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4편 21절. 젊은 사자들은 그들의 먹이를 쫓아 부르짖으며 그들의 먹이를 하나님께 구하다가

(쉬운성경) 사자들은 먹이를 찾아 으르렁거리고 하나님께 먹이를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사자들은 동물들의 왕이다.

동물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고 위협적이고 모든 동물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그러한 사자들이지만, 

사자들도 먹이를 좇아 다녀야 하며,

열심히 자신과 무리들을 이끌고 살아내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사냥감을 좇아 다닌다.

 

힘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열심히 그들의 생애를 살아낸다.

 

그런데, 시편에 보니, 단순히 그들이 열심히 사냥감을 좇아가는것이 아니라,

그들의 먹이를 하나님께 구한다는 구절이 있다.

쉬운성경에는 하나님께 먹이를 달라고 부르짖는다고 표현된다.

 

사자들도 하나님께 구하는데,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의뢰해야 하는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장 1절)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일날 예배할때 기쁨과 감격을 느낀다.

찬양할때 감정이 고조되고 눈물과 함께 우리의 삶을 드리기로 작정한다.

교제 가운데 성령의 임재를 느끼며 경험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사랑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없다면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한번 쯤 검증해보는게 어떨까?

 

오늘은 이러한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또 다른 경험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기쁨과 감격의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에오니, 집이 엉망이다.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아내와 남편도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듯이, 나는 또 다시 아이들과 아내,남편에게 화를내고 있다.

그리고 불평,불만이 그냥 속에서 터져나온다.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내가 언제 눈물로 주님앞에 나의 삶을 드리기로 작정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중적인 나의 모습에 더 우울감과 함께 절망감이 다가온다.

나는 실패자인가.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삶의 현장에서는 주일날 예배 드리듯이 기쁘게 살수 없는것인가?

여러가지 의문과 함께 그냥 주일과 일상을 구분해서 다르게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원래 사람은 다 그런것이라며..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놀라지 않고 똑같이 그리스도인은 원래 이중적이구나..이렇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받아들인 현실로 인하여, 아이들은 하나님의 존재까지 부인하게 된다.

부모의 이중적인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신앙을 저버리게 만들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최소한 가장 가까운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부모는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 오히려 자녀들을 압박한다.

강제로 회심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데, 그렇게 회심되는 일은 없다.

 

 

로마서 12장1절에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한다.

우리의 삶이, 살 전체가 거룩한 예배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것이 어려운 일인줄 안다.

그래서 쉬운일에는 전심을 다해서 우리를 드리는것 같지만,

정작 해야하는 삶의 현장에서는 전심을 다하기 보다는 두 마음을 품고 쉽게 포기해 버린다.

 

그 누구도 삶의 현장에서 승리한 것들을 잘 알려주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실패하므로, 본보기가 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것은,

삶의 아주 작은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일을 잘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배우기를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지 않고 오직 주님께로만 인정과 칭찬을 받는 일에는 우리의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사는이를 찾기 어려운건,

우리 인간의 본성이 원래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 지독히도 갈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본성을 거스르는것.

거기서부터 삶의 예배가 시작된다.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기 위해서는

역시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오직 주님앞에 바로 서 있는것...그것밖에는 없다.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것을 훈련하고 연습하고 기도하는것.

 

그길만이

우리를 이중적인 그리스도인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삶의 어디에서나

동일한 '나'로, 동일한 '그리스도인'으로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해준다.

 

코람데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이 말을 매순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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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crifice of Isaac, 1635, oil, The Hermitage at St. Petersburg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을것을 약속받은 후 25년을 기다림.

1.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때 75세(창12:4)

2. 아브람이 이삭을 갖게 될것을 약속받음 75~76세사이.(창15:1~5)

3.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음. 86세 (약속 받은 후 10년정도 지난시기) (창16:16)

4. 아브람이 이삭을 낳음, 100세(약속 받은 후 25년정도 지난 시기)(창21:5)

 

이삭은 결혼 후 20년 후 야곱을 낳음.

1.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창 25:20)

2. 리브가도 임신을 하지 못하였으나 기도 후 임신하게 됨(창 25:21)

2.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낳을때는 60세(창25:2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은

이삭을 통해서 온 민족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 그리고 야곱 그리고 다윗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되는 약속이었다.

