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내 마음에 절실하고도 중요하게 다가오는 문제는 선교사 자녀들에 대한 복지이다. 선교목표의 달성이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알면서 행해 질 수는 없다. 이런 일들은 여전히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다. 베드로의 자기중심적인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마 19:27~30, 복음을 위해 가족을 버렸으니 내가 무엇을 얻겠나이까?) 그가 일찍이 언급한 어린이들을 돌보는 것에 대한 강한 훈계와 경고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마18:1~14, 이 소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진저!). 그러므로 파송단체들은 선교회 가족의 모든 일원들을 돌보는 일에 우선시해야 한다. MK(선교사 자녀) 케어 제공자들은(예를 들자면, 교육 자문인 교사, 기숙사 사감, 재입국 담당자) 오늘날 선교에서 점차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선교사 멤버케어 세계적 관점과 실천, CLC, 74page Interacton 대표 ' 데이빗폴락' 의 글중 일부 발췌"

하나님께서는 한국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많은 선교의 일꾼들을 택하시고 선교지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축복을 주셨다.
1세기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이렇게 많은 선교사들을 배출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가지가 있을것이다.

특별히 한국인들의 열정과 잘 계산하지 않고 뛰어드는 민족성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것 같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공동체가 잘 발달되어 있는데, 이러한 민족성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것 같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특성보다는 한국인들이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한것이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선택한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질적으로도 인적자원으로도 한국인들은 선교지에서 많은 사역을 하고 있으며 많은 열매들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열매를 거두지 않는 지역에서도 많은 씨앗은 뿌려지고 있다.
이러한 일에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와 후원자들 모두 잘했다고 주님이 칭찬하실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일에 서로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것 같다.

그러나, 모든것을 잘할수는 없는법이다.
그동안 잘해왔지만, 앞으로 주님의 사역에 더욱 쓰임받고 하나님의 촛대가 우리나라에서 옮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부족한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미래를 준비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선교1세대들은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였다.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들은 선교 2세대들의 사역이다.

자국문화권에서 살다가 선교지로 떠나서 외국어를 습득하고,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나가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극복되기 보다는 견뎌내고 계속적으로 자기부인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선교사의 자녀들이 선교사역을 하게된다면 선교1세대와는 확연히 다른영역이 있다.

세가지 정도로 함축할수 있는데,
첫째는 선교에 대한 개념에 대한 이해의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선교지에서 태어났고, 선교가 무엇인지 부모님을 통해서 배웠으며, 그들의 삶이 곧 선교사의 삶이었다.
이미 자문화권에 익숙한 몸을 가지고 선교지에서 선교의 삶을 살아내는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선교의 멘토도 필요하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는것도 필요하고, 주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선교지에서 배우는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선교사 자녀들은 부모님들이 그렇게 배우는 과정들을 제일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선교를 이해하는 영역은 그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문화에 대한 이해의 영역이 다른것이다.
선교사 자녀들은 자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정확히 얘기하면 민족 정체성이 부족하거나 없을수 있다.
한국인도 아니고, 선교지 나라사람도 아니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문화에 종속되지 않는다. 이 말은 다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자문화배경에서 자란 선교 1세대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은 특별히 한민족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민족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나라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이 타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 배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도 그나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문화가 결합된 선교사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선교에 있어서 두가지 핵심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언어에 대한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 두가지를 배우는데 타민족에 비하여 약한게 사실인것 같다.
어쨋건, 선교사 자녀들은 타문화를 배우는데 아주 쉽다.

