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겉으로 아무리 영적인 이야기를 하고, 또 영적인 겉모습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 내면이 진실되지 못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라 거짓 선지자 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하여 하나님께 속하였나 검증해야 하고, 우리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주는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해야할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거짓선지자들을 분별하는 분명한 기준이 2가지 제시된다. 그것은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또 하나는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 이다. 이 두가지 중에 한가지만 인정하거나, 하나를 부인하면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다.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입고 오신 사실을 믿는자들은 하나님께 속한자들이다. 물론 입술의 고백이 아닌 진실된 마음의 믿음이 있는자들을 일컫는다. 또한 적그리스도는 앞으로 오는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 시기에 이미 있었고, 지금도 우리 주위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대가 평안하다고 하면서 게을러진다면, 어느순간 우리를 미혹하는 적그리스도를 우리 옆에 두고 있을 수 있다.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적그리스도를 이미 이기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자들보다 크시기 때문이다.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적그리스도들의 가르침은 세상이 좋아한다. 결국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에 그들이 대장으로 무리를 인도한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하는지가 우리의 앞길을 보여준다. 세상의 소리인가 내면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인가..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하나님께 속한자들은, 참된 선지자를 알아 본다. 같은 소속감에서 주는 다양한 이해와 감정들, 동질감이 서로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믿는 신자들 사이에 흐른다. 우리가 무지하거나 교먼하거나 스스로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자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속한 모든 거룩한 신자들과 교제하며 진리의 영을 서로 나누게 될 것이다.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 인간의 본성에는 악함이 있어서 본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워함이 저절로 생겨난다. 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있지만, 세상에 속한 이들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는 신자들과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을 사랑한다. 그것이 우리가 생명에 속한 자들임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인간세상에서는 미워함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이를 살인하는 것이라 말씀한다. 그것은 미워함이 살인의 씨앗이 되기도 하며, 미워함 그 자체를 심각한 죄로 보기 때문이다. 실상 모든 죄는 다 심각하다. 우리가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죄가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심각하다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언제 누구에게서 배웠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경험케 하고 사랑을 베풀수 있게 만든 근원적인 사건이다.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것이 현대의 의미로 해석하면 무엇이 될까? 바로 ‘돈’이다 내가 형제들에게 어떻게 ‘돈’을 사용하는지가 어떻게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그리스도인이 말을 제일 잘하는것 같다. 말을 줄이고 지갑을 많이 열어야 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 진리에 속한다는것, 우리가 이단에 속하지 않다는것, 이런것들을 확인 할 수 있는 지름길은 우리가 믿는 교리적인 순수함에 있지 않다. 분명하고 치우치지 않는 교리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은 교리 역시 부족함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오직 성경만이 완전함을 모두가 동의한다면, 그 바탕 위에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나타낼때, 그 모임은 진리에 속했다고 분별 할 수 있다.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 우리는 부족하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부족하다. 그러므로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말며 너무 많은 요구도 하지말자 스스로 할일을 해나가고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모든것을 의탁하자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순간 우리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불순물은 없는지, 스스로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지, 정직하게 살아가는지 등을 매순간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자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우리가 구하는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다. 우린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날마다 행하는것이다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은 단순하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서로를 사랑하는것.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하나님을 신뢰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안에 그들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증거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매순간 동행할 수 있음이 가장 큰 복이다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푼 사랑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는 현재 어떤 신분인가? 

  • 누구나 자신의 자녀에게 모든것을 베푼다.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것이 자녀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뿐만아니라 그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온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권세를 얻게 된 자들이다

  • 그러나 이 사실은 세상에 속한 이들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우리를 경히 여길지라고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 우리의 미래는 어떤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차별없이 하나님과 같아지고 하나님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지금은 여러가지 한계들로 인하여 그분의 일부만 볼 슈 있을뿐이다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우리를 의롭게 살게하고 양심에 따라 살게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건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분의 참모습을 그대로 볼 수있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몸을 우리도 입게 된다는 희망이다.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우리를 죄와 불법으로부터 깨끗케 하실 수 있으시다.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무엇이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케 하는가? 그것은 오직 그 안에 사는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것만이 모든 죄와 불의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 우리를 미혹하는 자들이 많다. 교회안에서도 많고 교회밖에서도 많다. 결국 이 세상은 그 어디든 안전지대란 없다. 오직 내 마음과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와, 성경을 스스로 읽고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과, 신실한 자들의 권면을 겸손히 듣고 모든 결정가운데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릴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

  • 죄를 쉽게 사람들이 짓는다. 나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죄에 대해서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오히려 죄의 감각에서 무뎌지게 만든다. 그렇지 않다. 죄를 짓는자는 마귀에게 속하였다고 말씀한다. 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가? 마귀에게 속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도 된다.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났음이라