 

단순히 아브라함에게만 한 약속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가족, 후손을 통해서 이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이 약속을 알려줬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8~19절)

 

 

아브라함과 이삭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녀를 통해서 구원자가 오게 되고, 그 구원자를 통해서 온 인류가 복을 받게 된다는것이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 복음의 통로의 역할을 하는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지만(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그 약속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실행하지 않는것 같은 느낌,실제를 둘 모두 경험하게 된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내는 아이를 갖지 못하였다. 최근에는 여러가지 환경오염과 인스턴트, 각종 스트레스 등으로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시절에는 그러한 것이 많지 않은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에는 자녀를 많이 낳는것이 곧 힘이었다. 그러므로 아내가 자녀를 갖지 못한다는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약속의 실행여부를 떠나서 사회적으로도 비난을 받는 일이 되는것이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자녀를 낳지 못하는 자들의 슬픔을 볼 수 있다.

 

결국 사라와 리브가도 이러한 비난을 받으면서 지냈을 것이고, 이러한 어려움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도 그대로 전가가 되는것이었다. 단순히 하나님의 약속의 실행여부를 떠나서 일상생활도 힘이 드는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께서 모를리가 있을까? 절대 그럴순 없다. 그러한 상황을 모두 아심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는 25년이라는 세월을, 이삭에게는 2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리게 하셨다.

 

둘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 기다림, 인내를 잘 하지 못한다. 가장 힘들어하는 영역일 수 있다.

눈에 보이는걸 좋아하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힘들어 한다.

오랜 시간 기다림이 힘든것도..기다리다 보면 약속도 잊어버리고 믿음이 점차 사라진다.

그러한 것을 인간은 견뎌내질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다림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배우게 하신다.

 

아담에게 주신 약속, 그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그리고 계속 이어져 다윗에게..그리고 오랫 역사를 지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셨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일까?

그리고 사역을 마치시고 부활 후 승천하시고 다시 이땅에 오신다고 하신지 2000년이 더 되는 시간이 지났다.

언제 오실까?

아직 1000년은 더 있어야 하는것일까?

하나님은 더 많은 인류를 보기를 원하시는것 같기도 하다.

곧 오셨으면 좋겠지만, 금방 오실것 같지는 않다.

더 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보고 싶으신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듯 하기 때문이다.

 

기다림.

아브라함은 25년, 이삭은 20년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통해서 4000년 이상을 기다리고 계신다.

앞으로 더 기다리실것이다.

모든 인류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이런 생각이 드니, 나의 기다림은 기다림도 아닌것 같다.

하나님의 오래참음과 기다림. 그것이 결국 사랑이고

그 사랑을 하나님의 사람들은 배우기를 원하시는것 같다.

 

배워도 겨우 25년밖에 안된다.

4000년 이상을 기다리는 하나님에 비해서

우리 인생의 기다림은 너무 짧은것 아닌가?

 

 

 


부족함이 있다면 그건 나의 목자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아니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들어본 성경구절이다.

분명한 결론은 내게 부족함이 없다 이다.


나의 인생에 부족함이 없는 것. 이것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이 있을까?

그런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부족함이 넘치는것 같다.

왜 그렇게 부족함이 넘치고,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고, 만족함 보다는 불만족함이 넘치는가?


그것은 위의 말씀을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내게 부족함이 없다면, 그것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때문이다.

반대로, 내게 부족함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목자가 여호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목자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가?


다른 그 무엇은 사람마다 다를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

어떤 사람에게는 부,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자신.


이 모든것들은 우리에게 필요할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인도하는 목자가 된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부족함과 결핍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면,

나의 목자가 하나님인지, 다른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자.


다윗이 고백했던 그 고백.

지금도 동일하게 고백할 수 있다.

나의 목자가 하나님이므로, 나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최선을 주시고, 하나님이 모든것의 모든것 되시기 때문이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오늘이 마지막일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서 마지막 날을 지내는 이도 있을것이고,

그 사실을 모른체 평소와 같이 오늘을 지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결국 누구에게나 '하루'는 마지막일 수 있다.


'인생의 마지막 날'

무엇을 해야하며..

