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 인생들은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그 사람의 바름,정직함,의로움과 상관없이 그들을 대적하여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 인생은 원래 그 속에 악이 있어서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하기까지 하는것이 사람입니다.

  - 그러나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대적들이 생겨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습니다.

 - 물론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과, 인생이 스스로를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회개할때 일어납니다.

 - 그러나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우리의 구원을 어떻게 할수는 없습니다.

 -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있습니다.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 인생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것이 못됩니다.

 - 우리 인생에 어려움과 공격들이 넘칠때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방패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 스스로를 우리는 영광스럽게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광은 우리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를 세우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시는 분은 인생들이 아닌 하나님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오는것은 인생들에게 슬픔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인생들에게 복된 일이 됩니다.

 - 왜냐하면 인생들은 어려운 환경이 아닐때는 하나님을 잘 찾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많은것을 해내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인생이 어려울때,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능력이 많고 상황을 바꾸실 수 있는 절대자를 의지하고 부르짖게 됩니다.

 - 그래서 우리의 어려운 환경이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서 부르짖을때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 우리가 잘 수 있는것도, 일어날 수 있는것도 모두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 우리가 편히 잘 수 있는것,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는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 천명도 아닌 천만인입니다.

 - 그들이 무장된 사람이고 힘이 센 자들이고 권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나를 충분히 헤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 당연히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인데,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입니다.

 - 그들 보다 하나님이 더 위대하시고 강하시다는걸 아는 자만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누구를 두려워합니까?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억울함을 모두 해결하실 겁니다.

 -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여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 왜냐하면 이땅에서는 원치 않지만 악이 승리하는것처럼 보일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그 악한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억울하고, 분한일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맡겨버리는것이 우리의 영적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 잊어버리고, 그들과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하는것이 지혜입니다.

 - 부정적인것을 가까이 하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 선하고, 좋은 것들의 영향력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야합니다.

 - 그것이 악하고 불합리하고, 어려운 일들을 극복할 수 있는 도움이 됩니다.

 -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오히려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 선하고, 깨끗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 그런 사람이 정말 없다면, 홀로, 주님과 진지한 시간을 갖는것이 최선입니다. 그보다 좋은것은 이세상에 없습니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 사람들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 돈도, 명예도, 권력도 우리를 악한 사람들로부터 자유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 결국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힘은, 가장 힘이 세고 강하신 하나님 곁에 늘 있는것입니다.

 - 하나님 곁에 거하고 계십니까?

 -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대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기본원칙, 원리입니다.

 -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 그것이 늘 승리의 비결입니다.





  1. 2018.10.17 09:26

    비밀댓글입니다



2013년 11월 28일, 선교지 3개월차 <선교사 자녀케어>



이곳 키르키즈스탄은 꽤 춥다.

지리적으로도 추운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난방시설이 잘 안되어있다.

그래서 더 춥다. 몸을 녹일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언어공부를 해야했기에 그 시간에 누군가가 우리의 자녀를 돌보아 주는것이 필요했다.

이시기에 우리는 언어학원에서 오전에 수업을했었고, 그 시간에 학원 근처에 아이를 봐주는 사람에게 잠시(2-3시간정도) 아들을 맡겼었다.


이곳은 독립한지 오랜시간이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 꽤 많은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키르키즈스탄인보다는 러시아인들이 좀 더 자녀들을 돌보는데 나을것이라 판단한 우리는 러시아 보모에게 우리 아들을 맡겼다.


이때 우리 아들 나이가 한국나이로 3살이었는데, 이제 말을 조금씩 하는 나이였다.

우리는 언어공부를 해야했기에 과감히 아이를 러시아 보모에게 맡기고 열심히 공부했다.


처음 맡길때 좋았던 점은, 우리가 공부하는 시간동안 공원에서 우리 아들을 산책시키고 놀아주고 하였다.

러시아에서는 어린이집에서 낮에 산책 등 바깥활동을 꼭 한다.


