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1. 기자 : 요한
    2. 시기 : 주후 90년
    3. '영지주의'에 대한 경계 포함,
      1. 초기 3세기 동안 교회를 위협한 매우 위험한 이단
      2. 모든 물질은 악하고 비물질은 선하다.
      3. 죄의 욕구를 정복하고자 금욕주의자 되거나, 육체가 끄는데로 방종에 빠지는 자유 분방한 사람이 됨
      4. 지식의 초월성과 물질의 불순성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아래와 같은 결과 나옴
        1. 지식이 모든 것이며 몸은 무가치 하다면, 높은 지식에 이르기 위해서 몸은 부서지고 으깨져야 함
        2. 또는, 몸은 더 많은 지식을 그 안에 담기 위해 온갖 부끄럽고 부정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몸은 본질상 악하기에 아무리 방임해도 더 악해질 수 없으며 또 빛을 받은 영혼은 몸에게 오염될 수 없기 때문이다.
      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참 인성을 부인함
        1. 하나님 안에 신성의 충만이 거한다면 어떻게 그분이 진짜 사람이 되어 물질적인 몸을 소유할 수 있을까?(그들은 모든 물질을 악하다고 믿음)
        2.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실제 인간이 아니었고, 혈과 육이 아니었고, 사실은 환영이었다고 가르침으로 그 문제 해결하려 함 -> 가현설
      6. 초기 영지주의의 시조는 마술사 시몬, 세린투스
        1. 세린투스 AD 90-100년경 활동
        2.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요한은 그의 가르침을 논박하기 위해 서신을 썼음
        3. 이원론적인 세계관(하나님보다 열등한 능력에 의해 물질이 창조되었다고 믿음)을 받아들였고,
        4. 색다른 기독록 설파 - 예수님은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미덕과 지혜를 부여받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과 그리스도(세례 받을 때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예수님에게 기적을 행하고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를 선포하게 했으나 죽기전에 그를 떠남)을 구분하였음
        5. 결국, 예수님은 고난당하고 죽고 부활했지만,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였기에 고난을 받지 않았고, 죽지 않았고, 피흘리지 않았음
    4. 위와 같은 영지주의의 배경하에 사도요한이 요한서신을 씀
    5. 서신의 특징(문체, 구조 등)
      1. 보통 바울의 서신들은 전반에 교리적, 후반에 실제적인 얘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요한서신은 그런 형태가 아니며 거의 분석이 힘듬. 
      2. 로보트 로 교수 " 극히 단순한 문장구조와, 논리의 전후 관계를 연결하는 접속어의 부재 등의 히브리식의 작문법의 특징이 눈에 띔", 비록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기자가 내내 구약의 구절의 가락과 운율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신 안에 히브리 작문을 모방했다는 두드러진 증거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기자만큼 그 생각과 표현방법이 자신도 모르게 구약의 방식위에 형성된 채 글을 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3. 요한의 사고방식은 나선형임, 사고의 흐름이 한곳에서 다른곳으로 일직선으로 이동하지 않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계단과 같이 항상 같은 중심을 돌아간다. 독술가 날듯이 매번 더 큰 원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면서 의와 사랑과 진리라는 세가지 주제를 반복해서 다룬다.

1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바라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창조가 시작될때부터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계셨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 이 말씀은 죽어 있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서 우리를 살게 하는 역동적인 생명의 말씀이다.
   - 우리를 살게하는 이 말씀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2) '우리가 들은 바요'
   - 우리의 인생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졌다.
  3) '눈으로 본 바요'
   - 우리의 두 눈이 직접 이 말씀을 대면하여 봤다.
   -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다.
  4) '자세히 보고'
   - 우리는 이 예수그리스도를 대충이 아닌, 자세히 본 것이다.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만지시는 예수그리스도를
  5) ' 우리의 손으로 만진바라'
   -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직접 예수님을 경험했다.
   - 물론 위의 말씀은 사도요한의 경우에 직접 말씀, 문자 그대로 경험한 것이다.
   - 그러나,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우리에게는 몸된 교회의 지체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듣고 보고 자세히보며 직접 만지지 않는가?