셋째는 언어습득능력이다.
한국인들은 언어습득능력이 약하다. 이는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선교사 자녀들은 언어습득능력이 좋다.
기본적으로 3-4개 하는것이 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세가지 중요한 것들만 짚어보았다.
선교사 자녀들이 반드시 선교를 해야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선교사 자녀들중에 선교를 한다면 그것보다 효과적인 사역은 찾기 힘들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맞게끔 그들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러나, 선교 1세대가 선교사 자녀교육에 있어서 실패하여, 그들의 자녀들이 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져서 선교를 헌신하는걸 꺼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것이다. 그것은 하나는 얻었지만 열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선교사들에게 사역에 대하여 지나친 기대와 요구를 한것이 아닌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그러한 지나친 요구가 그들의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사역에만 매진하도록 만든 결과가 아닌가 우리는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사역과 그들의 가정도 함께 돌볼 수 있도록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이 기대와 요구수준을 성경의 기준점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한국은 유교적 배경과 함께 성경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경적인 중요한 가치+ 유교적 가치가 결합되어 지나친 희생, 지나친 헌신이 강요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성경은 지나친 희생과 지나친 헌신을 강요한 적이 없다.

오직 사랑에 근거한 기쁨의 헌신, 기쁨의 희생, 기쁨으로 드리는 온전한 제사를 가르치고 있기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에 근거한 헌신은 그들의 자녀들과 부부관계를 더욱 온전케 해준다.
그런데, 한국은 유교적 배경과 섞인 가르침으로 인하여, 부부관계가 깨어지고 자녀들이 더 이상 믿음의 길을 가지 않는 특이한 결과들을 현재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바가 성경에 비추어서 다시 재조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선교사들에게 요구하는 기대를 줄이는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인식의 변화가 먼저 일어난다면, 그 이후에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과 케어 진로에 대해서도 한국교회와 선교단체가 구체적으로 도와주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에 계신 분들이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것에 대하여 비용이 많이 든다고 비난하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비난에 앞서서, 선교사 자녀들이 어떻게 초,중고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해보고 실제적으로 어떤지 알아보는것이 성도로써의 마땅한 바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자신의 자녀가 어느 나라의 어떠한 대학도 못들어가고, 미래에 직업도 없이 살아간다면 어떻겠는가?
물론 하나님께서 선교사의 자녀들을 책임지신다.
그러나 함께 동역하는 우리들도 그들을 우리들의 자녀로 생각하고 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사용되는 교육비의 10%만이라도 선교사의 자녀들에게 사용된다면, 선교지에 있는 모든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은 너무나 많은 비용이 자녀교육에 들어가고 있는것 같다. 우리는 믿음의 한 형제,자매이므로 함께 죽고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2015년까지 파송된 선교사 수가 3만명이 조금 안된다.

확실히 한국은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가장 중요시 여기시는 '선교'의 일에 쓰임을 받았고, 지금도 쓰임받고 있다.


선교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이제는 한국인의 선교사 수가 전체 선교사 수의 50%가까이에 이른다.

선교지에서 한 민족이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 수가 이렇게 많은건 심히 놀라운 사실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쓰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인들의 민족성과 성향도 분명 중요한 영향으로 미쳤을 것이다.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한국성도들과 선교사들 사이에서 여전히 선교의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 한가지가 '선교사 멤버케어'이다.


선교사 멤버케어라고 하면 선교사들은 알겠지만, 일반 한국성도들은 그 용어에 오히려 생소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것이다.

심지어 어떤이들은 선교사가 왜 멤버케어가 필요하냐면서? 오히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 멤버케어는 주님의 명령이고, 우리가 반드시 선교에 있어서 성취해야 할 과제이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교사를 부르셔서 그 사람과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선교지의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선교사들이다.

그들의 과업의 결과는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일하였는지에 따라서 열매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한 열매들을 거두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고 선교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하신다.


이 중심에 있는 이가 바로 '선교사'다.

그런데 이 선교사라는 사람은 우리와 동일한 심정을 가졌고,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선교사가 더 위대한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은 동일하다. 다만 선교사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축복을 주셔서 선교지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을 보게 하신 이들이다.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필요가 있다.

힘들면 쉬어줘야 하고,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며, 친구들도 필요하고, 여러가지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필요로 하는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동안 이러한 것을 '사역'이라는 위대한 이름으로 '희생'을 알게 모르게 강요했다.

