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3일(선교지 7개월차)





나는 두부요리를 좋아한다.

참 좋아하는것도 그렇게 비싼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이곳 선교지에는 두부가 없다. ㅠㅠ

아..


두부만 없는게 아니고

돼지고기도 없고.

없는걸 찾자면..끝도 없다.

다 없는것 같기도 하다. 


다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없는게 더 잘 보인다.

두부를 평생 못먹을 생각을 하니..

괜찮다가다..또 생각이 날때가 있다가..어차피 생각해도 못 먹으니 포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식탐도 줄어들게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나의 아내가 만능 요리사라서..

내가 좋아하는 두부를 직접 만들어 줬다.


콩을 구하고..

두부를...어찌어찌..기계도 없이..어떻게 만들어 냈다.

대단하다!!

감탄에 감탄!!!!


맛도 대박이다!!

아니...다 맛있다..여기서는.

왜냐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어떤 두부맛집보다도 맛있다.


이래서..

사람은 잃어봐야 안다.

있을때는 모르나..없어져보면 감사를 알게 된다.


선교지의 축복은.

감사를 알게 된다는 것이고.

잃은게 많기에..존재함에 대해서 감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기본적으로 선교사들은 음식들에 대해서 겸손하다.

그렇다고 선교사들이 입맛의 수준이 낮다는것은 아니다.

겸손하다는것으...그 어떤 음식에 대해서도 감사히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교지에는 없으니깐..


없으면..다 맛있다.!!


두부에..

나는 아내의 사랑을 엄청 경험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결코 맛보지 못했을...아내의 두부사랑!!



2014년 3월 8일 (선교지 7개월차)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얻는 유익이 여러가지가 있다.

여러가지 유익중에서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것이 큰 유익이 아닐까 한다.


특별히 한국사람들은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힘든 나라에서 지낸다.

단일민족. 단일언어,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있지 않은 나라에서 평생을 지낸다.

물론 가끔 해외여행도 가고, 언어연수도 가고 하지만..그런 사람도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한 민족, 한 언어, 한 문화속에서 평생을 지낸다.


여기저기 다른 나라들을 여행해본 이들이 많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으로 단일문화속에서 사는 이들은 의외로 적다.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은 2-3언어를 사용하고 다민족으로서 삶을 영위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타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고, 자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자문화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구지 이해하고 배울 필요가 없이 이것이 당연하다라고 느끼고 배우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문화적 차이를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문화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해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문화를 공부해본적은 없는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스스로 필요를 느껴서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이다.

어쨋건, 선교지에 와서 얻는 유익중 큰것은 자문화와 타문화에 대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토요일 아침 밖에서 무슨 큰 소리가 나서 창문을 열어서 보았더니 저런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우리집은 아파트 4층이었는데, 반대편 아파트에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아니 본적이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프로포즈를 하거나, 아니면 생일축하를 하거나, 기념일을 축하하거나..등이었을 거다.

어쨋건..저런 기가막힌 장면을 볼 수 있는것도 이곳의 유익중 하나다.


공사에 사용하는 리프트카를 사용해서 창문으로 많은 양의 풍선을 보내고자 하는...

역시나 세상 어디를 가도 러브스토리만큼 기막힌 스토리는 없는것 같다.

상상할 수 있는, 그리고 현실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일들을 'Love'는 가능케 한다.





풍선이 집에 다 들어가지를 않는다.

이런 기막힌 일이...


토요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것은..

이토록 사람들로 하여금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고 신나게 하는 일이다.


이곳에서 겪게 될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은 기쁨과 즐거운 일들이 어디서나 일어난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의 러브스토리는...

국가와 민족과 문화..그 모든것을 초월해서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다.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원수들이 믿는 신은 가짜신이며, 그들의 신은 헛된 신이기에 어려움에서 그들을 건져낼 수 없다.

 - 그러나 나의 하나님은 진짜신이며, 어떤 어려움으로부터도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 원수들이 좇아오는 위급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위급한 상황에서 건져주신다.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 우리 인생에 원수들이 우리를 공격할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없다.

 -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 줄 구원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우리 인생에 있다.

 - 그러한때에 건짐 받지 못하면, 사자가 먹잇감을 물어 뜯듯이 원수들이 우리를 괴롭게 할 것이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 다윗은 원수들이 자기를 좇아오는 이유에 있어서 결백함을 주장한다.

 - 어떠한 잘못도 없는데, 원수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 오히려 의롭게 행할때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질투의 원수들이 생겨날 수 있다.