2절.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이시니라
 1)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 '생명'- 살다. 생기있는, 살아있는
  - 살아 있는 이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보여졌다.
 2) '이 영원한 생명'
  - 이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우리 인생이 가진 생명이 아니다.
  -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이다. 죽음이 결코 이길수 없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그 생명이 나타난 것이다.
 3) '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 이 영생을 보았고(실제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사건을 보았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로 올라가는 것도 보았다.)
  - 그 사실을 이제는 증거하고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4)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 이 영원한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 설명한다.
  -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었다.
 5)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이시니라'
  -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셨고, 하나님과 깊은 사랑가운데 있는 제2위격인 성자 하나님이셨다.
  - 그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1)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 우리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서신으로 너희들에게(우리들에게) 전하여 주는 목적은
 2)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 우리들로 하여금 사도요한과 동료 사도들(성도들)과 사귐을 갖도록(서로 알고 친분과 관계를 가지도록) 서신을 쓰고 있다.
 3) '우리의 사귐은'
  - 그런데, 사도요한의 사귐에는 특별한 것이 있는데..
 4)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 사도요한의 사귐에는 성부하나님, 그리고 그의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누리는 사귐, 친교가 있었다.
  - 사도요한에게 가장 중요했던 사귐의 관계는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누리는것에 있었다.
  - 사도요한이 하나님과 누렸던 이 사귐은 무엇이 있었고? 우리 인생들이 사람들과 사귀는 것과는 어떤것이 다른가?
 5)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4절.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 '우리가 이것을 씀은'
  - 사도요한의 첫번째 편지목적은 사도요한이 교제하고 있는 이 하나님과 함께 사귐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 편지를 썼다.
  - 그리고 이제 두번째 목적을 밝히는데, 그것은 사도요한과 함께하는 이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고 있다.
 2)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이 편지를 씀으로 사도요한은 물로 사도요한과 사귐이 있는 이에게 기쁨이 충만케 된다는 것이었다.

 3) 흠정역에는 '우리의' -> '너희의'로 기록되어 있다.



2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 예수님께서 심령이 괴로워하셨다.
 - 함께 한 제자중에 한명이 자신을 팔것을 알고 계셨고, 이제는 제자들에게 그 얘기를 해야할 시기가 왔다.
 - 예수님은 무엇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셨을까?
 - 자신의 죽음때문은 아니었을것이고 자신이 사랑을 주었던 제자의 미래의 모습을 봐서일까?
 - 예수님은 12제자 모두에게 배신을 당하였다. 그렇다면 배신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신건 아닌듯 하다.
 - 자신을 판 제자의 앞으로의 인생을 보시고 심령이 괴로워하신듯 하다.
 -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 사랑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다.
 - 심지어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때 조차도 그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시며 괴로워하신다.
 -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들이 '죽음'의 길로 '사망'의 길로 가는것을 기뻐하는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 예수님은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가룟 유다에게 품었던것 같다.

22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 제자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 예수님의 마음은 그 제자를 향해있었지만, 제자들은 '정죄'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다른지를 드러내는가?
 -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를 사랑과 인자로 바라보시고 인도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정죄하고 있으니 말이다.
 - 아 우리 인생의 슬픔이 여기서 있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23절.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 요한복음의 저자는 요한이다.
 -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을 어떻게 바로보시고 인식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 그러므로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 지금도 동일하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며 사랑하신다.
 - 그것을 분명히 인식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게 될것이고, 그 사랑을 전파하게 될것이다.
 - 요한은 또한 예수님의 품에 누워있다. 그냥 누워있지 않고 그 품에 의지하고 있다
 - 우리는 누구 품에 있는가? 그리고 누구를 의지하는가?
 - 우리가 가진 재능,능력, 부인가? 
 - 통장의 잔고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 누구의 품이 가장안전할까?
 - 입으로는 '주님'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실제는 그 예수님의 품안에 있지 않고 통장의 잔고 안에 누워있지는 않는가?
 - 아니면 우리에게 '돈'을 주는 '회사'나 그 누군가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 그 뒤에서 우리를 먹여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할때 우리는 요한의 신앙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제자들은 12명이었으나, 예수님의 품을 차지한건 요한이었다.
 - 그 품안에서 요한은 누워 쉬고 있다.
 - 우리가 예수님의 품을 의지할때, 우리는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
 - 다른것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것들이다.
 - 이것을 믿고 있는가?

24절.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 요한은 그냥 예수님 품에 누워있었다.
 - 그런데 시몬 베드로는 누구인지 물어본다.
 - '베드로' 그는 자신보다는 항상 남들이 어떤지 관심이 많았던것 같다.
 - 경쟁의식도 심했던것 같다.
 - 다른이들과 비교하여 남들보다 자신이 낫다. 자신이 수제자다. 이러한 것들이 있어보인다.
 - 우리도 그렇지 아니한가?
 - 항상 주님 앞에, 성경 앞에 나 자신을 점검하고 비교하기보다는 주위의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가?
 - 혹은 역사속에 있었던 믿음의 선진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가?
 - 혹은 성경속에 있었던 믿음의 선진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가?
 - 그러나, 성경은,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과 나를 비교하라고 하신다.
 - 성경에 비추어서 잘못된것은 고치고, 주님의 뜻에 굴복될것을 요구한다.
 - 세상의 목소리가 아니라, 교회 안의 다른 형제들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 비교하여 나를 살펴보라 하신다.
 - 아 이 얼마나 엄위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말씀인가..
 - 성경에 비추어서 나를 살펴본다면 얼마나 성경과 멀어진 길을 걷고 있는가?
 -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오늘 하루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주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애쓴다. 