누구랑 시간을 보낼 것인가?


그러기에는 24시간은 너무나 짧다.

아니, 100년도 사실 너무나 짧다.


이렇게도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데

사람들은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한채 고통과 괴로움과 불평과 짜증들로 시간을 채워나간다.

혹 그 중에 선한일을 하고 남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다.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이 이렇게 코앞으로 다가온 것 같은 '느낌', 아니 '실체'가 보여진다.

이제야 '인생'을 조금 알게 되는 것일까?


항상 '죽음'이 코 앞에 있지만,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 모습들..



모든이들이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 거대한 목표를 이룬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그 소수마저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기를 반복하는 모습.


그리고 거대한 목표에 이루지 못한이들은

어떻게든 그 거대한 목표에 도달하고자 중요한것을 뒤로한 채 끊임없이 매진하는 모습

그리고 그 길에 동참하지 못한 이들을 '낙오자' 취급하는 사람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렇게 믿으며 행동하는 이들은 거의 볼 수가 없는 세상

이것이 실제임을 깨닫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확히 제대로 가르쳐 주는 올바르고 지혜로운 선생이 부족한 시대


이러한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내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해야 할 사람들을 깨닫고..

오늘 하루를 놀라운 축복의 선물로 깨닫고 힘있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무엇인가 시대와 세상을 변화시키려 살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것에 감사와 최선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진정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인이 아닐까?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하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안에는 '거품'이 생겨 버린다.

그 '거품'을 깨닫는 이들은 적다.


그 '거품'이란..

세상을 변화, 개혁 시키고자 시작했으나

나를 유명하게 하고 싶은 '욕망'으로 변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작이 좋았기에..

변질된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권좌에 앉게 되었을때는 이미 눈이 어두워진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단한 업적보다

위대한 사상보다


'현재의 나'

' 그 주변'

' 주어진 일'

에 대한 감사와 행복으로 하루를 사는것이 진정 지혜있는 자가 아닐까?




희망을 먹고 사는 인생.



"당신에겐 꿈이 있나요?"

"아니, 그 꿈을 이룰수도 없는데 뭐하러 꿈을 가집니까?"


"그래도 꿈이 있어야 인생이 아름답지 않을까요?"

"그냥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것이 아름다운 인생이에요.."


"그럼 당신은 지금 현실에 만족하시나요?"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인생이란..

어릴적 가장 큰 꿈을 꾸다가..

나이가 들면서 그 꿈이 이룰수 없음을 깨닫고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그런데 현실에 적응해서 사니, 인생이 행복하지가 않다.

다시금 꿈을 꾸기에는 너무 철이 없는것 같기도 하고, 내 꿈이 뭔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그냥 다른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사니깐, 나도 그렇게 사는것이 맞는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사는 인생이 되는것일까?

이것이 바로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니깐.

나도 특별하진 않으니깐 그냥 평범한 대중이 되고 싶은것이다.



그런데..

분명 모든 인생은 특별하다.

우리는 무언가에 속아서 평범한 대중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안전한곳이 있을까?

그리고 모두가 똑같아질수가 있을까?


희망이 있다는 것.

꿈이 있다는 것.


그것은 죽을때까지 놓치 말아야 할 인생의 본분이다.

모든이들이 이 땅에서 분명히 각자가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

그리고 모든이들이 이 땅에서 분명 각자의 색깔을 나타내야만 한다.

그래야 세상은 그래도 아름다워질 수 있는것 아닐까?


많은이들이 일부를 위해서 희생되어야 하는것은 인생의 비극이다.

모든이들이 각자의 특색을 나타낼때, 인생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안그래도 비극적인 인생인데, 그나마 색깔있게 살아야 비극적인 인생가운데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지 않을까?


모든이들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꿈과 희망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것이 우리를 오늘도 힘있게 살게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꿈'이 없는자.

그것은 '인생'을 포기한 자다.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 마음의 일부가 아닌, 마음의 전부를 온전히 하나님께 감사한다.

 -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건, 마음의 일부가 다른것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 감사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들이 놀라움을 깨닫게 된다.

 -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깨달은 자들이 어찌 전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 무엇을 기뻐하는가? 나에게 주어진 복들로 인하여 기뻐하는가?