바깥활동이 아이들 정서나 여러가지에 좋은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겨울이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조금 빨리 겨울이 시작되었는데, 겨울이 되면 산책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아 줄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러시아 보모가 하는말이, 전혀 춥지 않다는 것이었다.


'춥지 않다.'

......


아 정말 추운데...이분들에게는 춥지 않은 날씨구나...ㅠㅠ;


암튼,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요구는 할 수 있지만, 이 나라의 문화와 법(?)을 따라야 했기에 어쩔수 없이 아이가 산책하더라도 그냥 둘 수 밖에 없었다.

할수 있는건, 최대한 따뜻하게 입혀서 맡기는것...


정말 추운 날씨일때도 산책을 했고,

눈이 엄청 많이 올때도 산책을 하고..

비 오는날 이외에는 거의 산책을 시켰던것 같다.

영하의 날씨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2시간 정도 수업이 끝난 후에 아이를 다시 볼때는, 얼굴, 손이 완전 차가워져서..걱정과 근심이 생겼지만

다행한건지, 아님 원래 괜찮은건지..바깥에서 춥게 산책했다고 해서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특별히 추운날은  걱정과 근심 속에서 아이를 맡겼던것 같다.

처음 겪어 보는 문화적 차이인 것이다.


이것은 날씨로 인해서 선교사가 겪게 되는 고충,고민들이었다.

선교사 본인이 겪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강인함(?)으로 그것을 잘 극복한다.


그런데, 자녀들이 겪게 되는 고통은 선교사들에게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왜 그것이 어려움인지는 한국인 특유의 문화적 특성이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한국인 선교사들은 자녀문제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것이다.

많은 것들은 심적으로 겪는 것들이 많다.



한가지 긍정적으로 배울 수 있는건,

분명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고 강인하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선교사의 자녀들은 그곳에서의 환경을 잘 극복하면 다양한 문화에서 폭넓은 가치관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반면에 그들을 잘 케어해주지 못하면, 그 반대의 결과도 나올 수 있다.


선교사 자녀들이 겪게 되는 환경은 분명 그들을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에 충분할 수도 있지만...

그 환경이 오히려 그들을 더 좁고, 비관적이고,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게 할 수 도 있다.


그래서 선교사의 자녀케어는 참 중요하다.

물론 선교사 케어도 중요하다!!









시편 1편에 복있는 사람이 피해야할 3가지와 특징들이 나온다. [http://www.ezrabible.net/155]

시편 2편에는 복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마지막절에 기록되어 있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시편2편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시고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왕들과 권력과 힘을 가진이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자 하는 모습이 나온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의 권력 앞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때로는 억울하고 불합리하지만 힘이 약하여 그들을 대항할수 없다.


의롭지 못하고,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들이 많다.

왜냐하면 세상의 권력을 가진자들이 악하게 행동할때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권력의 힘을 믿고 자기들 뜻대로 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편2편 4절에는 이러한 일들을 두고 하늘에 계신 이, 하나님은 웃으신다고 하신다.

그들의 행동을 비웃는다.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권력을 주시고 힘을 주신이가 하나님이기에,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것들이 그들의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행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성취되는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 성취되지 못함을 하나님은 보여주신다.


예수그리스도도 그들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박히고 돌아가셨다.

그들이 승리한것처럼 보인게 사실이지만, 실제를 보라.

십자가 사건 이후 2000년이 흐르면서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지금도 가장중요하고 앞으로 모든 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그 십자가 사건 아닌가?

그것도 부정적인 영향이 아니라, 가장 긍정적이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유일하고도 근본적인 사건으로 말이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아들이라 명하신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하는것은 신성모독죄에 해당하였다.

감히 하나님의 이름도 부를 수 없는게 사람의 입장인데, 사람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하는것은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서 완전히 위배되는 사건이었다.

