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 1~2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       사도(Apostle), 헬라어로는 apostolos이며 보냄을 받은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일정한 사명을 위임받아 파견된자이다.

-       누구로부터의 파견이며, 누가 위임을 주었으며, 어떠한 사명을 주었는가?

-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사도바울의 사도직은 전적인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떠한 사람들의 임명이 아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는 구절에서 그의 사도직의 수식어는 그리스도 예수이다. 우리의 청지기직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어떤 뜻인가? 기름부은받은자가 아닌가? 구약에서 기름부은받은 자는 왕, 선지자, 제사장이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자이며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       우리의 청지기직의 임명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위임과 권한을 주님께로부터 받았다.

-       편지의 수신자들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신자들인것을 볼 수 있다.

-       그리스도 예수안에 라는 구절을 살펴보자.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신실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행함이 신실함의 근거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신실함의 근거다.

-       삼위 일체의 2위격인 예수님 안에 우리의 신분은 항상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며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편지를 받기에 너무나 합당한 자들이며 신실한 자들이다. 이미 신실해졌으며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신실하다. ‘성도라는 신분이 그러한 놀라운 신분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존재다. 온전히 거룩한 존재가 된 것이다.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며 거룩하신 그분은 우리를 온전케 하셨다. 그러하므로 우리는 그분과 함께 거할 수 있는 것이다.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다. 이것은 실제다. 나의 필요를 누구에게 구하는 것이 합당한가? 이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의탁 드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다.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가? ‘로 부터의 구원이다. 죄는 무엇인가 나를 위한 삶으로부터의 구원인 것이다. 주인이 나였던 삶에서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이 구원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앞서 우리의 주되신 그리스도께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물어보면, 그분은 반드시 답을 주신다.

-       은혜와 평강은 오직 주님께로만 온다.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우리는 은혜를 이미 입었다. 자격이 없었지만 적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역으로 죄에서 건짐받고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들이 되었다.

-       평강은 영어로는 peace이고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다. 이는 근신과 두려움 걱정과 반대되는 말이다. 4: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해준다. 기도할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정리 :

1) 우리는 부르신 이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청지기직을 가지고 있는가?

2) 우리의 신분은 충분히 거룩한가? 아님 온전히(완전히) 거룩한가?

3) 은혜와 평강은 누구로부터 오는가? 나는 평강가운데 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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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개요 및 배경

1.     저자 : 사도바울(1:1, 3:1)


2.     정경에서의 위치

A.     사도바울의 서신 중 최고의 서신 – J.아르미타지 로빈슨-

B.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아름답게 완성시키는 서신이다.

로마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6:8)’라는 구절을 발견 할 수 있고 골로세서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으며(3:1)’라는 구절을 볼 수 있고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것이다(2:6)’라는 놀라운 구절을 발견한다.

C.      우리는 이 서신에서 고요한 정막을 지나며 성소의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게 되고 안식과 묵상, 그리고 예배와 평강의 분위기에 압도 당하게 된다. – 무레헤드-


3.     기록 연대

A.     골로세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 중 하나

B.      바울이 로마에 처음 갇혔을때로 추정된다. (AD 60년 직후)


4.     수신자 : 에베소 교회 및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


5.     배경

A.     에베소는 로마령 아시아의 수도로서 다이아나(아데미) 신전과 거대한 극장, 유대인 회장이 있던 곳이다.

B.      사도바울에서의 에베소 사역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i.         유대인들과 변론하며 회당에서 담대히 말씀을 전함

                        ii.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함

                       iii.         (20:21) 하나남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함

                       iv.         방언의 기적과 장사꾼들의 방해등이 있었던 곳

                        v.         3년간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한 일

                       vi.         한 세대가 채 지나지 않아 에베소 교회는 처음사랑을 버렸음(2:1~5), 이 일은 바울 서신 이후의 일임


6.     주제

A.     비밀 : 비밀이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에는 계시되지 않은, 그러나 이제는 알려진 놀라운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 윌리암 맥도날드-