  • 거듭난자들에게는 그 속에 하나님의 씨가 있다. 그 씨가 계속 자라서 죄악들에 대해서 대항하고 의의 열매를 계속적으로 맺게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 하나님께 속한자들의 특징은 두가지 인데, 첫번째는 의를 행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의를 행하는 일들과 형제사랑하는 일들이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11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 결국 성경은 핵심강령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 누구나 가인처럼 될 수 있다. 우리안의 열등감, 질투심 등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살인까지 할 수 있는 악한마음의 씨앗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부지런히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18절.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 누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을 당하는가? 그것은 영적 아이들이 1차적으로 타겟이 된다. 물론 청년과 아비들도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는데서 자유로울 순 없다. 

- 언제가 마지막때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주님이 다시오시는 그날까지 그 전체기간이 마지막 때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다양한 현상들을 보고 지금이 말세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부터가 마지막 때고 말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항상 마지막때, 말세에 살고 있다고 인식하는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초대교회때부터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우리 주위에 적그리스도가 많이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19절.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신앙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단은 그리스도인 무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의 무리와 함께 있다고 모두가 그리스도인인것은 아니다. 

 

20절.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회심한자인가? 어떠한 눈에 보여지는 은사나 열매들이 그들의 그리스도인됨을 증거할 수 있을까? 그 은사와 열매의 검증은 누가 하는가?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회심한자는 오직 거룩하신자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사실이 있는자들이어야 한다.


21절.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 진리를 제대로 정확히 아는것이 모든 거짓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다.


22절.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 22절에 적그리스도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그것은 예수를 부인하는 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는자. 그들이 적그리스도이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충족시킨다면 우리는 조금 너그러이 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부인하거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는 자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적그리스도임을 인지해야한다.


23절.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 중요하다. 이단은 이러한 기본적인 교리부터 해치려 든다. 


24절.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 우리가 처음에 무엇을 들었는가? 잘못된 것이라면 다시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겠지만, 우리가 처음 받은 소식이 진리의 말씀이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걸 알 수 있다. 처음들은 것이 무엇인지는 25절에 기록되어 있다.


25절.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다. 성경은 영생을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사이의 친밀한 관계처럼 모든것이 오픈되어 친밀하게 사귀고 교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무엇을 믿는다는 개념을 넘어선다. 전적인 믿음이란 표현을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사실 믿음이란 것 자체가 원래 전적인것이다. 무엇을 빼고 넣고 할것이 없다. 진실되게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단순한 믿음에서 그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는것이 아니다.


26절.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 여전히 많은 잘못된 선지자들이 우리의 귀를 유혹한다. 우리의 욕심을 건드리고 욕망을 건드려서 바른 길에서 넘어지게 만들고 있다. 유혹의 길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진리를 정확하고 명확히 아는것이다. 그분과 진실된 교제를 하는 것이 우리를 모든 어둠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준다.

 

27절.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 우리가 누구에게 배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성령을 받았으므로 성령께서 성경말씀과 다양한 주변의 환경들로 인하여 우리를 지속적으로 교훈하시고 양육하신다는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계속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정확한 이해와 해석을 바탕으로 바른 적용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며,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모든 자원을 마련해 주셨다.

 

28절.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영적인 아이, 청년, 아비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한 자녀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금 이땅에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이들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담대함이 있을 것이고 예수님을 실제 뵙게 되는 날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29절.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안에 있으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의를 이땅에 살면서 실천할 수 있다. 하나님께로 났기에 하나님이 가지신 의로운 속성이 모든 믿는 신자들 안에 있다. 이를 실제적으로 믿는 이들은 삶에서 의로운 열매들을 많이 맺게 될 것이다.

7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우리는 항상 새로운 걸 좋아한다. 이미 충분히 들었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색다른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 이미 모든것이 계시되어 있는데, 그 계시된 말씀을 보고 듣고 묵상하기 보다는, 유명한 목사님의 말씀을 즐겨찾는 이들도 있다. 귀를 즐겁게 하고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줄순 있어도 행동의 변화까지 일으켜주지는 못한다.

 사도요한은 새로운 계명을 쓴다고 하지 않았고 이미 쓰여진 옛 계명이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이다.


8절.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옛계명과 새계명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 가르치는 바가 동일하다. 더 중요한 비중이 있지 않고 모두 비중이 있다. 새 계명은 이전의 계명을 다시금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추어졌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의 어둠을 제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이야기 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그리스도의 빛이 심겨져 있는 것이다.