25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 아마 베드로가 요한에게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요청한듯 하다.
 - 예수의 가슴에 있었던 요한은 누군지 물어본다.
 - 요한이 물어보는 자세를 살펴보자.
 - 그는 예수님의 가슴을 의지하였다.
 - 우리는 모든것들에 있어서 그분을 의지하고 있는가?

26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 예수님은 그냥 가룟 유다라고 말씀하셔도 되는데, 왜 구지 떡 한조각을 그에게 주는가? 
 - 마지막까지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무리한 해석일까?

27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 그전에는 유다가 사탄의 조종속에 없었던 것인가?
 - 예수님이 조각을 건네주었고, 그 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 결국, 사탄도 우리 주님의 권한아래에 있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다.
 - 결국, 예수님을 팔기로 마음먹은건 사탄이 유다를 유혹해서가 아닌것이다.
 - 예수님을 팔기로 욕심을 가진건 분명 가룟 유다 본인 스스로 정한것이다.
 - 그리고 그 마음을 예수님은 아셨고, 그 일을 행하라고 유다에게 명령한다.
 - 그리고 그 명령 이후에 사탄도 예수님의 허락 하에 유다의 마음속 깊은곳에 들어가게 된다.
 - 순서를 보면, 가룟 유다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본인의 욕심을 위해서 사용하게 된다.
 -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지목하셔서 그 일을 행할것을 명하시고, 예수님의 권한 아래 사탄은 마음껏 유다를 사용하게 된다.
 - 우리가 잘못한것, 범죄한것, 그것들 사탄에게 화살을 돌리지 말자.
 - 대부분의것들은 우리 스스로 범죄한것이다. 아니 모든것일 수 있다.
 - 하나님께서 사탄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사탄은 마음대로 우리를 좌지우지 할 수 없다.
 - 우리를 좌지할 수 있는건 오직 우리가 선택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우리의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할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말씀해주신다. 
 -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때 우리에게 복이 있음을 말이다.

28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 말씀 그대로, 제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 분명 예수님은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오해했다.
- 오늘날도 동일하게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앞날을 예언해주고 계신다.
- 그런데, 우리가 그 말씀을 우리 좋은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 주님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마음속의 욕심때문이다.
 -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마음때문이다.
 -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왕국 건설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주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오늘날, 그 뜻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29절.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 얼마나 예수님의 계획과 차이가 나는가?
 - 예수님이 죽게 되는 것인데,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는가?
 - 우리라고 다를것이 있는가?
 -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나라, 주님의 왕국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그런데, 많은 순간 우리는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 때로는 세상속에서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기도 하며, 때로는 교회 안에서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기도 한다.
 - 교회 안이라고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의 뜻을 모르지 않았는가?
 -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의 뜻이 확실하다고 믿지는 말자.
 - 항상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주의깊게 보는 자세가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의 왕국을 교회안에서 건설하고 있을 것이다.
 - 인간은 원래 그러하다.
 - 얼마나 인간이 욕심이 많고 그 욕심을 본인들도 잘 모르는지 아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는 포장을 벗어버리고 그 깊숲한 내면의 뜻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 참혹한 현장을 보고 있지 않은가?
 - 주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던 십자군 전쟁...
 - 아픈역사를 기억하면서 우리가 그러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 보자.

30절.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 아 역사의 가장 슬픈 현장이여.
 - 유다는 실로 가장 슬픈 현장의 길을 걷고 있다.
 - 그러나 그러한 슬픈 현장의 길때문에 또한 많은 이들이 살아나게 되었다.
 - 우리가 그 슬픈 현장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슬픈 현장을 사용하셔서 축복의 자리로 바꾸셨다.
 - 얼마나 우리 주님의 역사가 놀라운가..
 -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설중의 역설의 역사아닌가?
 - 영광스럽고 전혀 흠이 없는 그분만이 하시 수 있는 놀라운 역사다.

 - 그 은혜 아래서 오늘 하루도 감격하는 하루를 사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의무다.




22절.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 엘리의 아들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제사장의 옷을 입고 제사장의 행동을 하였다.
 - 그러나 그들의 중심에는 온전히 육욕에 의하여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음식을 자신들의 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갈취하였으며, 수종드는 여인들에 대하여도 자신들의 성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삼았다.
 - 그들은 온전히 자신들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육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직분과 그들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혈통은 제사장이었다.
 - 우리가 겉으로 보이기에 거룩한 모습과 거룩한 행위들과 거룩한 관습 그리고 그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겉모습이 있을지라도 육신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면 엘리의 아들들과 다를게 무엇이겠는가?