 - 아니면, 하나님을 기뻐하는가?

 - 우리가 무엇을 받을때만 기뻐한다면, 무엇을 잃어버릴때 그때는 기뻐할 수 없다.

 - 그러나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한다.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는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누리는 자만이 알 수 있다.

 - 상황이 아닌,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기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다.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고, 원수들이 패를 지어서 나를 괴롭힐때가 인생에 종종 일어난다.

 - 그러나 원수들이 계속 나를 대적할 순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기에 하나님의 때에 원수들은 물러간다.

 - 그리고 그 원수들은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고, 결국 망하게 된다.

 -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우리에게 항상 필요하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 우리 스스로 의에 대해서 변론하는것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렇게 하더라도 변론이 되지 않을때가 있다.

 - 그러한때는 나의 의로움에 대해서 오직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이 직접 변호하실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하나님의 보좌앞에서 하나님이 나를 변호하실때, 의롭지 못한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망하게 될것이다.

 -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므로 누구를 심판할 자격이 사실상 없다.

 - 나의 의로움으로 인하여 우리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고 하는 유혹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 오직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기쁨으로 해가는것이 모두에게 유익하고, 나에게 가장 유익하다.


5.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망하게 하시고, 그들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 의로우신 하나님께 악인들을 맡기는것이 가장 지혜롭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 원수들은 결국 영원히 멸망한다.

 -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성읍을 무너뜨리면, 다시는 회복되지 못한다.

 - 우리 스스로 악인들의 성읍을 무너뜨리려고 하면, 우리의 명예만 손상될 수 있다.

 - 그러한 우를 범하진 말자.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 하늘 보좌에 분명히 악인들을 위한 심판의 보좌가 있다.

 - 이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 하나님의 때가 임하고 있으니, 그 때를 기다리자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 하나님의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반드시 악에 대해서 심판하신다.

 - 모든 거짓들에 대해서 낱낱히 심판하신다.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고 정직하고 의롭게 하나님 앞에서 살 필요가 있다.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 압제 당하는 자들을 사람들은 돌보지 않을 수 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압제 당하는 자들의 편이고, 고아와 과부들을 위하신다.

 - 항상 하나님께서 약자들을 위해서 요새를 마련해 두고 계신다.

 - 내가 힘을 가졌을때, 약자들을 우습게 보거나, 그들을 괴롭게 하는 일을 범하지 말자.

 - 그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 주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찾는다면, 더 이상 걱정과 근심은 하지 말자.

 -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돌보시고 지켜주신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 하나님께서는 가난한자들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신다.

 - 우리가 부르짖을때, 그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 너무 힘들고 어렵다면, 하나님께 부르짖자.

 - 그분은 반드시 그 음성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그 일을 해결하실 것이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 누군가 우리를 미워할때, 우리는 고통스럽다.

 - 그 고통스러움에서 하나님만이 우리를 일으켜주시고 은혜의 길로 인도하신다.

 -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신 분이다.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우리가 하나님께 때로는 이렇게 조건식의 부르짖음도 괜찮다.

 -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시면 하나님을 온 천하에 알리겠다.

 - 그렇게 해도 된다. 아들이 괴로워서 그 괴로움에서 건져주면 아버지가 하신 일들을 친구들에게 알려주겠다는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 하나님 떠난 사람들은, 스스로 판 웅덩이에 빠지게 된다.

 - 다른 이를 잡기 위해 만든 그물에 스스로 빠지게 되는 일들이 많다.

 - 하나님이 없어서 그렇다.

 - 진리가 그들 마음속에 그들의 생각속에 없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 우리는 진리가운데 있으니 얼마나 안전한가?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 악인들은 결국 그들의 잔꾀로 인하여 망하게 된다.

 - 자기 스스로 만들고, 그 스스로 만든 일이 올무가 되어 자기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인도한다.



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 악인들의 결론은 망함이다.

 - 의인들의 결론은 하나님 안에서 은혜를 맛보는 것이다.

 - 망할것인가? 하나님 안에서 은혜를 맛볼 것인가?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 궁핍함이 영원토록 지속되지 않는다.

 - 가난도 계속 되지 않는다.

 - 고통스런 시간들이 있지만, 그 고통은 잠시뿐이다.