 

9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이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이들, 하나님의 외아들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이들. 이들이 빛 가운데 있는 자들이다. 빛이 비춰짐으로 인하여 이전의 어둠의 생활에서 벗어나서 빛가운데서 살 수 있는 근원을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셨다. 

 이러한 사실은 행함으로 증명되는데,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 안에 빛이 비춰지고 있다는것이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미워하고 그 미움을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못하는 자들은 어둠에 있는 자들이다. 일시적으로 형제를 미워할 수 있고, 큰 해를 당함으로 인하여 꽤 오랜 기간 형제를 미워할 순 있지만 결론적으로 빛이 그 안에 있는 자들은 형제의 악함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러한 힘은 실제적으로 작동한다.

 

 

10절.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원수같이 악한 일을 행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비록 그 형제의 행동은 미워할지라도 그 형제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되었고 나와 동일한 피를 나눈 형제라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다는 그 사실을 근거해서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속에 거리낌이 없다. 왜냐하면 그 근거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 모든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11절.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아직도 여전히 형제를 미워하는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성경은 어둠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아무리 악한 행동을 했을지라도 어둠에 있으면 갈바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그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왜냐하면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빛의 길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가고 있는 길이 맞는길이라고 착각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눈이 먼자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빛의 길을 볼 수 없을것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빛의 길을 보기를 위해서라도 원수같은 행동을 한 형제를 용서하자. 그가 어떻게 반응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용서 할 수 있다.

1절.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은 이 서신을 읽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치 않기 위한 목적으로 편지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죄를 지을 수 있음을 염두해두고 죄를 지었을때의 대비책도 함께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는 죄를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함으로 더욱 더 죄 앞에 두려워 떨게 하게 한다. 온전한 의로움 앞에서 죄인은 두려워하고 의인은 더욱 의로움을 갈망하게 된다.

 

2절.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대언자, 의로우신 예수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소개한다. 신자는 이러한 두 단어에서 더욱 더 경외감과 죄에 대해서 멀어지게 되고 '의'를 더욱 사모하게 된다. 의로우신 하나님과 가까워지도록 예수께서 날 위해 친히 목숨 받쳐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진실로 알고 경험한 이들은 더 이상 죄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3절.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은 반드시 계명을 지켜내는 열매를 보인다. 그 계명을 지킨다는 것의 범위와 분량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분명한 건 그 열매들을 사람들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4절.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입술의 고백, 간증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행동과 삶의 기본적 태도에서 전혀 변화가 없는 이들에 대해서 성경은 '진리'가 그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록한다. 겉으로 표현하고 이해하여 말할 수 있지만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치 못한 이들은 회심한 자들이 아니다.

 

5절.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누구든지'라면서 시작된다.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진정 회심한 이들은 성경의 말씀이 삶으로 나타내는 결과(열매)를 반드시 보여주게 되어있다. 내 삶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성령의 열매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한번도 나타난적이 없다면 나는 구원받은 자가 아닐 수 있다.

 

6절.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의 안에 산다', 신자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다양한 영적 공급이 우리의 몸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보여지는 열매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함께 사는 사람은 그 함께 사는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이 몸에 배여있게 된다. 

 

5절.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 우리의 하나님은 빛이시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
 -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 빛되신 하나님을 벗어나 어둠가운데 거하고 있는가?
 - 우리가 어둠가운데 있을때 하나님은 함께 거하실 수 없으시다.
 -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때 우리는 빛가운데 있게 된다.
 -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하나님의 빛이 나를 통해서 세상을 비추게 될 것이다.
 - 내가 어둠 가운데 있으면, 그 어둠에 함몰되어 빛으로 나가기조차 거부하게 된다.
 - 성경은 조금의 어둠도 우리가운데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 빛, 또는 어둠, 둘중의 하나다.
 - 완전한 하나님의 임재, 또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벗어난 어둠에 거해있는 상태
 - 우리에게는 두 상태밖에 없다. 중간지대는 없다. 어둠과 빛은 공존할 수 없기때문이다.

6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둠의 아주 일부분이라도 우리의 삶에 드러난다면 그것은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다. 어둠이 조금이라도 허락되는것, 그런것은 없다.
 - 선의의 거짓말이 가능한것인가? 성경은 그것을 금하고 있다.
 - 어떠한 좋은 의도에서 시작되었든, 성경에서 금하는 것이 우리 삶에 이루어 진다면 그것은 이미 빛에서 벗어난 것이다.
 - 어둠에 거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리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을 하더라도 말이다.
 - 그러나 세상과 사탄은 계속 우리를 속인다. 조금의 어둠은 괜찮다라고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 그러면서 1%의 어둠을 우리가운데 허락하고, 그 어둠이 있더라도 우리가 하나님과 사귈수 있다고 계속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 성경은 그러한 것을 철저히 배재한다.