23절.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악행들에 대하여 얘기하였다.
 - 엘리의 아들들의 죄악이 얼마나 컸으면, 그리고 그러한 죄악들로 인하여 상처받고 어려워한 백성들이 많았을 것이다.
 - 그들은 이러한 일에 분노하지 않았을까?
 -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자신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 그러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24절.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 엘리는 그의 아들들이 심각한 범죄를 하고 있는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치를 치하지 않았다.
 - 단순히 그렇게 하지 말라는 얘기, 그리고 그러한 일이 백성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한다는 얘기만 하였다.
 - 조금 더 강한 어떠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고,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있어서, 사랑안에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어떤것인지 계속 기도가 된다.
 -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범죄할 경우, 그 범죄의 영향력은 커서 그 범죄가 다른이들도 범죄하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 지도자의 범죄는 그 따르는 무리들까지 모두 범죄하게 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 지도자,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무거움을 우리가 느껴야 하지 않을까?

25절.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 사람 사이의 범죄는 하나님께서 간구하셔서 용서해 줄 수 있지만, 여호와께 범죄하는것은 더 무겁게 다루는것 같다.
 - 사람들은 누구나 범죄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범죄 이것의 무게는 엄청난듯 하다.
 - 나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냥 사는 수준인가?
 - 일을 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것들을 결정하고 정하는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고 있는가?

26절.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 엘리의 아들들이 범죄한 사실, 그리고 그 범죄로 백성들에게 영향을 준것, 그리고 엘리의 아들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실것을 말씀하셨다.
 - 그 뒤에 반전으로 이제 사무엘이 등장한다.
 - 사무엘이 점점 자라고 있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예수님의 어린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신약과 비슷하지 않은가?
 - 우리의 자녀들도 이렇게 기록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 그리고 나의 모습도 이렇게 성장하고 있기를 기도해 본다.
 - 성숙한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모두 은총을 받는다.

 - 이러한 은총을 지금 받고 있는가?


18절.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 사무엘은 어릴때부터 하나님 앞에서 해야할 것들을 갖추고 자신을 드렸다. 

19절.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 한나는 비록 사무엘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매년 하나님을 예배드리러 올때 마다 사무엘의 어떠함을 계속 돌봐주었다.
- 작은 겉옷에는 한나의 이와 같은 자녀양육에 대한 사랑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20절.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
- 엘리제사장이 한나를 생각하며 그녀에게 하나님이 더 많은 자녀를 줄 것을 기도한다.
- 어린 사무엘의 대목을 보면서 엘리제사장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생각들을 더 하게 된것일까?
- 앞에서 나와있는 엘리제사장의 모습과는 사뭇다른 모습이다. 인도자로써 양떼들의 상황을 잘 살피는 모습을 보게 된다.

21절.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 하나님께서 한나를 돌아보신다.
-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시니 그 누구의 도움보다 낫지 아니한가?
- 하나님이 돌보실때,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다.
- 한나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첫째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바쳤고 아들이 없는것 처럼 살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기쁜 생활을 영위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나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신다.
- 욥의 결말과도 비슷한 상황인데, 인생에게 고난을 잘 극복하고 나서의 결말을 알려주는것 같다. 지금의 상황에서 감사하고 미래에 다가올 왕국에서의 위치를 생각하자



12절.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좋지 못했다. 그러나 행실이 좋지 못한것보다 더 좋지 못한건 여호와를 알지 못한 사실이다.
 - 그들의 아버지가 제사장이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까?

13절.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장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제사장이었다.
- 겉으로는 종교인의 모습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의 형태는 갖추고 있었지만 실제 그 내면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 그들에게 관습이 하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아마 처음 그들이 이렇게 행동했을때는 양심의 거리낌이 있지 않았을까? 왜냐면 그들의 아버지가 하는 행동이 아니었기때문이다.
- 그런데 그 양심의 거리낌을 무시하고 계속 반복하니 어느덧 관습,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잘못 형성된 습관이 우리 인생에서 독이 될 수 있다.
- 잘못된 습관이 생겨진 원인을 찾아서 그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그 원인을 찾지 않더라도 습관중에 우리 인생에서 나쁜 영향을 주는것, 혹은 죄악된것 들은 버려야 한다.