 - 그러할때, 겸손하게 우리를 돌아보고 잘못한것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자세다.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 친교맺은 사람들의 친절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

 - 그리고 원수에게도 이유 없이 무엇을 악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 어느정도 용인되는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다윗의 결백함을 볼 수 있다.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  원수들은 우리의 영혼을 잡아서 결국 망하게 하길 원한다.

 - 모든 인간은 존귀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속에 있기에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 낼 수 있다.

 - 그런데, 우리 인생에서 대적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땅에 짓밟고,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삶으로 이끈다.

 - 그러나 먼지 속에서도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이다.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악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그냥 두지 않으신다.

 - 하나님은 우리편이 되시며, 우리를 위하여 죄악에 대하여 심판하신다.

 - 그 때를 우리가 알지못하지만, 늦더라도 분명히 죄악들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원수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의탁드리자.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 우리의 모임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모여야 하지 않을까?

 - 우리 스스로를 위한 모임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고, 그 중심의 자리에 하나님이 위치하실때, 우리의 모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된다.

 - 얼마나 많은 모임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지만, 하나님은 없고, 그 중심에 사람이 서 있는가?

 - 사람의 깊은 속성가운데는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고자 하는 깊은 욕망이 있다.

 -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건 아닌지 매순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그 누구도 높은자리에서 겸손해지기란 어렵다.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나는 제외다라는 생각은 어디로부터 온 생각인가?

 - 다윗도 자신의 의와 성실함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기를 원했다.

 - 우리도 매순간 삶에서 우리의 의와 성실함을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날을 기억해야 한다.

 - 사람들의 심판은 빗겨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모두가 받게 된다.

 - 이 사실을 매순간 인지하는것이 우리를 하나님을 경외케 하고, 겸손한 삶으로 인도한다.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 악이 넘쳐난다.

 - 악인들이 잘되는것 같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악을 끊고 의인들을 세우실 것이다.

 -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양심으로 심판을 하실 것이다.

 - 결과나 사람들의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이 아닌, 그 중심의 마음과 양심이 기준이다.

 -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 마음과 양심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 하나님은 누구를 구원하시는가?

 -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신다.

 - 나의 마음이 청결하고 정직한가?

 -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거짓도 없는가?

 - 그렇게 살기가 힘든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양심에 청결함으로 살아야 한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 세상의 법정은 공평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완전히 공평하지는 못하다.

 -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는 온전히 공평하다. 그리고 완전하다.

 - 그 하나님께서 심판하실때, 그 누가 심판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 하나님은 오래 참으신다.

 -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 하나님께서 즉시 심판을 행하시지 않지만, 하나님은 칼을 갈고 있으며 활을 당기어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 사람이 범죄할때, 이미 하나님의 화살을 당기어져 준비되고 있다.

 - 그 화살이 날라오는 날이 사람의 기대날과 다를뿐, 언젠가는 우리 인생 모두에게 그 화살이 오게 될 것이다.

 - 그 날이 오기전에 회개해야 한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 사람들이 만든 화살과는 차원이 다르다.

 - 하나님은 분명히 죽일 도구를 만드시고 예비하시는 분이시다.

 - 그의 화살은 불화살들이다.

 -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대 앞에서 누가 살아 날 수 있을까..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 악인들은 결국 죄를 낳는다.

 - 그 죄들이 재앙이 되고, 계속되어지는 거짓을 낳게 된다.

 - 이 세상을 살면, 참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 인생들이 대부분 죄악되기 때문이다.

 - 모든 인생이 범죄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 인간들 스스로 웅덩이를 파고 있는것이다.

 - 거짓된 인생들이 무엇인가 의롭게 하려고 한들, 그 웅덩이는 스스로를 함정에 빠지는 길이다.

 - 스스로도 속고, 남들도 속이는것이 인생의 죄악됨이 드러나는 결과다.

 - 우리들 중에 누가 100% 진실되게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 범죄한 인생들의 재앙이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 범죄한 인생들이 포악하게 한 행동들은 결국 본인을 괴롭게 하게 된다.

 - 그 순간은 어려움이 없는것 같지만, 모든 악한 행동들이 모여서 결국에 그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을 파멸로 이끈다.

 - 오직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헤를 구하는 길만이 죄인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 우리는 죄악되나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건, 하나님이 의로우시므로 우리가 온전한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심판자이므로 하나님의 때에 모든 악은 사라질 것이다.

 -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므로 이 모든 우리의 희망을 이루실 수 있다.

 - 결국 하나님은 이름대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 심판뒤에 온전히 의로운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 지금 이순간에도 하나님은 사람을 의롭게 하시고, 먼 훗날, 하나님의 때에 모든 이들이 죄악없이 의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 그러므로 우리의 찬양의 이유와 삶의 이유가 이러한 확실한 희망에 있다.

