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7일


선교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선교지는 분리수거라는건 없는것 같다.

살아 가는 입장에서는 편하긴 하지만, 환경오염은 있겠지?

그렇다고 혼자 분리수거 하는게 의미는 없다.


암튼, 분리수거를 하다가 하지 않으면 정말 편하긴 하다.

그런데 그렇게 분리수거를 안하다가 한국에서 분리수거를 다시 하면...그건 엄청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편하면 좋고, 불편하면 싫어하는 어쩔수 없는 존재임을 또 깨닫게 된다.


분리수거 하지 않아도 되는 쓰레기장이다.

그냥 음식물이든, 분리수거가 되는것이든 다 저기다가 버린다.

물론 쓰레기봉투를 돈주고 사는일은 없다.

세금을 내긴 하는데, (한국인 입장에서는) 거의 무료수준이다.


쓰레기통 앞에 보이는 무엇인가 걸려있는것이 눈에 들어와서 찍은 사진이다.

이곳은 한달 평균임금이 200불정도 된다.

재밌는것은 의사도, 교수도, 사무직 직원도, 청소원도 대부분 200불전후다.

오히려 택시기사가 돈을 더 많이 번다.

그래서 의료나 교육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베품과 나눔이 있다.

그들보다 더 가난한이들을 생각하여 쓰레기통 옆에 저렇게 거지들을 위해서 누군가가 빵을 걸어 두었다.


이곳 사람들의 주식으로 먹는 빵인데, 20~25솜, 한국돈으로 400-500원정도 한다.

쓰레기통 옆에 이러한 장면을 쉽게 볼수 있다.


무슬림들의 실천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들은 율법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공동체적)으로 행동을 하지만, 결론적으로 타인을 향한 선행을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자유로워졌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지만.. 타인을 향한 선행을 많이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주변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무슬림들보다 선행이 적기에..무슬림들은 오히려 크리스챤들에게 행동으로 말을 하고 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지만, 속에 있는 것은 겉으로 들어나게 되어있고..

결국 복음은 말보다는 행동인데, 우리의 행동은 그들에 비해서 부끄러운 행동이 많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부끄러운 행동으로 지금 이시대에 저렇게 많은 무슬림들이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말보단 행동.

행동이 안되면 침묵하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신명기 24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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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4일, 선교지 2개월차

계획하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교지 도착하자마자 둘째를 주셨다.
아직 언어도 제대로 못하고, 무엇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상황이었다.
그런데, 둘째의 기쁨을 누리기에도 잠시...병원에서 둘째가 위험하단다.
조산기가 있어서 아내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어느정도 위험한 상태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병원은 사실 신뢰하기가 어렵기에, 한국에 있는 의사에게 물어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무조건 누워있으라고 하고, 한국에서 급히 관련약을 보내주신다고 하였다.

그 약을 기다라며, 그리고 조산기가 사라지길 기도하며 아내는 계속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보낸것 같다.
그 기간에 난생처음으로 집안일을 내 스스로 해야했다.
한국에서도 집안일이 물론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나같이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적 없는 남자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숙제였다.
거기다가 아내는 조산기로 위험한 상황에 있고 아직 첫째도 어려서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최소 한국에서는 밥이라도 시켜서 먹으면 되었지만, 이곳은 그럴수도 없고, 그럴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시켜먹는것 아니라 해먹는것도 재료부터 방법 모든것이 풀기 어려운 숙제! 그 자체였다.
여튼 일주일의 힘든고뇌의 시간을 이겨내면서 다시금 병원을 찾아갔다.

기도도 많이 했고, 한국에도 여러 성도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에 큰 걱정없이, 좋아졌을거란 기대로 병원을 간것이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아기의 심장이 멈췄단다.
그리고 산모가 위험하므로 급히 수술을 해야한다고 얘기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후로 시작되었다.
이곳 병원은 일반적으로 조산의 경우 수술시 마취를 하지 않는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식 의료가 조금 거칠다.

그래서 마취 없이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강압적으로 얘기하였다.
급히 한국의사게에 물어보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그렇게 하는것은 너무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어렵지만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이 좀 걸려도 좋으니 마취를 반드시 하고 수술을 하자고 얘기하였다.
의사는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때 우리를 도와줬던 통역하는 사모님께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통역을 도와주셨던 사모님 남편분이 한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덕에 많은 정보와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게 되었다.