14절.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 왜 그러한 습관들이 생겼는지 어느정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제사를 드리러 가지고 온 것들을 제사장이 자기것으로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 그 대상은 제사 드리러 오는 모든 이스라엘 민족들이었다.
-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땅한 것을 자기것으로 가졌다.
-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이다. 그 원인은 자기의 욕심이다.
- 나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동, 그것에 어떤것들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 공공의 물건들을 내 마음대로 내것으로 여기는 그러한 행동들이 없는지 나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15절.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 처음에는 엘리의 아들들이 삶은 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그들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것 같다.
 - 인생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계속해서 더 새로운것, 다른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 더 새로운것, 더 나은것,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그가 추구하는 것이 우상일 수 있다.
 - 엘리의 아들들은 이제는 삶은고기가 아니고 날것을 원한다고 하였다.
 - 그래서 제사드리는 이들에게 심한 요구를 하게 된다.

16절.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 제사 드리러 온 사람들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 그래서 엘리의 아들들의 요구를 듣지 않고 반대얘기를 했다.
 - 그랬더니 엘리의 아들들은 막말을 하며 억지로 빼았는다고 까지 한다.
 - 얼마나 그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는데 충실한지를 볼 수 있다.
 - 나의 모습속에 이러한 모습이 숨어 있지는 않는가?
 - 나는 식욕, 성욕, 소유욕,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등 여러가지 욕구들로부터 자유로운가?

17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 성경은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에 대하여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다.
 - 그들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뿐 아니라 멸시하는 정도였다.
 - 왜 그들이 이렇게까지 멸시하였을까?
 - 사람들이 예배를 진정으로 드리지 않아서?
 - 아버지가 올바른 행실로 살지 않아서?
 - 여러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1차적인 책임은 아버지 엘리제사장에게 있을 것이다.
 - 그는 왜 아들들이 이렇게되기까지 방치했는가? 
 - 아니, 사실 방치했다기 보다는 그의 삶이 자녀들에게 본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 한나에게 한 행동도 그렇고, 여러가지 본문에 드러나 있는 엘리제사장의 행동들을 보면, 그의 삶이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자로 살았는가 질문이 된다.
 - 결국, 그의 삶이 겉으로는 제사장으로 살았지만, 그 중심 깊은곳에, 그리고 그의 삶의 구석구석 제사장으로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 나의 삶 구석구석이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살때, 정직히 살때, 욕심을 버릴때, 나의 잘못된 욕구를 채우려고 하지 않을때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본의 모습을 보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나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정결하고 거룩한 삶으로 드려져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이 형상이 성품이 상속되기를 진정으로 소원한다.
 - 내 삶 속에 거짓되고 잘못된 습관들이 있고 나의 헛된 욕심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그것들을 보여주시고 고쳐질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1절.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 한나의 기도의 시작은 이렇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내 마음은 다른 어떤것도 아닌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가?
 - 나는 주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주님으로 인하여 기쁨이 넘치는가?

2절.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 하나님같은 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 계신다.
 -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시며, 우리와 구별되시며 그러므로 우리가 친히 그분을 반석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 다른 어떤것들도 우리의 반석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것들은 우리와 크게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거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오직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만 참 만족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
 - 다른 모든 것들은 그 거룩한 모습을 흉내낼 순 있겠지만 거룩할 순 없다.

3절.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 교만한 말들을 하는가?
 - 우리는 우리가 아는 제한된 지식으로 얼마나 오만한 말들을 많이 하는가?
 - 그러한 모든것들이 하나님의 지식 앞에서 잠잠케 되어야 할 것이다.
 - 하나님 앞에 인생이 서게 되었을때 우리의 지식의 한계는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한 모습이겠는가?
 -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동을 친히 달아보신다.
 - 이 두렵고 엄위한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오늘 나의 행동들도 점검해보게 된다.
 - 나의 말, 행동, 생각 그 모든 것들이 오늘 낱낱이 하나님 앞에 계수된다. 
 - 조심하자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자.

4절. 용사의 활은 꺽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 아무리 잘나고 위대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활은 꺽이는 때가 있다.
 - 아무리 못나고 부족하더라도 그들이 여호와의 힘으로 띠를 띠게 될때 그들은 높아질 것이다.
 - 지금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어떠함으로 그들을 대하지 말자.

5절.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 인생은 얼마나 지금 현재 가진 자들에게 우리 자신을 잘보이거나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노력하는가
 - 그러나 지금 현재 풍족함이 항상 그의 풍족함을 보장시켜주진 못한다.
 - 지금 풍족하던 자들이 순식간에 가난해질 수 있는 것을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 그리고 가난하던 자들이 항상 가난하지 않다는것도 성경은 증거한다.
 - 우리가 보기에 가난은 그 사람들의 게으름으로 인한것으로 쉽게 생각한다. 그럴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 그리고 지금의 가난한 그들이 계속 가난하다는 보장도 없다. 오늘 말씀에는 가난한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 오늘의 우리나라가 계속 지금 상황처럼 좋을순 없고, 오늘의 미국이 계속 세계를 지배한다는 보장도 없다. 역사는 반복되고 영원한 제국은 없다.
 - 모든것은 다시금 돌아가며, 부한것도, 가난한것도, 어떤것들도 이 땅에서는 보장받지 못한다. 
 - 그러므로 있는 자들은 없는 자들을 돌아볼 것이며, 없는자들도 있는자들을 그렇게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 지금 현재 주어진 상황을 만족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것이 우리들의 마땅한 태도일 것이다.