시편 6편, 원수를 갚아주시는 하나님께 모든걸 의탁하자.


1절.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에 대하여 분노하신다. 그 분노는 믿는자에게 책망과 징계로 다가온다.

  - 우리편에서 죄악에 대하여 알게 되었을때,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회개와 용서를 구해야 한다.

  -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을 알게 되는것. 그것이 우리가 죄에 대하여 반응하기 전 첫번째 반응이다.


2절.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 우리 인생이 하나님 없이 어찌 건강할 수 있는가?

 - 하나님께 항상 우리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 우리의 잘못됨과 병든 상태를 하나님께 고하고 고쳐달라고 구하는 자세가 항상 필요하다.


3절.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육체의 고통도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지만, 더욱 감당하기 힘든건 영혼의 고통이다.

 - 결국 우리 인간을 이끄는 핵심은 영혼이다.

 - 우리의 심정, 마음이 평안할때 우리는 인생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4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 우리가 괴로울때, 우리가 요청할 수 있는건 주님이 다시 우리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것이다.

 - 우리의 영혼을 그 누가 건질 수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 그리고 인생들은 서로를 사랑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실 수 있다.


5절.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 사망으로 온전히 망하고 끝난 이들은 더 이상 기회가 없다.

 - 그들이 주를 기억하고 다시금 회개한들 기회는 없는것이다.

 - 그러므로 사망이 오기전에 스올이 가까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한다.

 - 모든 상황가운데 죽음이 오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 인생은 희망적인 것이다.


6절.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 무엇이 시편 기자를 이토록 탄식케 하였을까?

 - 우리 인생에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

 - 그러한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한들 정말 100%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고, 없을 수도 있다.

 - 그래서 시편기자는 괴로움으로 인하여 밤마다 눈물로 괴로운 날들을 보냈는것이다.

 - 우리 인생에 이러한 날들이 다가온다.

 - 그러한 심각한 우울과 걱정과 괴로움과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닥치는 것이다.

 -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그냥 울며 탄식하며 괴로움을 토로할 수 밖에 없다.


7절.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 시편기자를 괴롭게 하는 일들을 일부 볼 수 있다.

 - 시편기자의 대적들이 많이 있었다.

 - 그 모든 대적들. 얼마나 많은 적들이 있었는가?

 - 그리고 그 적들로 인하여 얼마나 맘이 괴롭고 어두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다.

 - 믿었던 이들이 배신하고, 모든 이들이 등을 돌릴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때..

 - 그러한 때 인생을 견딜수 있는이가 얼마나 있으며, 멘탈이 강하다고 이겨낼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있을까?

 - 그러한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해서 자살하는것 아닌가..

 - 분명 그러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괴로움으로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것이다.



8절.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 8절이 시편 6편의 핵심구절이다.

 - 괴로움과 적들로 인하여 고통가운데 있는 시편기자의 울음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기록한다.

 - 누가 이 얘기를 들어주었는가?

 - 바로 하나님이다.

 - 사람들은 위로자가 될 수 있고,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 일 수 있다.

 - 거기까지다. 그들은 해결을 해줄 수 없다.

 -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이야기를 100%공감하며 들어줄 뿐 아니라, 모든 상황들을 주관하시는 분이기에 문제 해결까지 가능하다.

 - 최고의 위로는 들어주는것이라고 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최고의 위로자가 될 뿐 아니라, 문제 해결까지 가능하신 분이다.

 - 하나님께서 울음소리를 들으셨으니, 이제 모든 것은 해결된것 아닌가.


9절.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 하나님께서 간구를 들으셨고, 기도를 받으셨다.

 - 그러므로 이제 잠잠히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우리의 인생에 괴롭고 억울한 일들이 있을때, 힘없고 의지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지 말자.

 - 하나님께 찾아가서 아뢰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해주신다.

 - 해결 불가능한 사람들을 의지한들 상처만 남을뿐이며, 해결 가능한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것이 해결된다.


10절.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 오직 시편기자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보셨다.

 - 그리고 원수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셨다.

 - 원수들이 심히 떠는 장면을 시편기자는 목도했다.

 -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그렇게 될것을 보았던 것이다.

 - 괴롭고 억울한 일들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다.

 - 그러할때 시편 6편을 기억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모든것을 아뢰고 의탁하자.

 -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해결해 주신다.

 - 원수를 갚아주실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면서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하자.

 -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일들을 해결하실 것이다.