그러한 모든 관념과 전통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확증하신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자기와 동일한 하나님이고, 자기의 친아들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른데서 온것도 아니고, 하나님안에서 태어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라고 알려주신다.

사탄에게 잠시 빼앗긴건 같은 세상을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다시 되찾으시는 장면이 8-9절이다.

실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 계속 자신의 왕국을 되찾고 계신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되찾기 위한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난다.

사탄의 운명도 정해졌고, 하나님 나라의 운명도 정해졌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이미 일어난 역사에서 우리는 교훈을 받아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교훈을 받고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


그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으로 인하여 즐거워 하는것이다.

망하고 사는길, 그길은 누구편에 우리가 서는가이다.


사탄의 길에 설것인가..

하나님의 길에 설것인가..


중간지대는 없다.

하나님 편에 서는자들.

여호와께 피하는 자들.


그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다.


세상의 명예, 권력, 부에 취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슬픈일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명예, 위치, 하나님의 부에 취하는길이 살길이다.

미묘한 차이를 이해해야하고, 그 차이의 깊이를 이해하는자, 그들은 복있는 자들이다.


진정한 힘과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께 기댈것인가..

잠시 잠깐 우리에게 힘을 줄것같지만, 결국 변해버릴 이땅의 것에 기댈것인가..


그 결정과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복있는 자들의 길에 함께 가자!!

  1. 2018.09.16 18:59

    비밀댓글입니다



2013년 11월 17일


선교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선교지는 분리수거라는건 없는것 같다.

살아 가는 입장에서는 편하긴 하지만, 환경오염은 있겠지?

그렇다고 혼자 분리수거 하는게 의미는 없다.


암튼, 분리수거를 하다가 하지 않으면 정말 편하긴 하다.

그런데 그렇게 분리수거를 안하다가 한국에서 분리수거를 다시 하면...그건 엄청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편하면 좋고, 불편하면 싫어하는 어쩔수 없는 존재임을 또 깨닫게 된다.


분리수거 하지 않아도 되는 쓰레기장이다.

그냥 음식물이든, 분리수거가 되는것이든 다 저기다가 버린다.

물론 쓰레기봉투를 돈주고 사는일은 없다.

세금을 내긴 하는데, (한국인 입장에서는) 거의 무료수준이다.


쓰레기통 앞에 보이는 무엇인가 걸려있는것이 눈에 들어와서 찍은 사진이다.

이곳은 한달 평균임금이 200불정도 된다.

재밌는것은 의사도, 교수도, 사무직 직원도, 청소원도 대부분 200불전후다.

오히려 택시기사가 돈을 더 많이 번다.

그래서 의료나 교육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베품과 나눔이 있다.

그들보다 더 가난한이들을 생각하여 쓰레기통 옆에 저렇게 거지들을 위해서 누군가가 빵을 걸어 두었다.


이곳 사람들의 주식으로 먹는 빵인데, 20~25솜, 한국돈으로 400-500원정도 한다.

쓰레기통 옆에 이러한 장면을 쉽게 볼수 있다.


무슬림들의 실천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들은 율법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공동체적)으로 행동을 하지만, 결론적으로 타인을 향한 선행을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자유로워졌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지만.. 타인을 향한 선행을 많이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주변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무슬림들보다 선행이 적기에..무슬림들은 오히려 크리스챤들에게 행동으로 말을 하고 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지만, 속에 있는 것은 겉으로 들어나게 되어있고..

결국 복음은 말보다는 행동인데, 우리의 행동은 그들에 비해서 부끄러운 행동이 많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부끄러운 행동으로 지금 이시대에 저렇게 많은 무슬림들이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말보단 행동.

행동이 안되면 침묵하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신명기 24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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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피해야 하는 세가지 길을 1절에 알려주고 있다.

 

 첫번째는  악인들의 꾀이다.

 정도를 가고, 곧은 사람들은 꾀부리지 않는다. 어떠한 역경과 유혹이 오더라도 정직한 길을 택하고 양심에 꺼리끼는 일을 하지 않는다.