6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 우리 주님의 주권대로 인생들을 통치하고 이끄신다.
 - 이땅은 보이지 않는 주님의 주권 아래에서 역사가 계속 되어지고 있다.
 - 그러므로 우리의 살아있음과 죽음, 병듬과 건강함 그 모든 것들의 주권이 주님에게 있음을 잊지 말자.
 - 인생이 사실 호흡하나도 스스로 쉴수 있는 능력이 없지 않은가?
 - 그런데 얼마나 자기가 대단한 존재인줄 착각하는가?
 - 호흡만 3분만 멈추어도 모든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출것인데..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자.

7절.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 인생의 환경적인 부분을 많이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주관하시는 주님편에서 생각해야 한다.
 - 하나님이 가난하게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신다.
 - 내가 가난한 상황이 되어도 감사할 수 있는건 그렇게 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므로 이길 수 있으며
 - 내가 부한 상황이어도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더 큰 만족이 되기 때문이며
 - 낮은자리에 거하게 되어도 감사함은 내가 인기가 많지 않음으로 사람들로부터의 인정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인정을 더 갈망할 것이며
 - 높은자리에 거해도 감사함은 그 높은자리로 인하여 가질 수 있는 인기와 권력으로부터 매순간 싸우며 주님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 어떠한 위치에 있더라도 동일하게 주님을 섬기는 자, 그가 진정 주님안에 깊이 뿌리를 박은 자일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는 환경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는 존재이며, 그러한 결과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으로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는 반대의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8절.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 우리 주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눈여겨 보시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 결국에는 그들을 그 가난한 환경에서 건지셔서 귀족들과 함께 하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 비록 지금은 우리의 형편이 별볼일 없는것 같지만 주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할때 우리는 귀족들같이 될 것이며 영광의 자리에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 이땅에서 영광스러운 자리를 가진다고 한들 얼마나 영광스러울 수 있을까?
 - 이땅에서 사람들에게 인기와 인정을 받는다고 한들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까? 
 - 이땅에서 나의 이름을 떨친다고 한들 그것이 정말 얼마나 나에게 유익이 될까? 그 기쁨이 얼마동안이나 지속될까? 그 영광이 클까?
 - 그러나 이땅에서의 어떠함이 아닌 영원한 나라,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그곳에서 우리가 가지게 되는 직분과 영광은 실로 놀랍다.
 - 이것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이땅에서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9절.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신다.
 - 우리가 거룩히 행할때, 그 걸음을 지키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될 것이다.
 - 악인들은 흑암중에서 잠잠케 하실것이다. 
 - 하나님께서 하시니 그 누구도 이것을 이길 수 없다.
 - 나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과 거룩한 말들을 하는가? 

10절.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때, 그에 반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일어날 것이다.
 - 그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가 다루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위엄으로 치실 것이다.
 - 하나님의 때에, 심판의 날에 악인들을 심판하시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실 것이다.
 - 그리고 사람의 기름부음 받은자가 아닌, 하나님께 기름부은 자들을 높이실 것이다.
 - 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름부음받은자로 하나님께 높임을 받기 원하는가?
 - 아니면 이땅에서 영광스러운 위치를 갈망하며 그것에 나의 모든것을 쏟을 것인가?
 - 그것은 나의 깊은 내면의 중심에서 주님의 영광을 갈망하며 정해지는 것이다.
 - 지금 나는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들리는 주님의 음성이 분명히 들리는가?

11절.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 한나가 드렸던 기도를 살펴보면, 한나의 영성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 한나는 여러가지 고난과 억울한 상황들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졌을 것이다.
 - 그러한 깊은 관계속에서 낳은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결정까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한나는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 가까이에 있는것이 복된 삶이라는것을 깨달았다.
 -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쳐서 사무엘이 이땅에서의 삶이 혹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살지라도 훗날 그에게 영광이 임할거라는걸 알았던 것이다.
 - 사무엘을 지극히 사랑했던 한나는 그 아들에게 지상에서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준 것이다.
 - 사무엘이 그 어머니의 바람대로 잘 살아줄수 있었던것은, 지속적인 한나의 기도가 있지 않았을까?
 - 그 어머니의 신앙이 사무엘에게까지 전파되는것을 보면서, 나의 삶과 신앙이 나의 자녀들에게 미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두려워지게 된다.
 - 나는 나의 삶을 통해서 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전파해야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 내가 매일 기쁘고 감사하는 삶을 살때,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배워나갈때, 나의 자녀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 그러한 삶을 추구하고 살아가는가?



