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에 복있는 사람이 피해야할 3가지와 특징들이 나온다. [http://www.ezrabible.net/155]

시편 2편에는 복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마지막절에 기록되어 있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시편2편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시고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왕들과 권력과 힘을 가진이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자 하는 모습이 나온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의 권력 앞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때로는 억울하고 불합리하지만 힘이 약하여 그들을 대항할수 없다.


의롭지 못하고,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들이 많다.

왜냐하면 세상의 권력을 가진자들이 악하게 행동할때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권력의 힘을 믿고 자기들 뜻대로 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편2편 4절에는 이러한 일들을 두고 하늘에 계신 이, 하나님은 웃으신다고 하신다.

그들의 행동을 비웃는다.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권력을 주시고 힘을 주신이가 하나님이기에,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것들이 그들의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행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성취되는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 성취되지 못함을 하나님은 보여주신다.


예수그리스도도 그들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박히고 돌아가셨다.

그들이 승리한것처럼 보인게 사실이지만, 실제를 보라.

십자가 사건 이후 2000년이 흐르면서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지금도 가장중요하고 앞으로 모든 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그 십자가 사건 아닌가?

그것도 부정적인 영향이 아니라, 가장 긍정적이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유일하고도 근본적인 사건으로 말이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아들이라 명하신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하는것은 신성모독죄에 해당하였다.

감히 하나님의 이름도 부를 수 없는게 사람의 입장인데, 사람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하는것은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서 완전히 위배되는 사건이었다.

그러한 모든 관념과 전통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확증하신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자기와 동일한 하나님이고, 자기의 친아들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른데서 온것도 아니고, 하나님안에서 태어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라고 알려주신다.

사탄에게 잠시 빼앗긴건 같은 세상을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다시 되찾으시는 장면이 8-9절이다.

실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 계속 자신의 왕국을 되찾고 계신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되찾기 위한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난다.

사탄의 운명도 정해졌고, 하나님 나라의 운명도 정해졌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이미 일어난 역사에서 우리는 교훈을 받아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교훈을 받고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


그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으로 인하여 즐거워 하는것이다.

망하고 사는길, 그길은 누구편에 우리가 서는가이다.


사탄의 길에 설것인가..

하나님의 길에 설것인가..


중간지대는 없다.

하나님 편에 서는자들.

여호와께 피하는 자들.


그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다.


세상의 명예, 권력, 부에 취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슬픈일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명예, 위치, 하나님의 부에 취하는길이 살길이다.

미묘한 차이를 이해해야하고, 그 차이의 깊이를 이해하는자, 그들은 복있는 자들이다.


진정한 힘과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께 기댈것인가..

잠시 잠깐 우리에게 힘을 줄것같지만, 결국 변해버릴 이땅의 것에 기댈것인가..


그 결정과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복있는 자들의 길에 함께 가자!!

  1. 2018.09.16 18:59

    비밀댓글입니다



2013년 11월 17일


선교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선교지는 분리수거라는건 없는것 같다.

살아 가는 입장에서는 편하긴 하지만, 환경오염은 있겠지?

그렇다고 혼자 분리수거 하는게 의미는 없다.


암튼, 분리수거를 하다가 하지 않으면 정말 편하긴 하다.

그런데 그렇게 분리수거를 안하다가 한국에서 분리수거를 다시 하면...그건 엄청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편하면 좋고, 불편하면 싫어하는 어쩔수 없는 존재임을 또 깨닫게 된다.


분리수거 하지 않아도 되는 쓰레기장이다.

그냥 음식물이든, 분리수거가 되는것이든 다 저기다가 버린다.

물론 쓰레기봉투를 돈주고 사는일은 없다.

세금을 내긴 하는데, (한국인 입장에서는) 거의 무료수준이다.


쓰레기통 앞에 보이는 무엇인가 걸려있는것이 눈에 들어와서 찍은 사진이다.

이곳은 한달 평균임금이 200불정도 된다.

재밌는것은 의사도, 교수도, 사무직 직원도, 청소원도 대부분 200불전후다.

오히려 택시기사가 돈을 더 많이 번다.

그래서 의료나 교육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베품과 나눔이 있다.

그들보다 더 가난한이들을 생각하여 쓰레기통 옆에 저렇게 거지들을 위해서 누군가가 빵을 걸어 두었다.


이곳 사람들의 주식으로 먹는 빵인데, 20~25솜, 한국돈으로 400-500원정도 한다.

쓰레기통 옆에 이러한 장면을 쉽게 볼수 있다.