감사히 마취 후 수술을 하게 되었다.
한국병원과는 달리, 이곳은 2차 감염이 많이 일어난다.
이후에 여러차례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하였는데,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끝나고 모든것을 마무리 하고 집에왔다.
사실 이때 나의 아내는 큰 고통속에서 아픔을 호소하게 되었다.
그것은 둘째를 잃은 아픔, 병원에서의 무서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갑작스런 충격.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였고, 기도도 그 어떤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말, 극적으로 그런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었던 아내를 주님께서 건져주셨다.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유산 후 그렇게 길지 않은 어둠의 통로속에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할때 주님이 건져주셨다.

인생에서 정말 우리 스스로 하기 힘든일이 있을때, 그럴때 주님께서는 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뭐라고 설명할순 없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피할길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극적인 도움으로 나의 아내는 둘째를 잃은 유산을 큰 트라우마로 가지진 않게 된것 같다.
오히려 내가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오는 아픔과 눈물이 있다.

아내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수술대위에서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
오직 주님께만 필요를 구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

고통과 아픔은 사람을 성숙시킨다고 했던가...
그러한 것이 우리의 성숙과 또한 그 성숙으로 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계기로 만든것이 주님의 섭리였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주셨던 그 아이를 하나님이 빨리 보고 싶으셨던것일까?

신앙은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분을 신뢰하기위한 것인데..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었을까?

고통과 아픔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아픔은 참 겪고 싶지 않지만...그래도 그 아픔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 또한 적극적으로 겪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모든 내 삶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매순간 고백하는것.
그것이 기도의 삶이고, 신앙인의 삶이고, 크리스챤의 삶이고, 선교사의 삶 아닐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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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7일. 선교지 1개월차.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선교사들이 현지음식만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것이다.
그렇지 않다.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을 만날때는 현지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집에서는 한식을 먹는다.
물론 한국과 같은 그러한 한식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최대한 비슷하게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걸 최대한 활용해서 한식을 먹는다.

한국과 같은 쌀은 아니지만..쌀을 구해서 밥을 하고...
여러가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식으로 먹는다..
그말은 여기에서는 음식하는 일이 한국보다 최소 2배, 최대는 측량할수 없을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암튼..그러한 환경에서 최대한 도와줘야 하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다.
많은건 도와줄수 없을지라도 최대한 시장을 같이 가는것, 그리고 물건 들어주는것, 그리고 이것저것 고를때 따지지 않는것(내가 음식을 하지 못하므로...) 뭐..이런것들이 생각이 난다.

한국은 마트에 가면 모든것들이 있고 쇼핑카트도 있고..여러가지 쉽게 쇼핑할 수 있다. 물론 돈이 꽤 들긴 한다.
이곳은 돈은 정말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것이 너무나 싸다.
특별히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양파, 감자, 당근, 오이 등은 싸다.
그런데 비싼것이 있다. 여기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한국음식을 위해서 필요한것들은 소비층이 적기 때문에 비싸다. 한국보다 더 비싼것들도 본것 같다. 그래서 싸긴 하지만 한식을 제대로 먹으려면 또 이러한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이곳은 정감이 있는곳이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고(자기들 물건 사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긴 하지만..(시간이 지나면 그냥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이걸로 싸워서 현지인들과 동일한 가격을 받아내기도 하고 그렇게 한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가장 현실감 있게 이곳의 경제상황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들의 성실성, 국민성, 여러가지 것들을 보게 하는 곳이다.

근데..이러한 장보기를 하면 하루의 반나절이 지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날잡아서 하루종일 장을 봐야할때도 있다.
한곳에 모든것이 있는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떨어져 있기도 하고, 없는 물건들도 많고..여러가지 제약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교사들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잘먹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단 건강해야 선교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먹어야 또 열심히 사역할 것 아닌가?
현지인들 만날때는 잘 먹는것이 아니라 잘 먹어주는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최소 한끼라도 잘 먹어야 하루를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곳 선교지에서의 삶을 즐기며 기뻐하며 살아낼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었었다.

선교지 도착해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보기와 시장을 보기 위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어라고 하는건, 숫자만 알면 되기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것이 잘 안들리고 헤깔리고 그러하였다.
특히 러시아어는 더 헤깔린다. 몇달이 지나고서야 겨우 적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 시장보기를 하면서 아내와도 많이 다투었었다.
다투는 주요관점은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사역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장보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쓰는것 아닌가?
아내는, 이게 다 우리 가족이 먹기 위해서 시간을 쓰는것이다.