19절.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참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그 때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 경배하였다.
 -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금 일상의 생활로 그들은 돌아왔고 해왔던 것 처럼 그들은 일상의 일부분을 해왔다.
 -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그를 생각하셨다. 이전에도 생각하셨지만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생각이 바뀌신 것일까?
 - 하나님의 주권으로 한나는 임신하지 못하였었고, 한나가 그것을 두고 기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하나님의 심정에 변화가 생긴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던 일일까?

20절.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 한나는 임신하게 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다시금 볼 수 있다.
 - 인생의 모든것들 하나님은 항상 관여하고 계시지만, 이렇게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실때 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하고 앞으로 나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내가 무엇을 한것도 있을수 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게 모든 환경과 상황들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나는 반응했을 뿐이다.
 - 한나가 아들을 구하여 하나님이 사무엘을 주셨는데, 오늘 나는 무엇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21절.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 엘가나의 가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 그의 온 집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매년제와 서원제를 꼭 드렸다.
 - 나의 가정은 어떠한가? 우리에게 있어서 예배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 그리고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있는가?
 -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는가?

22절.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 한나는 아이와 함께 여호와 앞에 예배하러 올라가지 아니하였다.
 - 그 이유는 아직 아이가 젖 떼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 젖을 땐 이후에 아이를 하나님 앞에 뵙게 하고 그리고 그 아이를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두고자 하였다.
 - 한나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리를 얼마나 귀히 여겼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3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가디리다가
 - 젖을 땐다는것, 그것은 이제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단단한 음식들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 스스로 음식을 먹고 그것을 소화할 능력을 갖춘 나이가 젖을 뗀 나이다.
 - 젖을 떼기 전까지는 스스로 소화시킬 수 없고 항상 엄마가 옆에서 돌봐주어야 하는 그런 나이다.
 - 거의 모든것을 돌봐주지 않는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나이가 젖떼기 전이다.
 - 그 젖떼기 전까지 한나가 아이를 돌봤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한나는 마음을 먹었다.
 -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젖을 떼고 이제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 광야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하나님하고 단 둘이 살아 갈 수 있는가?
 - 언제까지 다른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해야 하는가?

24절.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 예배자리에 한나는 수소 세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나아갔다.
 - 그런데 중요한건 예배자리에 일반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 플러스 아이도 함께 데리고 간 것이었다.
 - 아이는 어렸다. 어린 아이를 데려간 한나, 그녀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고 계실까?

25절.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 평소와 다름없이 수소를 잡았다. 그장면을 어린 사무엘은 보았다. 잘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26절.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달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 제사장 엘리를 주님으로 부르는 한나의 기름부은 받은 자에 대한 존경심을 눈여겨 보자.
 - 두번씩이나 '주'로 제사장 엘리를 부른다. 그의 자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직분을 부여하신 하나님으로 인한 존경심일 것이다.
 - 한나는 자신을 하나님께 기도하던 여자라고 소개한다.
 - 나는 나 자신을 소개할때, 하나님께 기도하던 자라고 소개할 만큼 기도하는 자인가?

27절.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28절.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 한나의 생각에 원래 사무엘은 없던 아이이었고, 그녀가 가질수 없었다. 그녀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 그러므로 원래 없던 아이였기에, 다시금 여호와께 평생을 드리더라도 그녀에게는 합당한 처사였을까?
 - 아니면, 한나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것은 없어서였을까?
 - 아마도 둘 모두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 원래 자기의 것이 아니었고, 그리고 자기에게 잠시 맡겨둔 아이를 양육하는데 있어서 최고는 하나님께 드려진 삶이었다.
 - 그래서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담대히 자신의 아들을 평생을 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가? 그리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삶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는가?
 - 나는 평생을 하나님 앞에 드려져 있는가? 진행형인가?
 - 드려진 삶은 어떤것인가?
 - 오늘 하루도 드려진 삶이므로 그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께 속한 자 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9절.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 제사장 엘리는 하나님의 전 문설주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 예배자인 우리는 하나님의 전에서 멀어져선 안될 것이다.