무슬림들의 실천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들은 율법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공동체적)으로 행동을 하지만, 결론적으로 타인을 향한 선행을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자유로워졌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지만.. 타인을 향한 선행을 많이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주변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무슬림들보다 선행이 적기에..무슬림들은 오히려 크리스챤들에게 행동으로 말을 하고 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지만, 속에 있는 것은 겉으로 들어나게 되어있고..

결국 복음은 말보다는 행동인데, 우리의 행동은 그들에 비해서 부끄러운 행동이 많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부끄러운 행동으로 지금 이시대에 저렇게 많은 무슬림들이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말보단 행동.

행동이 안되면 침묵하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신명기 24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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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피해야 하는 세가지 길을 1절에 알려주고 있다.

 

 첫번째는  악인들의 꾀이다.

 정도를 가고, 곧은 사람들은 꾀부리지 않는다. 어떠한 역경과 유혹이 오더라도 정직한 길을 택하고 양심에 꺼리끼는 일을 하지 않는다.

 양심에 꺼리끼는 일을 하고, 정직하지 못한 모든 것들은 악인들의 꾀에서 시작된다.

 잔머리 굴리고, 계산하고, 상황을 살피는것(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오기를 살피는것) 이러한 것들이 악인들의 꾀에 속할 수 있다.


 두번째는 죄인들의 길이다.

 죄인들은 어떠한 길들을 가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고, 그들을 추종해주고,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길들을 가게 된다.

 그들의 길은 넓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길이나, 그 길이 바른길이 아닐 수 있다.

 다수가 원하는길, 대중이 원하는 길이 바른길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은 이들이 원하고 가는길이 바른길이라고 착각한다.

 반면에 좁은길이라고 반드시 바른길이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좁은길을 가기때문에 스스로 의롭게 여길 수 있다.

 그길이 좁고 넓은지보다 중요한건, 그 길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른 길인지가 중요하다.

 길이 어디로 가든, 하나님이 항상 앞에서 인도하시고 성령께서 보장하시고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한다.

 

 세번째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리'에 대한 욕심이 있다.

 누구가 권력을 가지길 원하며 명예로운 자리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이땅에 어떠한 자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보다 좋을까?

 이땅에서 사람들이 주는 자리를 욕심내기 보다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리어 하나님께 받는 칭찬을 욕심내야 하는것이 성도의 기본이다.

 이러한 기본을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사람들의 칭찬에 목매여 하는게 현실이다.

 자리싸움 하지 말자. 높은자리에 잊다면 아랫사람들에게 내어주자. 낮은자리로 가자.

 그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길일 가능성이 많다.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2절에서는 어떻게 하면 복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는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낮,밤으로 묵상하며 먹는자이다.

 우리 인생에 누가 바른길을 제시할 수 있는가? 인생은 누구나 부족하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위대한 그리스도인도 우리를 온전케 할 순 없다.

 그리고 뛰어난 성경교사도 우리를 온전히 바른 길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우리 스스로 성경을 읽고 즐거워하며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사람의 종이 될 수 있다.

 말씀을 즐거워하며 말씀에서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걸음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는 시냇가에 심겨져 있는가?

  좋은 물을 먹으며, 양지 바른곳에서 자라므로 인하여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의 잎사귀는 말랐는가? 너무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힘이 빠져 있지는 않는가?

  좋은 양식을 먹는것, 좋은 말씀의 양식을 매일 먹는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먹여줄 선한목자가 내 곁에 있는가?

  내 스스로 좋은 말씀을 먹을 수 있는 영성을 갖추고 있는가?

  형통하기를 원하는 모든자들은,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할 것이다.

  내가 건강해야 내 주변도 건강해 진다. 먼저 내 건강을 챙기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자!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바람에 나는 겨의 특징이 무엇인가?

  바람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변하지 않는가?

  환경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변하는 신앙은 기초가 없고, 뿌리가 약한 신앙이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굳게 믿음을 지킬 수 있고, 변치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어디에 있을까?...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들은 겉으로는 좋아보일 수 있으나, 결국에는 망하게 된다.

 그들은 심판을 견딜 수 없다.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도 못하며,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 

 망하게 되는것이다. 우리는 망한 인생을 맞이할것인가? 의롭게 빛나는 모임에 들어갈 것인가?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나는 의인들의 길을 가고 있나?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는가?

 내가 가고 있는 길, 그 길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직 하나님과 깊은 대화가운데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살아야 할것이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복있는 사람이며,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는 자들이다.