 양심에 꺼리끼는 일을 하고, 정직하지 못한 모든 것들은 악인들의 꾀에서 시작된다.

 잔머리 굴리고, 계산하고, 상황을 살피는것(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오기를 살피는것) 이러한 것들이 악인들의 꾀에 속할 수 있다.


 두번째는 죄인들의 길이다.

 죄인들은 어떠한 길들을 가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고, 그들을 추종해주고,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길들을 가게 된다.

 그들의 길은 넓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길이나, 그 길이 바른길이 아닐 수 있다.

 다수가 원하는길, 대중이 원하는 길이 바른길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은 이들이 원하고 가는길이 바른길이라고 착각한다.

 반면에 좁은길이라고 반드시 바른길이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좁은길을 가기때문에 스스로 의롭게 여길 수 있다.

 그길이 좁고 넓은지보다 중요한건, 그 길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른 길인지가 중요하다.

 길이 어디로 가든, 하나님이 항상 앞에서 인도하시고 성령께서 보장하시고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한다.

 

 세번째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리'에 대한 욕심이 있다.

 누구가 권력을 가지길 원하며 명예로운 자리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이땅에 어떠한 자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보다 좋을까?

 이땅에서 사람들이 주는 자리를 욕심내기 보다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리어 하나님께 받는 칭찬을 욕심내야 하는것이 성도의 기본이다.

 이러한 기본을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사람들의 칭찬에 목매여 하는게 현실이다.

 자리싸움 하지 말자. 높은자리에 잊다면 아랫사람들에게 내어주자. 낮은자리로 가자.

 그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길일 가능성이 많다.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2절에서는 어떻게 하면 복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는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낮,밤으로 묵상하며 먹는자이다.

 우리 인생에 누가 바른길을 제시할 수 있는가? 인생은 누구나 부족하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위대한 그리스도인도 우리를 온전케 할 순 없다.

 그리고 뛰어난 성경교사도 우리를 온전히 바른 길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우리 스스로 성경을 읽고 즐거워하며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사람의 종이 될 수 있다.

 말씀을 즐거워하며 말씀에서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걸음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는 시냇가에 심겨져 있는가?

  좋은 물을 먹으며, 양지 바른곳에서 자라므로 인하여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의 잎사귀는 말랐는가? 너무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힘이 빠져 있지는 않는가?

  좋은 양식을 먹는것, 좋은 말씀의 양식을 매일 먹는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먹여줄 선한목자가 내 곁에 있는가?

  내 스스로 좋은 말씀을 먹을 수 있는 영성을 갖추고 있는가?

  형통하기를 원하는 모든자들은,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할 것이다.

  내가 건강해야 내 주변도 건강해 진다. 먼저 내 건강을 챙기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자!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바람에 나는 겨의 특징이 무엇인가?

  바람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변하지 않는가?

  환경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변하는 신앙은 기초가 없고, 뿌리가 약한 신앙이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굳게 믿음을 지킬 수 있고, 변치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어디에 있을까?...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들은 겉으로는 좋아보일 수 있으나, 결국에는 망하게 된다.

 그들은 심판을 견딜 수 없다.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도 못하며,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 

 망하게 되는것이다. 우리는 망한 인생을 맞이할것인가? 의롭게 빛나는 모임에 들어갈 것인가?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나는 의인들의 길을 가고 있나?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는가?

 내가 가고 있는 길, 그 길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직 하나님과 깊은 대화가운데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살아야 할것이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복있는 사람이며,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는 자들이다.




2013년 10월 14일, 선교지 2개월차

계획하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교지 도착하자마자 둘째를 주셨다.
아직 언어도 제대로 못하고, 무엇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상황이었다.
그런데, 둘째의 기쁨을 누리기에도 잠시...병원에서 둘째가 위험하단다.
조산기가 있어서 아내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어느정도 위험한 상태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병원은 사실 신뢰하기가 어렵기에, 한국에 있는 의사에게 물어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무조건 누워있으라고 하고, 한국에서 급히 관련약을 보내주신다고 하였다.