7절.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예수 그리스도는 빛 가운데에 계셨다.
 - 우리도 빛 가운데 거한다. 빛 가운데 거하면 우리의 행함이 의로 넘쳐난다.
 - 그 의로 넘쳐나는 모든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귐에서 나오게 된다.
 - 그러한 자들은 죄에서 벗어나서 의인의 삶을 살게 된다.
 - 그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서 우리는 찾는다.
 -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된 삶에서 벗어나서 의인의 삶으로 살게 인도한다.

8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우리는 거룩한 신분을 위로부터 얻게 되었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의인이다.
 - 그러나 현재적으로 우리는 육신과 새생명이 공존해 있는 상태이다.
 - 우리에게 육신이 있으므로 우리는 새생명으로 살지만 여전히 죄인의 상태이다.
 -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러한 자들에게 진리가 거하지 않는다고 요한일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 역사적으로 온전히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사탄은 계속 우리를 유혹해왔다. 여기에서 넘어진 자들이 많다.
 - 그러나 이땅을 살면서 온전히 의로운 삶을 살수는 없다. 그러한 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사하자.
 - 분명히 해둘 것은, 우리의 신분은 온전히 의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안에 육신이 존재하므로 우리가 성령에 굴복되지 않고 육신에 굴복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인 우리들의 고백이 죄가 있다고 하는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우리의 신분은 온전한 의인이다.
 - '칭의'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거룩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 그러나 현재적으로 '육신'이 우리안에 여전히 거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죄를 짓게 된다.
 - 이 죄에 대해서 우리는 회개해야 하는것이다. 
 - '의인'의 회개는 육신으로 살았던 것을 돌이켜, 다시금 성령으로 살것을 주님 앞에 다짐하는 것이다.
 - 그래서 우리의 신분에 합당하게 '의인'의 삶으로 살아 갈 수 있게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 넘어지더라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새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 우리는 하늘로부터 거듭난 놀라운 신분을 얻게 되었으므로 다시금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넘어질 수 있으나,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신분을 얻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자.

10절.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우리는 범죄할 수 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속에 거한다.
 - 그러므로 다시금 의인의 신분에 합당하게 거룩하게 살 수 있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지은 우리 자신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다.
 - 범죄함을 하나님께 토로하고, 다시금 하나님 아버지의 신분에 맞게 멋지고 거룩하고 빛된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 죄에서 넘어진 자들이 있다면, 그 '죄'를 묵상하지 말고, 우리를 '죄'에서 온전히 거룩케 하신 빛되신 '하나님'을 묵상하자.
 - 모든 영광 하나님께서 받으실 그 날, 우리를 때로는 낙망케하고 넘어지게 하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 같은 육신에서 온전히 벗어나게 되는 날이 올것이다.
 -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육신이 아닌 성령에 의해서 살아가는 삶이 가능하다.
 - '믿음'이 필요하다.
 - '은혜'가 필요하다. 

