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7일


선교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선교지는 분리수거라는건 없는것 같다.

살아 가는 입장에서는 편하긴 하지만, 환경오염은 있겠지?

그렇다고 혼자 분리수거 하는게 의미는 없다.


암튼, 분리수거를 하다가 하지 않으면 정말 편하긴 하다.

그런데 그렇게 분리수거를 안하다가 한국에서 분리수거를 다시 하면...그건 엄청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편하면 좋고, 불편하면 싫어하는 어쩔수 없는 존재임을 또 깨닫게 된다.


분리수거 하지 않아도 되는 쓰레기장이다.

그냥 음식물이든, 분리수거가 되는것이든 다 저기다가 버린다.

물론 쓰레기봉투를 돈주고 사는일은 없다.

세금을 내긴 하는데, (한국인 입장에서는) 거의 무료수준이다.


쓰레기통 앞에 보이는 무엇인가 걸려있는것이 눈에 들어와서 찍은 사진이다.

이곳은 한달 평균임금이 200불정도 된다.

재밌는것은 의사도, 교수도, 사무직 직원도, 청소원도 대부분 200불전후다.

오히려 택시기사가 돈을 더 많이 번다.

그래서 의료나 교육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베품과 나눔이 있다.

그들보다 더 가난한이들을 생각하여 쓰레기통 옆에 저렇게 거지들을 위해서 누군가가 빵을 걸어 두었다.


이곳 사람들의 주식으로 먹는 빵인데, 20~25솜, 한국돈으로 400-500원정도 한다.

쓰레기통 옆에 이러한 장면을 쉽게 볼수 있다.


무슬림들의 실천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들은 율법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공동체적)으로 행동을 하지만, 결론적으로 타인을 향한 선행을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자유로워졌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지만.. 타인을 향한 선행을 많이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주변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무슬림들보다 선행이 적기에..무슬림들은 오히려 크리스챤들에게 행동으로 말을 하고 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지만, 속에 있는 것은 겉으로 들어나게 되어있고..

결국 복음은 말보다는 행동인데, 우리의 행동은 그들에 비해서 부끄러운 행동이 많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부끄러운 행동으로 지금 이시대에 저렇게 많은 무슬림들이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말보단 행동.

행동이 안되면 침묵하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신명기 24장 21절)




'선교 > 선교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교지 시골사역  (0) 2018.10.22
선교사 자녀케어  (0) 2018.09.26
더 가난한이들을 생각하는 이들  (0) 2018.08.25
잃어버림  (0) 2018.08.06
시장보기  (0) 2018.07.07
Love begins at home  (0) 2018.06.09


2013년 10월 14일, 선교지 2개월차

계획하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교지 도착하자마자 둘째를 주셨다.
아직 언어도 제대로 못하고, 무엇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상황이었다.
그런데, 둘째의 기쁨을 누리기에도 잠시...병원에서 둘째가 위험하단다.
조산기가 있어서 아내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어느정도 위험한 상태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병원은 사실 신뢰하기가 어렵기에, 한국에 있는 의사에게 물어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무조건 누워있으라고 하고, 한국에서 급히 관련약을 보내주신다고 하였다.

그 약을 기다라며, 그리고 조산기가 사라지길 기도하며 아내는 계속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보낸것 같다.
그 기간에 난생처음으로 집안일을 내 스스로 해야했다.
한국에서도 집안일이 물론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나같이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적 없는 남자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숙제였다.
거기다가 아내는 조산기로 위험한 상황에 있고 아직 첫째도 어려서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최소 한국에서는 밥이라도 시켜서 먹으면 되었지만, 이곳은 그럴수도 없고, 그럴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시켜먹는것 아니라 해먹는것도 재료부터 방법 모든것이 풀기 어려운 숙제! 그 자체였다.
여튼 일주일의 힘든고뇌의 시간을 이겨내면서 다시금 병원을 찾아갔다.

기도도 많이 했고, 한국에도 여러 성도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에 큰 걱정없이, 좋아졌을거란 기대로 병원을 간것이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아기의 심장이 멈췄단다.
그리고 산모가 위험하므로 급히 수술을 해야한다고 얘기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후로 시작되었다.
이곳 병원은 일반적으로 조산의 경우 수술시 마취를 하지 않는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식 의료가 조금 거칠다.

