실과 진리 앞에서 그것을 담담히 담대히 행하시는 주님이 있지 않은가?
 - 그러나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는다. 영원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함께 하심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기에 그 어떤 비난과 욕들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은가?
 - 하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그러해야 할 것이다.
 - 사람들이 비난하더라도, 하나님은 내 옆에 함께 계신다.

28절.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 예수님은 이 순간에도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했다.
- 나는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가? 아니면 나의 영광을 구하는가?
- 많은 순간 나의 영광을 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들의 평가에 이렇게 마음이 쓰일 수 있겠는가?
- 오, 주님 나를 사람들의 평가와 인정에서 자유케 하소서..
- 오직, 주님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 어떤 이들도 나의 마음을 안다는건 불가능하오니,
 - 오직 주님 안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기 원합니다.
 - 저의 이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29절.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 하니
 -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한 얘기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 예수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아버지 하나님은 친밀하게 얘기하셨다.
 - 때로는 주님은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씀하신다. 그 대화에 다른이들이 들어 올 수 없다.
 - 그것이 주님과 나의 친밀한 대화다.

3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 그러나, 그 소리, 그 뜻은 예수님을 위한것이 아닌 세상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 주님이 나에게 친밀히 하는 말씀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한것일 수도 있다.

31절.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 사탄마귀는 이제 힘을 잃을 뿐 아니라 쫓겨나는 입장에 처해지게 되었다.

32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 십자가 상에 달리신 주님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주님께로 이끌어졌다.
 - 십자가는 세상 모든 이들을 주님으로 인도한다.
 - 나는 십자가를 전하는가? 십자가의 삶을 살고 있는가?
 - 나는 죽고, 오직 그리스도만 영광받는 삶...

33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 예수님은 어떻게 자신이 죽으실줄 아셨다.
 - 나는 나의 죽음을 예상하는가? 내가 아닌 그리스도만 영광받는 죽음으로 나의 인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는가?

34절.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 그들의 율법의 한 측면만 봐라보았다.
 - 나는 말씀의 한 부분만 보는것 아닌가?
 - 말씀은 전체적으로 봐야한다.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 '빛'으로 
 -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 '빛'가운데 사는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36절.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 빛은 항상 있는것은 아니다. 우리가운데 빛가운데 살아갈 수 있을때..빛을 믿고 빛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
 - 나는 오늘 하루 빛 안에 거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다른 길로 가기를 원하는가?
 - 눈에 보여지는 나의 삶, 그리고 실제의 나의 삶, 그러한 괴리 없이 진정한 나로써 살아가는 건 어떤 것일까?
 - 육신과 성령의 구분을 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 오늘 하루도 빛 가운데 빛 안에서 하루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요한복음 12장 12-19, 예루살렘으로 가시다

12절.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을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13절.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 종려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고 곧게 뻗는 나무다.
 - 호산나는 구원해주소서 아닌가? 
 -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풍성한 열매 맺는 삶으로 인도하셨다.
 -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로 바라보고 예수님을 맞이하였다.
 - 그 예수님은 그들이 기다렸던 이스라엘의 왕이셨다.

14절.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셨다.
 - 예수님의 존재와 그 가치는 그가 타고 오는 어떠한 것에 있지 않았다.
 - 예수님 자체만으로 영광스럽고 빛나셨기때문에 그가 어떠한 것을 타거나 입거나 하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 오히려 그 예수님의 영광스러움으로 인하여 한 어린나귀가 그의 영광을 덧입게 된 것이다.
 - 우리는 우리의 내면과 우리자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보단, 겉으로 보여지는 것(집,차,옷,지위,명예,지식 등)을 가꾸려고 하지 않는가?
 - 우리의 내면(인내,온유,사랑,오래참음 등)을 가꾸는데는 얼마나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에너지를 투자하는가?
 - 또한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면서 어린 나귀가 영광을 덧입었듯이, 우리 또한 예수님이 우리를 타고 다니시면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또한 영광을 덧입게 될 것이다.

15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 이것은 이미 예언되었고, 그 예언되로 성취된 것이다.

16절.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 제자들도 위의 말씀을 알았을텐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때 왜 깨닫지 못했을까?
 - 우리가 말씀을 안다고 하지만, 정말 아는것인가?
 - 그 말씀이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질때, 그 말씀이 생각나지 않거나 잘 조화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말씀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 말씀은 현실에서 그것이 실현될때, 말씀으로서 영향을 미치고 힘을 발휘하게 된다.

17절.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 나사로를 살리신, 부활을 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이 분명했다.