2013년 10월 14일, 선교지 2개월차

계획하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교지 도착하자마자 둘째를 주셨다.
아직 언어도 제대로 못하고, 무엇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상황이었다.
그런데, 둘째의 기쁨을 누리기에도 잠시...병원에서 둘째가 위험하단다.
조산기가 있어서 아내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어느정도 위험한 상태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병원은 사실 신뢰하기가 어렵기에, 한국에 있는 의사에게 물어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무조건 누워있으라고 하고, 한국에서 급히 관련약을 보내주신다고 하였다.

그 약을 기다라며, 그리고 조산기가 사라지길 기도하며 아내는 계속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보낸것 같다.
그 기간에 난생처음으로 집안일을 내 스스로 해야했다.
한국에서도 집안일이 물론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나같이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적 없는 남자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숙제였다.
거기다가 아내는 조산기로 위험한 상황에 있고 아직 첫째도 어려서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최소 한국에서는 밥이라도 시켜서 먹으면 되었지만, 이곳은 그럴수도 없고, 그럴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시켜먹는것 아니라 해먹는것도 재료부터 방법 모든것이 풀기 어려운 숙제! 그 자체였다.
여튼 일주일의 힘든고뇌의 시간을 이겨내면서 다시금 병원을 찾아갔다.

기도도 많이 했고, 한국에도 여러 성도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에 큰 걱정없이, 좋아졌을거란 기대로 병원을 간것이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아기의 심장이 멈췄단다.
그리고 산모가 위험하므로 급히 수술을 해야한다고 얘기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후로 시작되었다.
이곳 병원은 일반적으로 조산의 경우 수술시 마취를 하지 않는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식 의료가 조금 거칠다.

그래서 마취 없이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강압적으로 얘기하였다.
급히 한국의사게에 물어보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그렇게 하는것은 너무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어렵지만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이 좀 걸려도 좋으니 마취를 반드시 하고 수술을 하자고 얘기하였다.
의사는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때 우리를 도와줬던 통역하는 사모님께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통역을 도와주셨던 사모님 남편분이 한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덕에 많은 정보와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게 되었다.

감사히 마취 후 수술을 하게 되었다.
한국병원과는 달리, 이곳은 2차 감염이 많이 일어난다.
이후에 여러차례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하였는데,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끝나고 모든것을 마무리 하고 집에왔다.
사실 이때 나의 아내는 큰 고통속에서 아픔을 호소하게 되었다.
그것은 둘째를 잃은 아픔, 병원에서의 무서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갑작스런 충격.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였고, 기도도 그 어떤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말, 극적으로 그런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었던 아내를 주님께서 건져주셨다.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유산 후 그렇게 길지 않은 어둠의 통로속에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할때 주님이 건져주셨다.

인생에서 정말 우리 스스로 하기 힘든일이 있을때, 그럴때 주님께서는 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뭐라고 설명할순 없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피할길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극적인 도움으로 나의 아내는 둘째를 잃은 유산을 큰 트라우마로 가지진 않게 된것 같다.
오히려 내가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오는 아픔과 눈물이 있다.

아내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수술대위에서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
오직 주님께만 필요를 구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

고통과 아픔은 사람을 성숙시킨다고 했던가...
그러한 것이 우리의 성숙과 또한 그 성숙으로 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계기로 만든것이 주님의 섭리였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주셨던 그 아이를 하나님이 빨리 보고 싶으셨던것일까?

신앙은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분을 신뢰하기위한 것인데..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었을까?

고통과 아픔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아픔은 참 겪고 싶지 않지만...그래도 그 아픔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 또한 적극적으로 겪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모든 내 삶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매순간 고백하는것.
그것이 기도의 삶이고, 신앙인의 삶이고, 크리스챤의 삶이고, 선교사의 삶 아닐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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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가 2차 세계대전 끝날 무렵 생애 마지막 순간 베를린 감옥에서 쓴 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마치 지주가 자기 저택에서 나오듯

침착하고, 쾌할하고, 당당하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명령하는 권한이 있는 듯

자유롭고, 친근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하는 데 익숙한듯

평온하고, 미소 지으며, 당당하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나 자신이 아는 그런 존재일 뿐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뭔가를 갈망하며 병든,

손들이 내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가쁜,

빛깔과 꽃들과 새 소리에 굶주린,

친절한 말과 이웃에 목마른,

압제오 사소한 모욕에 분노로 치를 떠는,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는,

무한히 멀리 있는 친구들로 인해 힘없이 슬퍼하는,

기도하고, 생각하고, 만드는 데 지치고 허무해진,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나는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

내 앞에서는 한심스러울 만큼 슬픔에 잠김 약골인가?

아니면 이미 성취된 승리로부터 혼돈 가운데로 도망치는,

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패잔병 같은 그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나를 조롱하고 이 고독한 질문을 비웃는다.