나는 사역에 있어서 부담과 압박이 알게 모르게 많았던것 같고..
아내는 오히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신경을 많이 썼던것 같다.
이러한 다툼과 오해를 해결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나는 시장보기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적극 도와주는 남편으로 변하게 되었다.
왜냐면...결국 이게 다 내가 먹는게 아니었던가?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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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 begins at home, 2013년 8월 11일, 선교지 1개월차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다. 사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참 공감이 되는 말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집’이 가지는 의미가 참 많지만 공통적으로 ‘안식’,’쉼’ 이란 단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그러한 안식과 쉼은 가정에 ‘사랑’이 있는것을 전제로 우리가 느낄수 있는 감정들이다.

우리의 삶의 시작이 되는 장소는 ‘집’이고, 그 집의 근본은 ‘가정’이다. 그러므로 집은 우리 모두에게 참 의미 있는 공간이다. 우리의 선교지에서의 시작이 되었고 마침이 되는 장소는 바로 이 ‘집’이었다.

처음 도착 후 우리의 안식처가 되었던 장소이다. 원래 들어가기로 예정되었던 집이 공사를 하게 되어서 조금 작은 이 집을 임시거처로 있게 되었다. 분명 집 주인은 2주면 공사가 끝난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2주면 끝난다는 공사가 2-3개월이 될줄은 전혀 몰랐다. 암튼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집에서의 추억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선교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도착후 1주일은 관광객 모드로 지냈던것 같다. 일반적으로 학생비자부터 시작하므로 우리또한 러시아어학과정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학원을 등록하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비자가 발급되기까지 시간이 있었고 초반에 정착하기 위해서 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까지는 관광객 모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곳에 대해서 적응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러시아어를 조금, 정말 조금 공부했었다. 그 덕분에 서바이벌은 하였지만, 말이 서버이벌이지...정말 개고생(—)했다. 언어의 장벽. 그것은 우리를 여러번 낙담케 하는 주된 소재였고, 우리를 겸손케 하는데 최고의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근데 재미난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단한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고,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걸 경험하게 되었다. 낯선 환경, 너무나 한국과는 다른 집의 구조, 언어의 장벽, 모든것들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곳에서 너무나 잘 자고 잘 먹고 잘 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것, 아니 어렵게 얻을 수 있는것이더라도 이곳에는 못 얻는 것들이 많다. 구할수 없고, 불가능한 환경이 주어지면 사람은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고 그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태도로 빠르게 바뀔 수 있다. 또 새로운 것들을 즐기고 경험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적응이라는것, 그것은 기존의 것을 바꾸는 고통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즐거움도 있다. 결국 우리의 지경이 넓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것은 하나님을 더욱 더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광대하신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해준 첫 집.
내 인생에서, 우리 가족의 인생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집이기에 참으로 소중하다.
나는 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앞이 막막하고 두려울때, 그것을 지나가면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된다.
그길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이라면, 주저하지 말자!
두려움은 금세 사라지고 그분의 광대하심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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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도착, 설레임. 2013년 8월 8일

32세, 이제 인생을 막 시작하는 나이에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과 함께 선교지 땅을 밟게 되었다.
강성 이슬람은 아니었지만, 이슬람 국가이기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함께 이곳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우리 가족은 기쁨으로 도착하였다.
모든것을 버리고 이땅에 도착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모든것을 버려야 얻을 수 있는것이 더 많기에 우리는 더 얻기 위해서 이곳을 선택한것이었다.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가끔씩 드는 두려움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있을 수 있지만 이때는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것 같다.
단지, 젊은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에 여러가지것들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분명 주님 앞에 진실되게 한 기도였고, 주님 앞에서 한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잘 몰랐다.

사실, 우리를 잘 안다고 한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를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그 분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기에 우리는 이 일을 아무런 두려움과 걱정없이 전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키르키즈스탄 비쉬켁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우리 홀로 도착한것은 아니었고,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함께 이곳 낯선곳에 도착하였기에 더욱 우리의 두려움은 감추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는 27세였다.
요즘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이들이 많지만, 나의 아내는 나를 믿은건지, 하나님을 믿은건지, 둘다를 믿은건지 암튼 감사하게 나를 믿고 결혼해주었다.
그리고 신혼을 채 누리기도 전에 아들을 임신하고 아들을 낳고 한참 아이를 키워야 할 시기에 이곳 선교지를 함께 오게 되었다.

사실,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아내다.
겉으로는 남자들이 사역을하는것 같지만, 실제 보이지 않는곳에서 엄청난 수고를 하는건 아내의 몫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선교의 부르심을 받는것 이상으로 아내의 선교에 대한 부르심은 더욱 확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쉽지 않은 선교지에서의 삶에서 버텨내질 못한다.