'선교사'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이러한 '희생'을 성도들이 요구하였거나, 사역자 본인들이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의 강권함으로 인한 자발적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모든 헌신은 한국적인, 유교적인 희생일 수 있다.


성경과는 다른 자기의를 추구하는 희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열매가 아닌 쓴뿌리와 상처와 아픔들로 남겨질 수 있는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결과를 막기 위해서 우리는 선교사 멤버케어가 필요함을 보게 된다.

선교사가 영적,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선교지의 교회와 사역들에 있어서도 건강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


많은 한국선교사들은 '사역'이 거의 100%다.

이는 선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들의 특징이다.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한국인들은 '일'이 인생의 전부인것 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한국인들은 '사역'이라는,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희생'을 지나치게 강요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것에서 여러가지 불협화음과 잘못된 열매들과 쓴뿌리들이 드러나는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원인을 살펴보고 다시금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필요한것들을 선교단체와 한국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일 것이다.


선교사들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내가 만난 선교사들은 년차가 오래되면 될 수록, 감정적으로 아주 민감해져 있는것을 보게 되었다.

살짝만 감성이 터치되도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감성이 풍부해진것은 선교지에서 얻을 수 있는 축복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감성이 풍부해진것이 각종 상처와 아픔과 고통들로 인한것이라면 한국의 파송교회와 선교단체가 그 필요를 채워줘야 하지 않을까..

아니 필요까지 채워주진 않더라도 최소한 파송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선교사들에게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교사들이 아니고서야..

선교지의 경험이 없으면 선교사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선교사 멤버케어의 핵심은 주님의 케어이다.

주님께서 선교사들을 친히 케어하신다.

그런데 그 주님이 선교사들을 케어하실때, 사람들을 사용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교사들의 필요를 채워주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선교사들에게 어려운 짐과, 상처를 주지는 말자.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멤버케어는,

주님께서 선교사들을 케어하는 것이고..

선교사들끼리 서로에 대한 멤버케어를 해주는 것이고..

그리고 파송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선교사들에게 어려운 짐을 주지 않고, 상처를 주는 일들을 최소한으로 삼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선교사들은 그들 스스로 이미 큰 부담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들에게 짐을 주지 말자.

그 짐들이 어떤것들인지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연재하고자 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10:24)


 

 
 선교역사상 한국교회는 신생 선교사 파송국에 속하지만, 현재 11,000명 이상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함으로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국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양적인 성장이 곧 한국교회 선교의 질적인 성장이라 평가될 수는 없다. 오히려 부정적 측면에서 이러한 급속한 한국교회 선교의 성장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인적자원의 가치와 가능성을 족히 인식하지 못하게 하며, 그들이 파송한 선교사들에 대한 적절하고도 전략적인 투자를 도외시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선교현장에 몸담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불필요한 희생을 요구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역자는 선교현장에서 정신적, 영적 "공황"을 토로하는 한국의 많은 젊은 선교사들을 만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다양한 갈등과 어려움 가운데서 모국으로부터의 특별한 후원이나 도움 없이 멀리 타국에서 "버티기"식의 고독한 투쟁을 홀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갈등들은 그들이 한국에 돌아온다고 해도 크게 바뀌지 않으며, 때로는 머무를 처소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차 충족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의 고통이 더욱 가중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중략..

 역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위치한 선교사 멤버케어 센터인 Heartstream Resources에서 지도자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훈련 중 특히 기억에 남은 말이 있는데, 그것은 선교사 멤버케어는 더 이상 선교사들의 "생존"(survival)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양육하고 성장"(nurturing & growing)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선교는 선교사들에 대해 아직까지는 "생존"을 요구하는 입장이라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오늘도 겸손히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는 신실한 교회와 주의 종들의 헌신 속에서 이 소중한 과업은 꾸준히 진보하며 성취될 것이라 믿는다.

선교사 멤버케어 세계적 관점과 실천 / 켈리 오도넬 편집, CLC
2004년 7월, 서울신학대학교 연구실에서 최형근, 엄은정 
역자서문중에서 일부 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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