그래서 마취 없이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강압적으로 얘기하였다.
급히 한국의사게에 물어보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그렇게 하는것은 너무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어렵지만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이 좀 걸려도 좋으니 마취를 반드시 하고 수술을 하자고 얘기하였다.
의사는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때 우리를 도와줬던 통역하는 사모님께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통역을 도와주셨던 사모님 남편분이 한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덕에 많은 정보와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게 되었다.

감사히 마취 후 수술을 하게 되었다.
한국병원과는 달리, 이곳은 2차 감염이 많이 일어난다.
이후에 여러차례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하였는데,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끝나고 모든것을 마무리 하고 집에왔다.
사실 이때 나의 아내는 큰 고통속에서 아픔을 호소하게 되었다.
그것은 둘째를 잃은 아픔, 병원에서의 무서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갑작스런 충격.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였고, 기도도 그 어떤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말, 극적으로 그런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었던 아내를 주님께서 건져주셨다.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유산 후 그렇게 길지 않은 어둠의 통로속에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할때 주님이 건져주셨다.

인생에서 정말 우리 스스로 하기 힘든일이 있을때, 그럴때 주님께서는 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뭐라고 설명할순 없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피할길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극적인 도움으로 나의 아내는 둘째를 잃은 유산을 큰 트라우마로 가지진 않게 된것 같다.
오히려 내가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오는 아픔과 눈물이 있다.

아내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수술대위에서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
오직 주님께만 필요를 구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

고통과 아픔은 사람을 성숙시킨다고 했던가...
그러한 것이 우리의 성숙과 또한 그 성숙으로 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계기로 만든것이 주님의 섭리였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주셨던 그 아이를 하나님이 빨리 보고 싶으셨던것일까?

신앙은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분을 신뢰하기위한 것인데..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었을까?

고통과 아픔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아픔은 참 겪고 싶지 않지만...그래도 그 아픔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 또한 적극적으로 겪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모든 내 삶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매순간 고백하는것.
그것이 기도의 삶이고, 신앙인의 삶이고, 크리스챤의 삶이고, 선교사의 삶 아닐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장 11절)


'선교 > 선교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교사 자녀케어  (0) 2018.09.26
더 가난한이들을 생각하는 이들  (0) 2018.08.25
잃어버림  (0) 2018.08.06
시장보기  (0) 2018.07.07
Love begins at home  (0) 2018.06.09
선교지 도착, 설레임  (0) 2018.05.24



2013년 9월 27일. 선교지 1개월차.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선교사들이 현지음식만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것이다.
그렇지 않다.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을 만날때는 현지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집에서는 한식을 먹는다.
물론 한국과 같은 그러한 한식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최대한 비슷하게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걸 최대한 활용해서 한식을 먹는다.

한국과 같은 쌀은 아니지만..쌀을 구해서 밥을 하고...
여러가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식으로 먹는다..
그말은 여기에서는 음식하는 일이 한국보다 최소 2배, 최대는 측량할수 없을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암튼..그러한 환경에서 최대한 도와줘야 하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다.
많은건 도와줄수 없을지라도 최대한 시장을 같이 가는것, 그리고 물건 들어주는것, 그리고 이것저것 고를때 따지지 않는것(내가 음식을 하지 못하므로...) 뭐..이런것들이 생각이 난다.

한국은 마트에 가면 모든것들이 있고 쇼핑카트도 있고..여러가지 쉽게 쇼핑할 수 있다. 물론 돈이 꽤 들긴 한다.
이곳은 돈은 정말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것이 너무나 싸다.
특별히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양파, 감자, 당근, 오이 등은 싸다.
그런데 비싼것이 있다. 여기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한국음식을 위해서 필요한것들은 소비층이 적기 때문에 비싸다. 한국보다 더 비싼것들도 본것 같다. 그래서 싸긴 하지만 한식을 제대로 먹으려면 또 이러한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이곳은 정감이 있는곳이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고(자기들 물건 사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긴 하지만..(시간이 지나면 그냥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이걸로 싸워서 현지인들과 동일한 가격을 받아내기도 하고 그렇게 한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가장 현실감 있게 이곳의 경제상황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들의 성실성, 국민성, 여러가지 것들을 보게 하는 곳이다.