감사한것은, 나보다는 아내가 훨씬 선교지에서 더욱 잘 살아냈던것 같다.
많은 순간 힘들어한 건 나였으며, 아내는 오히려 선교지에서의 삶을 즐기고 감사하며 생활해 가는걸 옆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더욱 중요한 위치에 있긴 하다.
연약한 자에게 더욱 중요한 자리를 맡기신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까?

나는 연약하였고, 많이 부족하였기에 더욱 하나님께 엎드릴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기대와 설레임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한 부푼 마음을 가지고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고 밖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선교사에게 얼마나 감사와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 단체에 속해있지도 않았고, 어떠한 도움을 현지에서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줄 천사들을 항상 마련해놓고 준비해놓고 계셨다.

하나님을 의지하는것이 맞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분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또 한번 보게 된다.
분명 이때 느꼈던건, 어떠한 어려움과 두려움 고통보다는 설렘, 희망, 도전등의 더욱 진리와 진실에 가까운 감정들이었다.
결국 우리 인생을 이끄는건 희망과 비전, 설레임, 기쁨인것 같다.
미래가 희망적이고 도전적이고 열매들이 기대될때 우리는 설레이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게 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죽음'까지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할 '담대함'이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이다.
분명 이때 우리는 그러한 높은 수준의 감정과 기대로 휩싸여 있었다.
그러한 소망과 비전은 우리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명기 1장 30~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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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내 마음에 절실하고도 중요하게 다가오는 문제는 선교사 자녀들에 대한 복지이다. 선교목표의 달성이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알면서 행해 질 수는 없다. 이런 일들은 여전히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다. 베드로의 자기중심적인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마 19:27~30, 복음을 위해 가족을 버렸으니 내가 무엇을 얻겠나이까?) 그가 일찍이 언급한 어린이들을 돌보는 것에 대한 강한 훈계와 경고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마18:1~14, 이 소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진저!). 그러므로 파송단체들은 선교회 가족의 모든 일원들을 돌보는 일에 우선시해야 한다. MK(선교사 자녀) 케어 제공자들은(예를 들자면, 교육 자문인 교사, 기숙사 사감, 재입국 담당자) 오늘날 선교에서 점차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선교사 멤버케어 세계적 관점과 실천, CLC, 74page Interacton 대표 ' 데이빗폴락' 의 글중 일부 발췌"

하나님께서는 한국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많은 선교의 일꾼들을 택하시고 선교지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축복을 주셨다.
1세기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이렇게 많은 선교사들을 배출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가지가 있을것이다.

특별히 한국인들의 열정과 잘 계산하지 않고 뛰어드는 민족성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것 같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공동체가 잘 발달되어 있는데, 이러한 민족성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것 같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특성보다는 한국인들이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한것이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선택한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질적으로도 인적자원으로도 한국인들은 선교지에서 많은 사역을 하고 있으며 많은 열매들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열매를 거두지 않는 지역에서도 많은 씨앗은 뿌려지고 있다.
이러한 일에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와 후원자들 모두 잘했다고 주님이 칭찬하실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일에 서로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것 같다.

그러나, 모든것을 잘할수는 없는법이다.
그동안 잘해왔지만, 앞으로 주님의 사역에 더욱 쓰임받고 하나님의 촛대가 우리나라에서 옮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부족한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미래를 준비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선교1세대들은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였다.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들은 선교 2세대들의 사역이다.

자국문화권에서 살다가 선교지로 떠나서 외국어를 습득하고,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나가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극복되기 보다는 견뎌내고 계속적으로 자기부인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선교사의 자녀들이 선교사역을 하게된다면 선교1세대와는 확연히 다른영역이 있다.

세가지 정도로 함축할수 있는데,
첫째는 선교에 대한 개념에 대한 이해의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선교지에서 태어났고, 선교가 무엇인지 부모님을 통해서 배웠으며, 그들의 삶이 곧 선교사의 삶이었다.
이미 자문화권에 익숙한 몸을 가지고 선교지에서 선교의 삶을 살아내는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선교의 멘토도 필요하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는것도 필요하고, 주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선교지에서 배우는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선교사 자녀들은 부모님들이 그렇게 배우는 과정들을 제일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선교를 이해하는 영역은 그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문화에 대한 이해의 영역이 다른것이다.
선교사 자녀들은 자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정확히 얘기하면 민족 정체성이 부족하거나 없을수 있다.
한국인도 아니고, 선교지 나라사람도 아니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문화에 종속되지 않는다. 이 말은 다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자문화배경에서 자란 선교 1세대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은 특별히 한민족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민족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나라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이 타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 배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도 그나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문화가 결합된 선교사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선교에 있어서 두가지 핵심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언어에 대한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 두가지를 배우는데 타민족에 비하여 약한게 사실인것 같다.
어쨋건, 선교사 자녀들은 타문화를 배우는데 아주 쉽다.