그 약을 기다라며, 그리고 조산기가 사라지길 기도하며 아내는 계속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보낸것 같다.
그 기간에 난생처음으로 집안일을 내 스스로 해야했다.
한국에서도 집안일이 물론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나같이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적 없는 남자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숙제였다.
거기다가 아내는 조산기로 위험한 상황에 있고 아직 첫째도 어려서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최소 한국에서는 밥이라도 시켜서 먹으면 되었지만, 이곳은 그럴수도 없고, 그럴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시켜먹는것 아니라 해먹는것도 재료부터 방법 모든것이 풀기 어려운 숙제! 그 자체였다.
여튼 일주일의 힘든고뇌의 시간을 이겨내면서 다시금 병원을 찾아갔다.

기도도 많이 했고, 한국에도 여러 성도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에 큰 걱정없이, 좋아졌을거란 기대로 병원을 간것이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아기의 심장이 멈췄단다.
그리고 산모가 위험하므로 급히 수술을 해야한다고 얘기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후로 시작되었다.
이곳 병원은 일반적으로 조산의 경우 수술시 마취를 하지 않는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식 의료가 조금 거칠다.

그래서 마취 없이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강압적으로 얘기하였다.
급히 한국의사게에 물어보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그렇게 하는것은 너무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어렵지만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이 좀 걸려도 좋으니 마취를 반드시 하고 수술을 하자고 얘기하였다.
의사는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때 우리를 도와줬던 통역하는 사모님께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통역을 도와주셨던 사모님 남편분이 한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덕에 많은 정보와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게 되었다.

감사히 마취 후 수술을 하게 되었다.
한국병원과는 달리, 이곳은 2차 감염이 많이 일어난다.
이후에 여러차례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하였는데,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끝나고 모든것을 마무리 하고 집에왔다.
사실 이때 나의 아내는 큰 고통속에서 아픔을 호소하게 되었다.
그것은 둘째를 잃은 아픔, 병원에서의 무서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갑작스런 충격.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였고, 기도도 그 어떤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말, 극적으로 그런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었던 아내를 주님께서 건져주셨다.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유산 후 그렇게 길지 않은 어둠의 통로속에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할때 주님이 건져주셨다.

인생에서 정말 우리 스스로 하기 힘든일이 있을때, 그럴때 주님께서는 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뭐라고 설명할순 없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피할길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극적인 도움으로 나의 아내는 둘째를 잃은 유산을 큰 트라우마로 가지진 않게 된것 같다.
오히려 내가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오는 아픔과 눈물이 있다.

아내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수술대위에서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
오직 주님께만 필요를 구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

고통과 아픔은 사람을 성숙시킨다고 했던가...
그러한 것이 우리의 성숙과 또한 그 성숙으로 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계기로 만든것이 주님의 섭리였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주셨던 그 아이를 하나님이 빨리 보고 싶으셨던것일까?

신앙은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분을 신뢰하기위한 것인데..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었을까?

고통과 아픔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아픔은 참 겪고 싶지 않지만...그래도 그 아픔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 또한 적극적으로 겪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모든 내 삶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매순간 고백하는것.
그것이 기도의 삶이고, 신앙인의 삶이고, 크리스챤의 삶이고, 선교사의 삶 아닐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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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가 2차 세계대전 끝날 무렵 생애 마지막 순간 베를린 감옥에서 쓴 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마치 지주가 자기 저택에서 나오듯

침착하고, 쾌할하고, 당당하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명령하는 권한이 있는 듯

자유롭고, 친근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하는 데 익숙한듯

평온하고, 미소 지으며, 당당하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나 자신이 아는 그런 존재일 뿐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뭔가를 갈망하며 병든,

손들이 내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가쁜,

빛깔과 꽃들과 새 소리에 굶주린,

친절한 말과 이웃에 목마른,

압제오 사소한 모욕에 분노로 치를 떠는,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는,

무한히 멀리 있는 친구들로 인해 힘없이 슬퍼하는,

기도하고, 생각하고, 만드는 데 지치고 허무해진,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나는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

내 앞에서는 한심스러울 만큼 슬픔에 잠김 약골인가?