18절.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 확실한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이하였다.
 - 그 증언의 바탕에는 결국 예수님이 진짜다라는 거였다.
 - 진실됨은 항상은 아니지만, 그 진실됨을 증언하는 증거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 나의 삶이 진실된다면, 나의 삶을 통해서 분명 진실되게 증언하는 이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 모든이들을 기쁘게 할 순 없지만, 내가 진실된다면 그 진실을 알아주는 이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 다수보다는 소수의 진실되고 양심이 청결한 이들을 가까운 친구로 두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19절.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랐다.
 - 세상은 거짓되지만, 또한 세상은 진리를 원한다.
 - 우리의 삶에 진리가 넘칠때, 세상은 우리안에 있는 진리를 원하게 되어있다.
 - 중요한것은, 내가 진실된 삶을 살아가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다.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다

9절.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절.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유대인들의 큰 무리들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 왔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증거인 나사로도 함께 보기 위해서 왔다.
사람들은 증거를 보고 그 사람의 말의 능력을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증거인 나사로로 인하여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제사장들은 그 증거인 나사로를 죽이려고 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대제사장들이 멀쩡한 사람을 죽이려고 까지 할 수 있는가?
그들의 목적과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된다면 그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있는것이 참 놀라운 죄인의 모습이다.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야가 왔는데, 그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죽이려고 하는 모습을 본다.
우리가 말하는 바와 믿는바가 무엇인지 우리도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행동에서 그 믿음의 거짓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믿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믿기를 요구하시는가?
진지하고도 깊이있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우리는 조용하고도 깊은 주님과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한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진실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위한 것인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다

1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 예수님은 한곳에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고 그의 사랑을 직접 전하러 다니셨다.
 - 그 장소에는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있었던 곳이었다.
 - 그곳으로 예수님이 다시 가신다.

2절.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 예수를 위하여 잔치한다는 구절이 성경에 많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장소에 예수님이 가셨는데, 이 자리는 예수님을 위한 자리였다.
 - 특별히, 마르다는 일을했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사로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예수와 함께 앉아 있었다.
 - 어떤이는 일을 하고, 어떤 이는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무엇이 중요한가보다는 각자의 역할이 있으리라.
 - 각자가 기쁨으로 하는 그것이 주님 앞에서 선한것 아닐까? 그것이 일이되었든, 교제가 되었든.

3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마리아가 드렸던 향유에 대한 수식어가 많다. 비쌌고, 그것이 얼마나 값어치가 나갔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 그의 온 마음과 모든것으로 주님께 드린것이었다.
 -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의 발에 부어졌고, 없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 그랬더니 향유냄새가 온 집에 가득하게 되었다.
 - 마리아는 모든 것을 드렸다. 그리고 자신 또한 드렸다. 그 결과 그 집에 그가 드린 헌신의 결과가 가득차게 되었다.
 - 우리가 드릴때, 때로는 버려지고 없어지는 것 같지만, 그것은 더욱 넓어지고 쓰여지고 사용되어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4절.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 가룟유다를 두가지로 표현한다. 제자, 그리고 예수를 잡을 자.
 - 성경은 그가 비록 예수를 잡을 자라고 표현하지만, 또한 제자라고도 표현한다.
 - 어떻게 그를 제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는 표면적인, 보여지는 제자를 뜻하는 것일까?
 - 아니면 그에게도 계속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스스로 포기했다는 걸 암시해 주는 것일까?
 - 어떤 것이 되었건, 그는 제자로써의 삶이 아닌 예수를 잡은 자의 삶을 선택했다.
 - 나는 어떠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제자인가? 예수를 부인하는 자인가?
 -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란, 예수님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더 신경쓰는 자 아닌가?
 - 나는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서 사는가? 아니면 예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 사는가?

5절.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그의 말은 있어보이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이었다.

6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 돈을 좋아함이, 결국 인생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 나 또한, 아니 그 누구도 이부분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을 것이나 우리는 자유로워야 한다.
 - 가난하든, 부하든, 어떠한 상황이든 돈(물질)이 우리 삶을 지배할 순 없다.

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 예수님은 그가 악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음을 아셨다.
 - 그런데 그를 비난하거나 교정하지 않으시고 단순히 그냥 두라고 하신다.

8절.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그러면서 가난한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상기시켜 주신다.
 - 또한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지 않을 것을 또한 알려주신다.
 - 지금 이 순간 우리 옆에 있는 자들이 항상 같이 있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며 나의 모든 것을 마리아 처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 마리아의 삶에 내일이란 있었지만, 오늘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모든것을 드리는 삶을 매일 살았던 것 같다.
 - 나 또한 내일의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지만, 오늘 최선을 다하며 나의 모든 에너지를 오늘을 위해서, 주님 주신 뜻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 아닐까?
 - 마리아가 드렸던 걸 생각하며, 내가 드려지는 것으로 인해 나의 주위가 기쁨과 향기가 가득 넘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 아내에게, 아들, 딸들에게, 이웃들에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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