 -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1. 배경
    1. 기자 : 요한
    2. 시기 : 주후 90년
    3. '영지주의'에 대한 경계 포함,
      1. 초기 3세기 동안 교회를 위협한 매우 위험한 이단
      2. 모든 물질은 악하고 비물질은 선하다.
      3. 죄의 욕구를 정복하고자 금욕주의자 되거나, 육체가 끄는데로 방종에 빠지는 자유 분방한 사람이 됨
      4. 지식의 초월성과 물질의 불순성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아래와 같은 결과 나옴
        1. 지식이 모든 것이며 몸은 무가치 하다면, 높은 지식에 이르기 위해서 몸은 부서지고 으깨져야 함
        2. 또는, 몸은 더 많은 지식을 그 안에 담기 위해 온갖 부끄럽고 부정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몸은 본질상 악하기에 아무리 방임해도 더 악해질 수 없으며 또 빛을 받은 영혼은 몸에게 오염될 수 없기 때문이다.
      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참 인성을 부인함
        1. 하나님 안에 신성의 충만이 거한다면 어떻게 그분이 진짜 사람이 되어 물질적인 몸을 소유할 수 있을까?(그들은 모든 물질을 악하다고 믿음)
        2.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실제 인간이 아니었고, 혈과 육이 아니었고, 사실은 환영이었다고 가르침으로 그 문제 해결하려 함 -> 가현설
      6. 초기 영지주의의 시조는 마술사 시몬, 세린투스
        1. 세린투스 AD 90-100년경 활동
        2.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요한은 그의 가르침을 논박하기 위해 서신을 썼음
        3. 이원론적인 세계관(하나님보다 열등한 능력에 의해 물질이 창조되었다고 믿음)을 받아들였고,
        4. 색다른 기독록 설파 - 예수님은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미덕과 지혜를 부여받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과 그리스도(세례 받을 때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예수님에게 기적을 행하고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를 선포하게 했으나 죽기전에 그를 떠남)을 구분하였음
        5. 결국, 예수님은 고난당하고 죽고 부활했지만,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였기에 고난을 받지 않았고, 죽지 않았고, 피흘리지 않았음
    4. 위와 같은 영지주의의 배경하에 사도요한이 요한서신을 씀
    5. 서신의 특징(문체, 구조 등)
      1. 보통 바울의 서신들은 전반에 교리적, 후반에 실제적인 얘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요한서신은 그런 형태가 아니며 거의 분석이 힘듬. 
      2. 로보트 로 교수 " 극히 단순한 문장구조와, 논리의 전후 관계를 연결하는 접속어의 부재 등의 히브리식의 작문법의 특징이 눈에 띔", 비록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기자가 내내 구약의 구절의 가락과 운율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신 안에 히브리 작문을 모방했다는 두드러진 증거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기자만큼 그 생각과 표현방법이 자신도 모르게 구약의 방식위에 형성된 채 글을 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3. 요한의 사고방식은 나선형임, 사고의 흐름이 한곳에서 다른곳으로 일직선으로 이동하지 않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계단과 같이 항상 같은 중심을 돌아간다. 독술가 날듯이 매번 더 큰 원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면서 의와 사랑과 진리라는 세가지 주제를 반복해서 다룬다.

1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바라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창조가 시작될때부터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계셨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 이 말씀은 죽어 있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서 우리를 살게 하는 역동적인 생명의 말씀이다.
   - 우리를 살게하는 이 말씀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2) '우리가 들은 바요'
   - 우리의 인생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졌다.
  3) '눈으로 본 바요'
   - 우리의 두 눈이 직접 이 말씀을 대면하여 봤다.
   -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다.
  4) '자세히 보고'
   - 우리는 이 예수그리스도를 대충이 아닌, 자세히 본 것이다.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만지시는 예수그리스도를
  5) ' 우리의 손으로 만진바라'
   -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직접 예수님을 경험했다.
   - 물론 위의 말씀은 사도요한의 경우에 직접 말씀, 문자 그대로 경험한 것이다.
   - 그러나,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우리에게는 몸된 교회의 지체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듣고 보고 자세히보며 직접 만지지 않는가?

2절.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이시니라
 1)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 '생명'- 살다. 생기있는, 살아있는
  - 살아 있는 이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보여졌다.
 2) '이 영원한 생명'
  - 이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우리 인생이 가진 생명이 아니다.
  -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이다. 죽음이 결코 이길수 없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그 생명이 나타난 것이다.
 3) '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 이 영생을 보았고(실제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사건을 보았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로 올라가는 것도 보았다.)
  - 그 사실을 이제는 증거하고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4)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 이 영원한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 설명한다.
  -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었다.
 5)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이시니라'
  -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셨고, 하나님과 깊은 사랑가운데 있는 제2위격인 성자 하나님이셨다.
  - 그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1)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 우리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서신으로 너희들에게(우리들에게) 전하여 주는 목적은
 2)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 우리들로 하여금 사도요한과 동료 사도들(성도들)과 사귐을 갖도록(서로 알고 친분과 관계를 가지도록) 서신을 쓰고 있다.
 3) '우리의 사귐은'
  - 그런데, 사도요한의 사귐에는 특별한 것이 있는데..
 4)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 사도요한의 사귐에는 성부하나님, 그리고 그의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누리는 사귐, 친교가 있었다.
  - 사도요한에게 가장 중요했던 사귐의 관계는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누리는것에 있었다.
  - 사도요한이 하나님과 누렸던 이 사귐은 무엇이 있었고? 우리 인생들이 사람들과 사귀는 것과는 어떤것이 다른가?
 5)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4절.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 '우리가 이것을 씀은'
  - 사도요한의 첫번째 편지목적은 사도요한이 교제하고 있는 이 하나님과 함께 사귐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 편지를 썼다.
  - 그리고 이제 두번째 목적을 밝히는데, 그것은 사도요한과 함께하는 이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고 있다.
 2)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이 편지를 씀으로 사도요한은 물로 사도요한과 사귐이 있는 이에게 기쁨이 충만케 된다는 것이었다.

 3) 흠정역에는 '우리의' -> '너희의'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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