 - 나는 원래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하려고 한들 나와 사람들에게 상처와 어려움을 줄 뿐이다.

 - 하나님께 일들을 맡겨버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면 때가 되어서 모든 악한것들을 하나님께서 드러내주시고 해결해주신다.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사람들은 우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나, 실제 그 심정을 헤아릴수 있는이가 얼마나 있는가?

 그와 동일한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기에 심정을 100% 이해한다는건 인간세상에선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심정을 100%이해해달라고 요청한다면, 그건 우리에게 오히려 상처로 다가올 수 있다.

 오직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심정을 100% 헤아릴수 있는 분은 하나님 뿐이시다.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

 우리는 누군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항상 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일들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항상 관심있게 들을 순 없다.

 하나님은 항상 들어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아침이 다가오는것, 누구에게는 희망이지만 어떤이에게는 불행일수도 있다.

 그 희망과 불행 모든것을 하나님께 아침마다 아뢸때, 하나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신다.

 그날이 희망적으로 변할 수 있는건 오직 아침에 하나님께 나의 상황을 모두 아뢸때이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언제든지 우리의 음성을 들으신다.

 그런데, 우리가 죄악가운데 있을때.. 

 그때는 함께 하실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가야한다.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오만한 자들이 누구인가?

 자신들의 힘으로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다.

 남들보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모든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시면 그 잘남을 뽐낼 수 없다.

 높은 위치와 많은것을 가졌을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겸비케 해야한다.

 그 위치와 가진것이 자신으로 인하였다고 생각하면, 그는 오만한 자이다.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거짓말은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그 거짓말을 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망하게 하신다.

 피흘리는자, 속이는 자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한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의 예배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경외하는자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다.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우리 인생에 원수들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한 원수들은 우리를 주님의 의의길로 인도하는 발판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주의 길을 바르게 가고 있다는 징표가 된다.

 그러므로, 원수가 우리 삶에 나타날때 놀라지 말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하자.


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원수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신뢰가 없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의 중심이 아주 악하다.

 그들의 혀는 아첨하기 바쁘다.

 누가 진리를 얘기하는가? 아니면 아첨발린 말들을 좋아하는가?



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죄하신다.

 그들은 자신들의 꾀에 스스로 빠지고, 그들의 허물들로 인하여 결국 망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에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주를 배역하는 자들이다.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우리는 주께 피할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주님 안에서 의로움이 넘쳐난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인하여 기쁨을 외칠 수 있다.

 주님을 사랑하는 모두는 하나님을 즐거워 한다.

 영원히 변치 않고, 지금도 살아서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때 우리는 즐거워 할 수 있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복을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방패로 의인들을 보호하신다.

 악인들의 길이 좋아보이더라도, 의의 길로 행해야 하는 이유이다.

 결국은, 의로운 길을 가는자들이 승리한다.

 변치 않고, 영원토록 의로우시고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호위하시기 때문이다.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 인생에 의로우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의 죄악됨으로 인하여 크게 괴로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어려운것은 죄악된 세상에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평안케 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진정한 영광으로 보지 못합니다.

 인생들이 추구하는 많은 것들은 실제 영광을 흉내내는 헛된 일일 뿐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결국 거짓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십니다.

 아무나 택하지는 않고, 경건한 자이어야 합니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우리는 두려워해야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범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말은 오히려 우리를 범죄케 합니다. 마음속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침묵이 오히려 나을때가 많습니다.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우리의 인생에 거짓이 없고 의로움이 넘쳐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할때 그러한 일이 가능합니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사람들은 선함을 나타낼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셔야 합니다.

  오직 선은 하나님께로만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계속적으로 동행해야 합니다.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물질이 주는 기쁨은 금방 없어집니다.

 진정한 기쁨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우리의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한것, 즉 물질적인 부가 주는 것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부가 주는 짧은 기쁨이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기쁨의 맛보기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기쁨을 우리는 추구해야 합니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평안히 눕는것.

 평안히 자는것.

 안전함 가운데 사는것.

 이 모든것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서 우리가운데 역사하곡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편히 일어났습니까?

 오늘 편히 잘 수 있습니까?

 오늘도 별다른 사고 없이 살아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음에 감사와 기쁨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시다.




2014년 2월 4일. (선교지 6개월)


우리는 키르키즈스탄의 2번째 도시 오쉬라는곳에서 사역을 하였다.

특별히 그곳에 있는 소수민족인 우즈벡 영혼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였다.


2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지만, 실상은 우리나라 시골보다 못하다.

여기에서도 시골사역이라고 선교사들은 이야기 한다.