10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 한나는 마음이 괴로웠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하였다.
- 우리의 마음이 괴로울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 통곡하며 기도하는가 아니면 다른 대체물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기를 원하는가

11절.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 서원은 쉽게 할 수 없는데, 한나는 서원하였다.
- 그런데 중요한건 그 서원의 내용이다. 그녀가 원했던 아들을 달라는 기도와 그 아들을 주시면 그를 평생에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한다.
-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서원. 이것은 사실 서원이긴하지만 한나와 그녀의 아들에게 좋은 약속이다.
- 원래 우리는 하나님것이었기에 하나님께 평생을 드리는것이 마땅하다.
- 그 마땅한것을 입술로 고백하고 약속한것 뿐이다. 
- 그러나 이 서원이 크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 한나에게 주어진 고통,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인생에서 참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 계기였을까?

12절.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 한나가 기도하는 주된 내용은 많지 않았다. 
- 아들을 달라는것,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린다는것, 그리고 그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 등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로 한나는 오래 동안 하나님과 기도하였다.
- 우리의 기도생활은 어떠한가?
- 하나님과 오래동안 기도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고 있는가?

13절.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 한나의 기도는 막 떠들진 않았던 것 같다.
- 그는 조용히 얘기했으며, 입술이 움직였기에 침묵기도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중요한건 한나가 기도한 사실이 중요하지, 그의 기도의 형태는 중요치 않다.
- 그러나 엘리는 한나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취한줄로 생각하였다.

14절.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 기도하고 있는 한나에게 취하였다고 하는 이 엘리의 발언..
- 그리고 포도주를 끊으라고까지 하는 이 엘리 제사장의 말은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 우리도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를 판단하고 그가 왜 그렇게 하였는지 내 마음속으로 정하는듯 하다.
- 그러나 인생은 사람의 마음 속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행동만으로 그를 평가할 순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 그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을것이라고 추측하지 말자.
- 궁금하면 항상 직접 물어보자. 그것이 좋다.

15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것뿐이오니
- 한나의 겸손함을 보자.
- 한나는 이미 많은 고통속에서 그의 고통의 억울함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호소하는 법을 배웠는것 같다.
- 우리 인생에 억울한 일이 발생할때, 그것을 사람에게 얘기하여서 서로에게 유익이 될 건 없다. 억울한일은 오직 하나님께 아뢰자
- 한나는 자신의 마음이 슬픈 여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슬픈 마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였다.
- 우리 인생은 실제 마음이 슬퍼지는 일들이 많다. 이러한 일들을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고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 우리 인생의 아픔과 슬픔 고통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 하나님이 최고의 치료자가 되지 않으신가?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지 않은가? 우리의 믿음이 없어서 우리가 치료받지 못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실까?

16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 한나는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다고 하였다.
- 브닌나에게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겪었을지 어느정도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우리 인생에 꼭 브닌나와 같은 이가 주위에 있다. 왜냐면 사람은 죄인이고 그러한 죄인들이 모인 곳이 이땅이기 때문이다.
- 그것은 교회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냄새가 나며 다 괴로운 일을 서로 겪을 수 밖에 없다.
- 그러나 그러한 괴로운 일들을 당하였을때 우리 마음의 원통함과 격분됨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우리 마음에 원통함이 생기는것, 격분하는것 그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 같다.
- 그 정상적인 상황을 하나님께 조용히 아뢰고 하나님께 모든것을 해결받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 마음이 원통한가, 상처가 있는가, 도저히 이해되지 못한 일들을 겪고 있는가?
- 그렇다면 한나처럼 하나님께 모든것을 아뢰보자. 그 기도의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 그리고 오래동안 하나님과 기도해보자. 하나님께서 선히 그 인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17절.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 기도의 응답을 약속하진 않았지만, 평안히 갈것을 엘리제사장이 한나에게 알려준다.
- 우리가 기도할때 우리의 기도제목이 때로는 우리의 기도제목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 그러나 우리 마음에 평안함은 항상 주님께서 주실 것이다.
- 우리의 상황은 바뀌지 않고 더 악화될 수 있지만, 우리의 내면의 중심은 평안함으로 가득 넘칠 수 있다.
- 상황과 환경은 항상 변하나 우리 마음의 중심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18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 마지막 구절에 다시는 얼굴에 근심 빛이 없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 기도의 놀라운 힘이다.
- 한나에게 자녀가 생긴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자녀를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다.
- 그런데 한나는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다.
- 처음에는 자식이 없어서, 아니 자식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브닌나의 행동때문이었을 것이다.
- 그리고 이러한 기도 뒤에도 브닌나의 행동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 우리의 기도, 하나님께 모든것을 아뢰는 그 아룀 뒤에 우리의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오고 다시는 근심 빛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
- 근심, 걱정이 많은가?
- 그렇다면 그 모든걸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닌 주님께 조용히 가져가 모든것을 아뢰보자

- 우리의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치료해 주실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