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우리에게 아니 인생에서 항상 아픔은 찾아온다.
그것이 육체의 아픔이든 정신적인 아픔이든 항상 우리에게 아픔은 찾아온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가?

몸이 아플고 힘들면 기본적으로 몸은 쉽게 짜증내고 화가 난다.
이것은 육체의 한계같기도 하지만, 예수님도 쉽게 짜증내고 화를 내셨을까?를 생각해보면 꼭 육체의 한계로 인한것은 아닌것 같다.

예수님은 많은 순간 육체의 한계의 순간에 이르르셨지만, 짜증과 화를 내시지는 않으셨다.
결국 인간의 몸은 한계가 있지만, 육체의 한계로 인하여 짜증과 화가 나는것은 아닌것 같다.
결국 그 인간 속에 있는 육신의 발동으로 인하여 짜증과 화 불평 불만이 나오는 것 같다.
불평과 불만은 분명 성령의 열매는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짜증, 화, 불평, 불만이 있다면 이 모든것은 육신으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것 같다.
결국 그 육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나의 영혼에서 제어하지 않고 그대로 하게끔 허용하는 것이다.

요즘 고민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나의 관점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 나의 경험 그 모든 것또한 항상 한계가 있으며 정확하지 않으며 나 또한 아주 극일부분만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아니 나의 가치관으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평가 판단하기에는 항상 부족함이 넘치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것 100%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도 사실은 100%라기보다는 일부분만 보는것 뿐일 것이다.
인생의 지혜에는 한계가 많고 지식에는 더더욱 한계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 같다.
그것은 전체 시대적으로도 그렇고, 나의 지역적인 한계로도 그렇고, 시간적인 한계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나의 가치관과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것 같다.

어떠한 관점과 어떠한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더 큰 계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이 땅에서 많은 이들이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닐까?
그것만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안겨줄 것이다.

가치관, 옳고 그름보다 중요한 가치관,
그것은 다른이들을 사랑하는 것.

이러한 것이 나에게 없다면 주님 앞에 그것을 달라고 구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지만, 지금은 사랑을 구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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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3주전에 내 개인 일기장에 쓴 글인데, 지금의 내 상황에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인 것 같다.
지금의 현 상황에서 나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지금 내가 주님 앞에서 풀어야 할 숙제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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