근데..이러한 장보기를 하면 하루의 반나절이 지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날잡아서 하루종일 장을 봐야할때도 있다.
한곳에 모든것이 있는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떨어져 있기도 하고, 없는 물건들도 많고..여러가지 제약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교사들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잘먹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단 건강해야 선교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먹어야 또 열심히 사역할 것 아닌가?
현지인들 만날때는 잘 먹는것이 아니라 잘 먹어주는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최소 한끼라도 잘 먹어야 하루를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곳 선교지에서의 삶을 즐기며 기뻐하며 살아낼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었었다.

선교지 도착해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보기와 시장을 보기 위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어라고 하는건, 숫자만 알면 되기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것이 잘 안들리고 헤깔리고 그러하였다.
특히 러시아어는 더 헤깔린다. 몇달이 지나고서야 겨우 적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 시장보기를 하면서 아내와도 많이 다투었었다.
다투는 주요관점은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사역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장보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쓰는것 아닌가?
아내는, 이게 다 우리 가족이 먹기 위해서 시간을 쓰는것이다.

나는 사역에 있어서 부담과 압박이 알게 모르게 많았던것 같고..
아내는 오히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신경을 많이 썼던것 같다.
이러한 다툼과 오해를 해결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나는 시장보기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적극 도와주는 남편으로 변하게 되었다.
왜냐면...결국 이게 다 내가 먹는게 아니었던가?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3:13)


'선교 > 선교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교사 자녀케어  (0) 2018.09.26
더 가난한이들을 생각하는 이들  (0) 2018.08.25
잃어버림  (0) 2018.08.06
시장보기  (0) 2018.07.07
Love begins at home  (0) 2018.06.09
선교지 도착, 설레임  (0) 2018.05.24


 Love begins at home, 2013년 8월 11일, 선교지 1개월차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다. 사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참 공감이 되는 말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집’이 가지는 의미가 참 많지만 공통적으로 ‘안식’,’쉼’ 이란 단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그러한 안식과 쉼은 가정에 ‘사랑’이 있는것을 전제로 우리가 느낄수 있는 감정들이다.

우리의 삶의 시작이 되는 장소는 ‘집’이고, 그 집의 근본은 ‘가정’이다. 그러므로 집은 우리 모두에게 참 의미 있는 공간이다. 우리의 선교지에서의 시작이 되었고 마침이 되는 장소는 바로 이 ‘집’이었다.

처음 도착 후 우리의 안식처가 되었던 장소이다. 원래 들어가기로 예정되었던 집이 공사를 하게 되어서 조금 작은 이 집을 임시거처로 있게 되었다. 분명 집 주인은 2주면 공사가 끝난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2주면 끝난다는 공사가 2-3개월이 될줄은 전혀 몰랐다. 암튼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집에서의 추억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선교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도착후 1주일은 관광객 모드로 지냈던것 같다. 일반적으로 학생비자부터 시작하므로 우리또한 러시아어학과정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학원을 등록하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비자가 발급되기까지 시간이 있었고 초반에 정착하기 위해서 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까지는 관광객 모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곳에 대해서 적응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러시아어를 조금, 정말 조금 공부했었다. 그 덕분에 서바이벌은 하였지만, 말이 서버이벌이지...정말 개고생(—)했다. 언어의 장벽. 그것은 우리를 여러번 낙담케 하는 주된 소재였고, 우리를 겸손케 하는데 최고의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근데 재미난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단한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고,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걸 경험하게 되었다. 낯선 환경, 너무나 한국과는 다른 집의 구조, 언어의 장벽, 모든것들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곳에서 너무나 잘 자고 잘 먹고 잘 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것, 아니 어렵게 얻을 수 있는것이더라도 이곳에는 못 얻는 것들이 많다. 구할수 없고, 불가능한 환경이 주어지면 사람은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고 그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태도로 빠르게 바뀔 수 있다. 또 새로운 것들을 즐기고 경험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적응이라는것, 그것은 기존의 것을 바꾸는 고통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즐거움도 있다. 결국 우리의 지경이 넓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것은 하나님을 더욱 더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광대하신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해준 첫 집.
내 인생에서, 우리 가족의 인생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집이기에 참으로 소중하다.
나는 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앞이 막막하고 두려울때, 그것을 지나가면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된다.
그길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이라면, 주저하지 말자!
두려움은 금세 사라지고 그분의 광대하심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선교 > 선교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교사 자녀케어  (0) 2018.09.26
더 가난한이들을 생각하는 이들  (0) 2018.08.25
잃어버림  (0) 2018.08.06
시장보기  (0) 2018.07.07
Love begins at home  (0) 2018.06.09
선교지 도착, 설레임  (0) 2018.05.24