 -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의 진정성이 드러나고 우리들의 미래가 결정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 악인들의 악한 일들을 이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바른기도이다.

 - 우리때에 그 결과를 볼 수 없을지라도, 의인들의 기도는 악인들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 시편기자는 계속 그러한 기도를 많이 하고 있다.

 - 괜히 우리가 의로운척,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척, 살려주라고 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 악인들을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 다만, 우리가 그 망하는 일에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 하나님이 온전히 그 일들을 처리하게 우리들의 입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 하나님께서 악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할 것이다.

 - 그리고 하나님 없는 인생들이, 한없이 힘없고 초라한 사람의 존재성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 결국 죽음앞에서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이, 무엇이 대단하다고 스스로 착각들을 하고 있는가..

 -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악인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 의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일 뿐이다.

 - 오늘 우리들의 숨을 거두어가신들,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는가?

 - 그러한 해법을 가진자는 아무도 없다.

 -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으며, 우리가 살아서 숨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다.

 - 생이 주어졌을때, 감사함으로 하루를 살아가자.

 - 오늘의 하루는 주어져서 감사하지만, 내일 하루가 주어진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 우리 하나님의 이름은 온 땅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 이름의 아름다움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 하나님의 영광은 온 하늘을 덮고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

 - 영광의 빛은 어둠을 물리치고,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를 깨끗한 곳으로 인도한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 우리 앞에 대적들이 많으며, 악은 지금도 힘을 발휘나는것 같이 보인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한 어린 아이들과 갓난아기들같이 힘없고 아무런 능력이 없어 보이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신다.

 - 원수들과 힘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 그들을 잠잠케 하는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일할때 그들은 겸손해질 수 있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 하나님께서 직접 하늘을 만드셨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위해서 달과 별들을 지으셨다.

 - 하늘만 만드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감성을 자극시키는 수많은 별들까지 만드신 하나님의 섬세함을 볼 수 있는가?

 - 여성의 섬세함은,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하는 지극히 섬세한 속성의 일부를 표현해줄 뿐이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 피조물인 사람이 무엇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극히 인간들을 생각하고 계신가.

 - 창조주인 조물주가 피조물인 인간을 위하여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섬세하기 일하시니 그저 감사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 지금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부어주신다.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 창조주인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때, 그 피조물의 수준을 피조물 수준이 아닌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수준으로 만드셨다.

 - 하나님과 똑같이 만드시고 싶으셨지만, 그건 원래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기에..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

 - 그리고 사람을 영화롭고 존귀하게 만드셨다.

 -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영화롭고 존귀하게 만드신 놀라운 존재이다.

 - 주변에 있는 그 어떤 누구도 이러한 존귀와 영화로운 존재라는걸 인지하게 대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 하나님께서 이땅의 모든것들을 만드셨다.

 - 그 창조의 이유는,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쓰게 하신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 사람들이 그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게끔 하는 목적을 두고 천지를 만드신 것이다.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 우주뿐만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소, 양, 들짐승 등 모든 동물들이 우리를 위해서 만드신 하나님의 선물들이다.

 -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동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권위를 우리 사람들에게 주셨다.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 땅에 있는것 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것들, 바다 속에 있는 물고기, 그리고 바다의 길에 다니는 것들까지 모두이다.

 - 잘 보이지 않고, 가기 힘든곳에 있는 바닷길에 다니는 것들까지 하나님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으셨다.

 - 우리가 경험하고 본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 하나님은 바닷길까지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다스리게끔 창조하셨다.

 - 우리에게 주어진 복들이 너무나 많고 다양한데 혹시 우리의 생각이 우물안 개구리여서 그것을 다 깨닫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 모든 인생들은 지경을 넓혀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비밀들에 대해서 계속 알아가야 한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지으셨고, 그 지으신 만물을 사람을 위해서 지으셨다.

 - 모든 만물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신비스러운가?

 - 그러한 신비스러움 속에 하나님의 영광의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

 - 그리고 그러한 영광의 아름다움을 사람들로 하여금 다스리고 누리게 하셨다.

 -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루, 환경, 모든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경험하고 누리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가?

 -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든 것들을 오늘이라는 시간, 어제보다 더 많이 경험하고 배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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