아니면 이미 성취된 승리로부터 혼돈 가운데로 도망치는,

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패잔병 같은 그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나를 조롱하고 이 고독한 질문을 비웃는다.

내가 그 누구든지, 오 하나님 당신은 아나이다.

내가 당신 것인 줄을.






2013년 9월 27일. 선교지 1개월차.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선교사들이 현지음식만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것이다.
그렇지 않다.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을 만날때는 현지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집에서는 한식을 먹는다.
물론 한국과 같은 그러한 한식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최대한 비슷하게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걸 최대한 활용해서 한식을 먹는다.

한국과 같은 쌀은 아니지만..쌀을 구해서 밥을 하고...
여러가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식으로 먹는다..
그말은 여기에서는 음식하는 일이 한국보다 최소 2배, 최대는 측량할수 없을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암튼..그러한 환경에서 최대한 도와줘야 하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다.
많은건 도와줄수 없을지라도 최대한 시장을 같이 가는것, 그리고 물건 들어주는것, 그리고 이것저것 고를때 따지지 않는것(내가 음식을 하지 못하므로...) 뭐..이런것들이 생각이 난다.

한국은 마트에 가면 모든것들이 있고 쇼핑카트도 있고..여러가지 쉽게 쇼핑할 수 있다. 물론 돈이 꽤 들긴 한다.
이곳은 돈은 정말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것이 너무나 싸다.
특별히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양파, 감자, 당근, 오이 등은 싸다.
그런데 비싼것이 있다. 여기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한국음식을 위해서 필요한것들은 소비층이 적기 때문에 비싸다. 한국보다 더 비싼것들도 본것 같다. 그래서 싸긴 하지만 한식을 제대로 먹으려면 또 이러한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이곳은 정감이 있는곳이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고(자기들 물건 사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긴 하지만..(시간이 지나면 그냥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이걸로 싸워서 현지인들과 동일한 가격을 받아내기도 하고 그렇게 한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가장 현실감 있게 이곳의 경제상황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들의 성실성, 국민성, 여러가지 것들을 보게 하는 곳이다.

근데..이러한 장보기를 하면 하루의 반나절이 지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날잡아서 하루종일 장을 봐야할때도 있다.
한곳에 모든것이 있는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떨어져 있기도 하고, 없는 물건들도 많고..여러가지 제약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교사들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잘먹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단 건강해야 선교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먹어야 또 열심히 사역할 것 아닌가?
현지인들 만날때는 잘 먹는것이 아니라 잘 먹어주는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최소 한끼라도 잘 먹어야 하루를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곳 선교지에서의 삶을 즐기며 기뻐하며 살아낼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었었다.

선교지 도착해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보기와 시장을 보기 위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어라고 하는건, 숫자만 알면 되기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것이 잘 안들리고 헤깔리고 그러하였다.
특히 러시아어는 더 헤깔린다. 몇달이 지나고서야 겨우 적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 시장보기를 하면서 아내와도 많이 다투었었다.
다투는 주요관점은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사역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장보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쓰는것 아닌가?
아내는, 이게 다 우리 가족이 먹기 위해서 시간을 쓰는것이다.

나는 사역에 있어서 부담과 압박이 알게 모르게 많았던것 같고..
아내는 오히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신경을 많이 썼던것 같다.
이러한 다툼과 오해를 해결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나는 시장보기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적극 도와주는 남편으로 변하게 되었다.
왜냐면...결국 이게 다 내가 먹는게 아니었던가?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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