선교지 도착, 설레임. 2013년 8월 8일

32세, 이제 인생을 막 시작하는 나이에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과 함께 선교지 땅을 밟게 되었다.
강성 이슬람은 아니었지만, 이슬람 국가이기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함께 이곳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우리 가족은 기쁨으로 도착하였다.
모든것을 버리고 이땅에 도착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모든것을 버려야 얻을 수 있는것이 더 많기에 우리는 더 얻기 위해서 이곳을 선택한것이었다.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가끔씩 드는 두려움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있을 수 있지만 이때는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것 같다.
단지, 젊은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에 여러가지것들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분명 주님 앞에 진실되게 한 기도였고, 주님 앞에서 한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잘 몰랐다.

사실, 우리를 잘 안다고 한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를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그 분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기에 우리는 이 일을 아무런 두려움과 걱정없이 전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키르키즈스탄 비쉬켁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우리 홀로 도착한것은 아니었고,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함께 이곳 낯선곳에 도착하였기에 더욱 우리의 두려움은 감추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는 27세였다.
요즘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이들이 많지만, 나의 아내는 나를 믿은건지, 하나님을 믿은건지, 둘다를 믿은건지 암튼 감사하게 나를 믿고 결혼해주었다.
그리고 신혼을 채 누리기도 전에 아들을 임신하고 아들을 낳고 한참 아이를 키워야 할 시기에 이곳 선교지를 함께 오게 되었다.

사실,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아내다.
겉으로는 남자들이 사역을하는것 같지만, 실제 보이지 않는곳에서 엄청난 수고를 하는건 아내의 몫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선교의 부르심을 받는것 이상으로 아내의 선교에 대한 부르심은 더욱 확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쉽지 않은 선교지에서의 삶에서 버텨내질 못한다.

감사한것은, 나보다는 아내가 훨씬 선교지에서 더욱 잘 살아냈던것 같다.
많은 순간 힘들어한 건 나였으며, 아내는 오히려 선교지에서의 삶을 즐기고 감사하며 생활해 가는걸 옆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더욱 중요한 위치에 있긴 하다.
연약한 자에게 더욱 중요한 자리를 맡기신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까?

나는 연약하였고, 많이 부족하였기에 더욱 하나님께 엎드릴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기대와 설레임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한 부푼 마음을 가지고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고 밖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선교사에게 얼마나 감사와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 단체에 속해있지도 않았고, 어떠한 도움을 현지에서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줄 천사들을 항상 마련해놓고 준비해놓고 계셨다.

하나님을 의지하는것이 맞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분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또 한번 보게 된다.
분명 이때 느꼈던건, 어떠한 어려움과 두려움 고통보다는 설렘, 희망, 도전등의 더욱 진리와 진실에 가까운 감정들이었다.
결국 우리 인생을 이끄는건 희망과 비전, 설레임, 기쁨인것 같다.
미래가 희망적이고 도전적이고 열매들이 기대될때 우리는 설레이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게 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죽음'까지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할 '담대함'이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이다.
분명 이때 우리는 그러한 높은 수준의 감정과 기대로 휩싸여 있었다.
그러한 소망과 비전은 우리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명기 1장 30~31절)
 

'선교 > 선교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교사 자녀케어  (0) 2018.09.26
더 가난한이들을 생각하는 이들  (0) 2018.08.25
잃어버림  (0) 2018.08.06
시장보기  (0) 2018.07.07
Love begins at home  (0) 2018.06.09
선교지 도착, 설레임  (0) 2018.05.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