셋째는 언어습득능력이다.
한국인들은 언어습득능력이 약하다. 이는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선교사 자녀들은 언어습득능력이 좋다.
기본적으로 3-4개 하는것이 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세가지 중요한 것들만 짚어보았다.
선교사 자녀들이 반드시 선교를 해야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선교사 자녀들중에 선교를 한다면 그것보다 효과적인 사역은 찾기 힘들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맞게끔 그들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러나, 선교 1세대가 선교사 자녀교육에 있어서 실패하여, 그들의 자녀들이 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져서 선교를 헌신하는걸 꺼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것이다. 그것은 하나는 얻었지만 열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선교사들에게 사역에 대하여 지나친 기대와 요구를 한것이 아닌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그러한 지나친 요구가 그들의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사역에만 매진하도록 만든 결과가 아닌가 우리는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사역과 그들의 가정도 함께 돌볼 수 있도록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이 기대와 요구수준을 성경의 기준점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한국은 유교적 배경과 함께 성경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경적인 중요한 가치+ 유교적 가치가 결합되어 지나친 희생, 지나친 헌신이 강요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성경은 지나친 희생과 지나친 헌신을 강요한 적이 없다.

오직 사랑에 근거한 기쁨의 헌신, 기쁨의 희생, 기쁨으로 드리는 온전한 제사를 가르치고 있기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에 근거한 헌신은 그들의 자녀들과 부부관계를 더욱 온전케 해준다.
그런데, 한국은 유교적 배경과 섞인 가르침으로 인하여, 부부관계가 깨어지고 자녀들이 더 이상 믿음의 길을 가지 않는 특이한 결과들을 현재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바가 성경에 비추어서 다시 재조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선교사들에게 요구하는 기대를 줄이는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인식의 변화가 먼저 일어난다면, 그 이후에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과 케어 진로에 대해서도 한국교회와 선교단체가 구체적으로 도와주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에 계신 분들이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것에 대하여 비용이 많이 든다고 비난하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비난에 앞서서, 선교사 자녀들이 어떻게 초,중고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해보고 실제적으로 어떤지 알아보는것이 성도로써의 마땅한 바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자신의 자녀가 어느 나라의 어떠한 대학도 못들어가고, 미래에 직업도 없이 살아간다면 어떻겠는가?
물론 하나님께서 선교사의 자녀들을 책임지신다.
그러나 함께 동역하는 우리들도 그들을 우리들의 자녀로 생각하고 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사용되는 교육비의 10%만이라도 선교사의 자녀들에게 사용된다면, 선교지에 있는 모든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은 너무나 많은 비용이 자녀교육에 들어가고 있는것 같다. 우리는 믿음의 한 형제,자매이므로 함께 죽고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2015년까지 파송된 선교사 수가 3만명이 조금 안된다.

확실히 한국은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가장 중요시 여기시는 '선교'의 일에 쓰임을 받았고, 지금도 쓰임받고 있다.


선교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이제는 한국인의 선교사 수가 전체 선교사 수의 50%가까이에 이른다.

선교지에서 한 민족이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 수가 이렇게 많은건 심히 놀라운 사실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쓰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인들의 민족성과 성향도 분명 중요한 영향으로 미쳤을 것이다.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한국성도들과 선교사들 사이에서 여전히 선교의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 한가지가 '선교사 멤버케어'이다.


선교사 멤버케어라고 하면 선교사들은 알겠지만, 일반 한국성도들은 그 용어에 오히려 생소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것이다.

심지어 어떤이들은 선교사가 왜 멤버케어가 필요하냐면서? 오히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 멤버케어는 주님의 명령이고, 우리가 반드시 선교에 있어서 성취해야 할 과제이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교사를 부르셔서 그 사람과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선교지의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선교사들이다.

그들의 과업의 결과는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일하였는지에 따라서 열매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한 열매들을 거두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고 선교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하신다.


이 중심에 있는 이가 바로 '선교사'다.