B.      사랑


7.     개요

A.     1-3 : 교리적인 내용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자의 신분)

B.      4~6 : 실천적인 내용 (주님 안에서의 신자의 상태)

C.      첫 부분은 우리의 기업을 제시하며, 나중은 그 풍성한 축복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나타날 삶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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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한 죄,습관들을 극복하는 법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열왕기하 18:5~6)”

 

믿음의 경주에서 버리지 못한 죄, 습관들로 인하여 계속해서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지 못하고 낙담하거나 뒤로 뒤쳐지는 많은 믿음의 경주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열왕기하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의 행동을 통해 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은 여전히 몇 가지 우상들을 남겨두고 섬겼는데, 히스기야왕은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결정과 더불어 행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가 우리가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과거의 죄, 습관들 그리고 육신적인 좋지 못한 것들을 제거하고 이길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특별히 5절 말씀과 6절 말씀에서 2가지 구절이 히스기야왕이 모든 우상을 제거할 수 있는 비결로 보여집니다. 두 구절은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여호와께 연합하여 입니다. 그는 우상을 제거함에 있어서 철저히 자기 자신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상들을 제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여호와와 연합하였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여졌던 것입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옛육신의 습관과 죄악들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는 비결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된 모습과 습관들을 앞에 두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전히 옛육신의 열심과 옛육신의 방법들로 이것을 극복하고자 애씁니다. 이러한 것들을 조금은 도움이 되는 듯이 보이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실패하고 마는 모습을 여러 번 경험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육신의 좋지 못한 것들은 오직 성령으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를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을 의지하였을 때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는 죄악된 습관들에 더 이상 빠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건넜지만 그는 물에 빠지게 됩니다. 왜 그는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두려움에 빠지게 한 것입니까? 그것은 그가 주목하고 바라보았던 주님으로부터 시선이 다른 것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동일하였지만 그는 어느 순간 영광스러운 주님을 놓치고 주위의 환경을 바라보아서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주님과 동행하게 될 때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 때 죄악된 삶과 이전의 헛된 습관들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놓치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금 이전의 육체의 습관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그 죄를 짓는 원인의 실제는 주님과 멀어졌기 때문에 다시금 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죄악으로부터 건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주님이시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은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과 계속적으로 동행하는 삶(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만이 우리의 모든 좋지 않은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KEY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주님과의 임재를 계속적으로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버리지 못한 죄, 습관들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열왕기하 15:3~4)

 

열왕기하를 읽다 보면 위와 같은 구절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증거되는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특별히 제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두 문구 입니다.


첫 번째로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라는 구절입니다. 이는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희 또한 많은 이스라엘의 왕들과 같이 주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많은 것들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주님 앞에서 행하는 많은 선행들과 깨끗한 양심으로 성도들과 불신자들을 섬기는 많은 행위들이 있습니다 이는 주님 앞에 참으로 값진 것들임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를 읽으면서 제 마음에 주님께서 묵상케 하시는 말씀은 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많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주님 앞에 정직히 행하므로 주님께 칭찬을 받았으나 한가지 크게 잘못한 점이 있음을 성경은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왜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을까요? 여러가지 많은 이유가 있겠지요, 많은 이유 중에서 두 가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위의 말씀에는 백성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백성들이 그 산당을 원해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두 번째로는 그 산당이 계속적으로 있어 왔던 것이라 그것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분명하고도 절실한 목적이 그 왕들에게 없었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 두가지를 개인적으로 묵상케 되었습니다. 이제는 거룩한 신분을 입은 자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이지만, 때로는 하나님 앞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 나의 모습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이지 않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둘째는 그 동안 습관적으로 가지고 있던 죄악된 습관들,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에도 알게 모르게 육신적으로 행하는 습관들을 큰 위험의식 없이 계속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처리하지 않고 그냥 간직하고 있는게 없는지 묵상케 되었습니다. 분명히 저에게는 두 가지 모두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의식하는 행동, 그리고 아직 여전히 버리지 못한 옛 육신의 습관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거룩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산당을 완전히 없애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두고 주님께 기도하며 산당을 완전히 부수어 버리길 소망합니다. 특별히 히스기야 왕이 이 산당을 제거하는 걸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말씀 전체는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는 우리 안에 있는 남아 있는 산당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님앞에 회개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조금씩 남아 있는 옛 육신의 습관들과 주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우상들이 온전히 제거되어 거룩하신 주님만이 우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역사하길 소망합니다.