내가 그 누구든지, 오 하나님 당신은 아나이다.

내가 당신 것인 줄을.






2013년 9월 27일. 선교지 1개월차.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선교사들이 현지음식만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것이다.
그렇지 않다.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을 만날때는 현지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집에서는 한식을 먹는다.
물론 한국과 같은 그러한 한식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최대한 비슷하게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걸 최대한 활용해서 한식을 먹는다.

한국과 같은 쌀은 아니지만..쌀을 구해서 밥을 하고...
여러가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식으로 먹는다..
그말은 여기에서는 음식하는 일이 한국보다 최소 2배, 최대는 측량할수 없을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암튼..그러한 환경에서 최대한 도와줘야 하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다.
많은건 도와줄수 없을지라도 최대한 시장을 같이 가는것, 그리고 물건 들어주는것, 그리고 이것저것 고를때 따지지 않는것(내가 음식을 하지 못하므로...) 뭐..이런것들이 생각이 난다.

한국은 마트에 가면 모든것들이 있고 쇼핑카트도 있고..여러가지 쉽게 쇼핑할 수 있다. 물론 돈이 꽤 들긴 한다.
이곳은 돈은 정말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것이 너무나 싸다.
특별히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양파, 감자, 당근, 오이 등은 싸다.
그런데 비싼것이 있다. 여기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한국음식을 위해서 필요한것들은 소비층이 적기 때문에 비싸다. 한국보다 더 비싼것들도 본것 같다. 그래서 싸긴 하지만 한식을 제대로 먹으려면 또 이러한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이곳은 정감이 있는곳이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고(자기들 물건 사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긴 하지만..(시간이 지나면 그냥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이걸로 싸워서 현지인들과 동일한 가격을 받아내기도 하고 그렇게 한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가장 현실감 있게 이곳의 경제상황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들의 성실성, 국민성, 여러가지 것들을 보게 하는 곳이다.

근데..이러한 장보기를 하면 하루의 반나절이 지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날잡아서 하루종일 장을 봐야할때도 있다.
한곳에 모든것이 있는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떨어져 있기도 하고, 없는 물건들도 많고..여러가지 제약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교사들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잘먹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단 건강해야 선교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먹어야 또 열심히 사역할 것 아닌가?
현지인들 만날때는 잘 먹는것이 아니라 잘 먹어주는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최소 한끼라도 잘 먹어야 하루를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곳 선교지에서의 삶을 즐기며 기뻐하며 살아낼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었었다.

선교지 도착해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보기와 시장을 보기 위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어라고 하는건, 숫자만 알면 되기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것이 잘 안들리고 헤깔리고 그러하였다.
특히 러시아어는 더 헤깔린다. 몇달이 지나고서야 겨우 적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 시장보기를 하면서 아내와도 많이 다투었었다.
다투는 주요관점은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사역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장보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쓰는것 아닌가?
아내는, 이게 다 우리 가족이 먹기 위해서 시간을 쓰는것이다.

나는 사역에 있어서 부담과 압박이 알게 모르게 많았던것 같고..
아내는 오히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신경을 많이 썼던것 같다.
이러한 다툼과 오해를 해결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나는 시장보기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적극 도와주는 남편으로 변하게 되었다.
왜냐면...결국 이게 다 내가 먹는게 아니었던가?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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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 begins at home, 2013년 8월 11일, 선교지 1개월차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다. 사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참 공감이 되는 말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집’이 가지는 의미가 참 많지만 공통적으로 ‘안식’,’쉼’ 이란 단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그러한 안식과 쉼은 가정에 ‘사랑’이 있는것을 전제로 우리가 느낄수 있는 감정들이다.

우리의 삶의 시작이 되는 장소는 ‘집’이고, 그 집의 근본은 ‘가정’이다. 그러므로 집은 우리 모두에게 참 의미 있는 공간이다. 우리의 선교지에서의 시작이 되었고 마침이 되는 장소는 바로 이 ‘집’이었다.