그런데 이 선교사라는 사람은 우리와 동일한 심정을 가졌고,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선교사가 더 위대한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은 동일하다. 다만 선교사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축복을 주셔서 선교지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을 보게 하신 이들이다.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필요가 있다.

힘들면 쉬어줘야 하고,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며, 친구들도 필요하고, 여러가지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필요로 하는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동안 이러한 것을 '사역'이라는 위대한 이름으로 '희생'을 알게 모르게 강요했다.

'선교사'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이러한 '희생'을 성도들이 요구하였거나, 사역자 본인들이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의 강권함으로 인한 자발적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모든 헌신은 한국적인, 유교적인 희생일 수 있다.


성경과는 다른 자기의를 추구하는 희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열매가 아닌 쓴뿌리와 상처와 아픔들로 남겨질 수 있는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결과를 막기 위해서 우리는 선교사 멤버케어가 필요함을 보게 된다.

선교사가 영적,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선교지의 교회와 사역들에 있어서도 건강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


많은 한국선교사들은 '사역'이 거의 100%다.

이는 선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들의 특징이다.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한국인들은 '일'이 인생의 전부인것 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한국인들은 '사역'이라는,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희생'을 지나치게 강요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것에서 여러가지 불협화음과 잘못된 열매들과 쓴뿌리들이 드러나는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원인을 살펴보고 다시금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필요한것들을 선교단체와 한국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일 것이다.


선교사들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내가 만난 선교사들은 년차가 오래되면 될 수록, 감정적으로 아주 민감해져 있는것을 보게 되었다.

살짝만 감성이 터치되도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감성이 풍부해진것은 선교지에서 얻을 수 있는 축복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감성이 풍부해진것이 각종 상처와 아픔과 고통들로 인한것이라면 한국의 파송교회와 선교단체가 그 필요를 채워줘야 하지 않을까..

아니 필요까지 채워주진 않더라도 최소한 파송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선교사들에게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교사들이 아니고서야..

선교지의 경험이 없으면 선교사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선교사 멤버케어의 핵심은 주님의 케어이다.

주님께서 선교사들을 친히 케어하신다.

그런데 그 주님이 선교사들을 케어하실때, 사람들을 사용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교사들의 필요를 채워주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선교사들에게 어려운 짐과, 상처를 주지는 말자.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멤버케어는,

주님께서 선교사들을 케어하는 것이고..

선교사들끼리 서로에 대한 멤버케어를 해주는 것이고..

그리고 파송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선교사들에게 어려운 짐을 주지 않고, 상처를 주는 일들을 최소한으로 삼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선교사들은 그들 스스로 이미 큰 부담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들에게 짐을 주지 말자.

그 짐들이 어떤것들인지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연재하고자 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10:24)


 

 
 선교역사상 한국교회는 신생 선교사 파송국에 속하지만, 현재 11,000명 이상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함으로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국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양적인 성장이 곧 한국교회 선교의 질적인 성장이라 평가될 수는 없다. 오히려 부정적 측면에서 이러한 급속한 한국교회 선교의 성장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인적자원의 가치와 가능성을 족히 인식하지 못하게 하며, 그들이 파송한 선교사들에 대한 적절하고도 전략적인 투자를 도외시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선교현장에 몸담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불필요한 희생을 요구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역자는 선교현장에서 정신적, 영적 "공황"을 토로하는 한국의 많은 젊은 선교사들을 만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다양한 갈등과 어려움 가운데서 모국으로부터의 특별한 후원이나 도움 없이 멀리 타국에서 "버티기"식의 고독한 투쟁을 홀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갈등들은 그들이 한국에 돌아온다고 해도 크게 바뀌지 않으며, 때로는 머무를 처소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차 충족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의 고통이 더욱 가중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중략..

 역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위치한 선교사 멤버케어 센터인 Heartstream Resources에서 지도자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훈련 중 특히 기억에 남은 말이 있는데, 그것은 선교사 멤버케어는 더 이상 선교사들의 "생존"(survival)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양육하고 성장"(nurturing & growing)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선교는 선교사들에 대해 아직까지는 "생존"을 요구하는 입장이라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오늘도 겸손히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는 신실한 교회와 주의 종들의 헌신 속에서 이 소중한 과업은 꾸준히 진보하며 성취될 것이라 믿는다.

선교사 멤버케어 세계적 관점과 실천 / 켈리 오도넬 편집, CLC
2004년 7월, 서울신학대학교 연구실에서 최형근, 엄은정 
역자서문중에서 일부 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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