"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그분은 하나님이면서도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셨다.

 우리가 이땅에서 잠시 받는 고난은 그분께서 받으신 고난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난이 닥칠때 우리는 그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절실하며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이 배우신 순종함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찾기가 어렵다. 우리에게 고난이 닥칠때 우리 마음에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배우신 순종함을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아니 고난을 주시는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고난 자체는 우리에게 피하고 싶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이 친히 배우신 순종함을 우리도 배울 수 있다면 그 고난이 다른 어떤 교훈보다도, 다른 어떤 배움보다도 더욱 우리에게 빛난 보석의 역할을 할 것이다. 나에게 닥치는 고난을 통해서 주님께서 친히 배우고자 하셨던 그 고난을 배우길 소망한다. 비록 힘들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때도 그분께서 친히 홀로 담당하셨던 그 길을 묵상하며 그 분이 배우길 원하셨던 그 순종을 나도 배우길 원하며 앞선 선진들이 배우고자 했던 그 순종함을 나도 배우길 원한다.

 그것이 이땅에서만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우리가 아버지를 뵙게 될때는 더 이상 경험적으로 배울 수 없는 일이기에 이 땅에서 이 일을 피하고 괴로워 하기 보다는 기쁨으로 능동적으로 이것을 천국을 침노하듯이 나의 것으로 체득하며 배우는 것이 이땅에서의 복된 삶이라 여겨진다.


주제 : 하나님의 부르심!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  사도바울의 부르심과 삶의 소망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의 특징.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사도->보냄을 받은자,대리자.

우리의 사도 -> 그분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는 분

우리의 대제사장 -> 그분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표하심.

 

11: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 삶.

(시편 84 :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  하늘을 사모하는 것, 나의 하나님은 나를 부끄러워 하실까?

 

11: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상주심을 바라본 모세

 

11: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  더 좋은 부활을 바란 선진

 

12 :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믿음의 선진들, 주를 바라보는 것.


무거운 것 -> 물질을 소유하는 것, 가족간의 유대관계, 안락함을 사랑하는 것, 이동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 등.

얽매이기 쉬운 죄 -> 특별히 불신의 죄..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 믿음의 삶이 반드시 승리를 가져오는 확신 필요.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모범을 보이신 주님처럼 우리도..

출애굽기 35:31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며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창조로 인하여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원래 내것이 없으며 주신이인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것들은 그대로는 사용하기 어려우나,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충만하게 될때 그 모든 것들은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주의 영이 충만하게 될때, 성령충만할때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보기 힘든 것들을 하게 되며,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것들을 실제적으로 경험케 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주의 영이 충만할때 우리는 그 가운데서 빛을 발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모든 일들 가운데 주님의 빛을 드러내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모든 이들에게 각자의 재능을 주시고, 그 재능이 성령충만함으로 쓰여지게 될때 주님은 빛을 발하십니다.

오늘도 평범한 하루이지만, 내안에 주님께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나를 내어드림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빛을 나도 보고 내 주위의 사람들도 보게 되길 소망합니다.

 

마태복음 6:44-4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주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빛을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심으로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동일하게 비추시며 주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은혜는 동일하며,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없습니다. 나같은 죄인도 끝까지 인내하시며 그 은혜를 계속 부어주십니다.


사람은 사람을 차별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누구도 차별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단, 이 땅이 끝나는날 모든 인생이 죽음을 통과하고 그 분을 보게 되는날 그분은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그 전까지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은혜를 베푸시는 한량없는 주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계속 주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든이들이 이 진리를 알기를 소망하고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사는 죄악에서 벗어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뜻대로 사는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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