처음 도착 후 우리의 안식처가 되었던 장소이다. 원래 들어가기로 예정되었던 집이 공사를 하게 되어서 조금 작은 이 집을 임시거처로 있게 되었다. 분명 집 주인은 2주면 공사가 끝난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2주면 끝난다는 공사가 2-3개월이 될줄은 전혀 몰랐다. 암튼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집에서의 추억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선교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도착후 1주일은 관광객 모드로 지냈던것 같다. 일반적으로 학생비자부터 시작하므로 우리또한 러시아어학과정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학원을 등록하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비자가 발급되기까지 시간이 있었고 초반에 정착하기 위해서 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까지는 관광객 모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곳에 대해서 적응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러시아어를 조금, 정말 조금 공부했었다. 그 덕분에 서바이벌은 하였지만, 말이 서버이벌이지...정말 개고생(—)했다. 언어의 장벽. 그것은 우리를 여러번 낙담케 하는 주된 소재였고, 우리를 겸손케 하는데 최고의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근데 재미난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단한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고,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걸 경험하게 되었다. 낯선 환경, 너무나 한국과는 다른 집의 구조, 언어의 장벽, 모든것들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곳에서 너무나 잘 자고 잘 먹고 잘 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것, 아니 어렵게 얻을 수 있는것이더라도 이곳에는 못 얻는 것들이 많다. 구할수 없고, 불가능한 환경이 주어지면 사람은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고 그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태도로 빠르게 바뀔 수 있다. 또 새로운 것들을 즐기고 경험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적응이라는것, 그것은 기존의 것을 바꾸는 고통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즐거움도 있다. 결국 우리의 지경이 넓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것은 하나님을 더욱 더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광대하신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해준 첫 집.
내 인생에서, 우리 가족의 인생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집이기에 참으로 소중하다.
나는 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앞이 막막하고 두려울때, 그것을 지나가면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된다.
그길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이라면, 주저하지 말자!
두려움은 금세 사라지고 그분의 광대하심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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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도착, 설레임. 2013년 8월 8일

32세, 이제 인생을 막 시작하는 나이에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과 함께 선교지 땅을 밟게 되었다.
강성 이슬람은 아니었지만, 이슬람 국가이기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함께 이곳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우리 가족은 기쁨으로 도착하였다.
모든것을 버리고 이땅에 도착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모든것을 버려야 얻을 수 있는것이 더 많기에 우리는 더 얻기 위해서 이곳을 선택한것이었다.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가끔씩 드는 두려움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있을 수 있지만 이때는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것 같다.
단지, 젊은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에 여러가지것들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분명 주님 앞에 진실되게 한 기도였고, 주님 앞에서 한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잘 몰랐다.

사실, 우리를 잘 안다고 한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를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그 분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기에 우리는 이 일을 아무런 두려움과 걱정없이 전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키르키즈스탄 비쉬켁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우리 홀로 도착한것은 아니었고,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함께 이곳 낯선곳에 도착하였기에 더욱 우리의 두려움은 감추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는 27세였다.
요즘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이들이 많지만, 나의 아내는 나를 믿은건지, 하나님을 믿은건지, 둘다를 믿은건지 암튼 감사하게 나를 믿고 결혼해주었다.
그리고 신혼을 채 누리기도 전에 아들을 임신하고 아들을 낳고 한참 아이를 키워야 할 시기에 이곳 선교지를 함께 오게 되었다.

사실,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아내다.
겉으로는 남자들이 사역을하는것 같지만, 실제 보이지 않는곳에서 엄청난 수고를 하는건 아내의 몫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선교의 부르심을 받는것 이상으로 아내의 선교에 대한 부르심은 더욱 확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쉽지 않은 선교지에서의 삶에서 버텨내질 못한다.

감사한것은, 나보다는 아내가 훨씬 선교지에서 더욱 잘 살아냈던것 같다.
많은 순간 힘들어한 건 나였으며, 아내는 오히려 선교지에서의 삶을 즐기고 감사하며 생활해 가는걸 옆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더욱 중요한 위치에 있긴 하다.
연약한 자에게 더욱 중요한 자리를 맡기신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까?

나는 연약하였고, 많이 부족하였기에 더욱 하나님께 엎드릴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기대와 설레임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한 부푼 마음을 가지고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고 밖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선교사에게 얼마나 감사와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 단체에 속해있지도 않았고, 어떠한 도움을 현지에서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줄 천사들을 항상 마련해놓고 준비해놓고 계셨다.

하나님을 의지하는것이 맞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분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또 한번 보게 된다.
분명 이때 느꼈던건, 어떠한 어려움과 두려움 고통보다는 설렘, 희망, 도전등의 더욱 진리와 진실에 가까운 감정들이었다.
결국 우리 인생을 이끄는건 희망과 비전, 설레임, 기쁨인것 같다.
미래가 희망적이고 도전적이고 열매들이 기대될때 우리는 설레이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게 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죽음'까지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할 '담대함'이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이다.
분명 이때 우리는 그러한 높은 수준의 감정과 기대로 휩싸여 있었다.
그러한 소망과 비전은 우리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명기 1장 30~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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