실제로 시골까지는 아니지만, 도시에 비하여 여러가지로 시골사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것 같다.


시골사역의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크게 자녀교육의 혜택을 두고 그 기준점을 정한다면 이곳은 시골지역이 맞는듯 하다.

외국인학교도 없고, 자녀들을 현지학교에서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공항이 있긴하지만, 공항에서 타고 내리는 과정이 저렇다.

그래도 비행기가 있는게 어디인가?

없다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12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수도를 통해서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다.



모든 선교지가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리고 우리들의 뜻대로 일들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속도대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가 빠른것인지..그들이 느린것인지 기준점을 잡을 순 없지만 우리 기준으로 그들은 느리다.



시골사역의 장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사람들을 도시 사람보다는 쉽게 사귈수 있다는 점이 있을것 같다.

선교라는것이 실상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것이고, 관계가 거의 전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시사람들에 비해서 분명 선교지도 시골사람들을 사귀고 관계맺기가 쉬운것 같다.

물론 깊게 관계를 맺는 문제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사람들보다는 더 관계 맺기가 쉬운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시골지역은 선교사들이 많지 않다.

선교사가 많은것이 좋은가, 적은것이 좋은가..

여러가지 논의할 수 있겠지만. 많은것보다는 적은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커뮤니티 형성과 교제권도 그러하고, 구지 많은 선교사가 한 지역에 있는것이 정말 좋은것인가? 라는 질문도 필요하다.


어쨋건. 시골지역은 선교사들이 적다.

그러므로 선교사가 할일도 할 수 있는것도 많다.

사람들의 필요도 분명히 많다.


단, 선교사가 시골지역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두가지가 있는듯하다.

첫째는 자녀교육문제이다.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킬것인가...

그래서 젊은 선교사 부부 또는 은퇴한 선교사, 또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자유로운 선교사들이 이 시골지역을 사역하기에 가장 적합한것 같다.


둘째는 문화,편리성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가..

의 문제이다.

시골지역은 선진국에서 자라온 우리들이 살아가기에 문화,편리함이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충분히 감정적, 정서적으로 결핍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고, 견뎌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시골지역에 적합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고려해야할 사항들이 많겠지만, 위의 2가지가 떠오른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복음 18장 36절)



우리는 누구의 왕국을 세우기를 원하는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은 돈으로

어떤 사람은 명예로

어떤 사람은 권력으로

어떤 사람은 사역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고, 그곳에서 자신의 뜻에 복종되거나 이루어지는 일을 두고 기뻐한다.

그것이 인생의 깊숙한곳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이므로, 그런것이 없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거나, 본인을 아직 잘 모르고 하는 말일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깊숙한곳에 자리잡은 이 욕망.

그 욕망이 포장되어서 명예나, 사람들이 존경받는 위치나, 가장 위험한것은 종교적인 위치로 자리잡을때 우리는 스스로 속게 된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왕국이 아닌 이것은 신의 왕국이라고 자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언제든지 내려올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을 추종하던 모든 이들이 한순간에 떠나버린다면


그때가 되어서야 본인도 깨닫게 된다.

아..내가 100% 그분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살아온 것이 아니구나..


그렇다고 그분께서 우리를 그 진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실까?


그런일은 종종 있을 수 있지만 많지는 않은듯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러한 자리에 있다면, 사역보다는 자기점검에

사람들이 원하는 일보다는 주님이 원하는 일을 더 신경써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이 적게 들린다면..그것이 바로 경고의 소리다.

내 왕국을 세우려고 자신을 속이고 남들을 속이고 결국 스스로 속인 결과에 자신의 헛된 믿음으로 모든것을 포장하게 된다.


그 포장은 자신의 가장 의롭고 선하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충성된 종이라고 믿게 된다.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인생을 아는 이들이라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라는것을 깨닫을 수 있다.



나의 왕국인가?

주님의 왕국인가?

나는 왕좌의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가?

왕좌의 자리 옆에서 그분의 영광과 위대함과 완전함에 매료되길 원하는가?


아무것도 없으면서 있는척하길 원하는가..

아무것도 없기에 온전하신 그분 옆에서 온전해지기를 원하는가..


작은 차이지만,

이 차이를 깨닫고 삶에 적용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이 이 모든것을 감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이땅에 속한것이 아니다.

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내려오셨을때, 그분의 왕국은 실제로 우리들에게 보여졌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본 이들이 무척이나 적다.

심지어 제자들도 그 왕국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그 왕국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왕국이 이미 제자들에게 와 있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왕국이 우리 안에 있다.

그 왕국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나만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는가?

아니면 그 둘 사이에 끼여서 괴로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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