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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코로나19를 대하는 신앙인의 자세

by ezrabible 2020. 2. 23.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이제는 누구나 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고 감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잠복기에도 전염이 가능하므로 우리 주변에 누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최대한 본인이 조심해야 하나 그 또한 완벽하게 차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두렵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 어떤 사람도 죽음 앞에서 담담해지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특징때문일까?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행동을 쉽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전혀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질문을 통해서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1. 신천지 교인들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이번 바이러스 확산 사태에 큰 영향점을 준 것이 신천지교회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사들과 정보들이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신천지 교인들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한 부분을 쓰려고 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일반적인 상식으로 죄인과 죄에 대해서 구별해야 함을 알고 있다. 신천지에 대한 교리와 그들의 행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부감과 어려움을 준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신천지에 대한 교리와 신천지를 만든 이들에 게 근거한다. 잘못과 비판에 대해서는 신천지교회를 만든 그들에 대해서 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에 빠지고 잘못된 내용을 믿는 또 한 명의 영혼인 신천지 교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지금처럼 대해서는 안된다.

 그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의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며, 때로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족일수도 있다. 그들은 왜 신천지에 빠졌으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규명하고 그 원인에 대해서 해결해야지, 안타깝게 이단에 빠져있는 이들을 정죄하거나 분리시키는 행동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사실과 멀다.

 

 가장 안타까운것은 교회 입구에 신천지 OUT이라는 조금은 섬뜩한 표어를 붙이고 그것을 아무런 고민 없이 행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물론 신천지에서 교회에 들어와서 포교활동을 하면서 교회의 성도들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양 떼를 보호하려는 마음은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그렇게 자극적인 신천지 OUT이라는 행동으로 우리들의 양 떼를 보호해야 했는지는 질문해봐야 한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을까?

 

  신천지 OUT이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표현알 한 이유는,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이 쉽게 그들의 포교활동에 넘어간다는 것때문이다.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신천지 교인들보다 성경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그들은 기존 정통 기독교에서 일부 잘못된 내용들을 정확히 지적하고 그 부분을 공격포인트로 삼는다. 거기에 대답하지 못하거나 의문을 가진 기존의 성도들이 결국 신천지의 교리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단들의 교리는 아주 계획적이고 치밀하다. 그리고 그 교리의 대부분은 사실에 근거한다. 그래서 위험한 것이고 일반 성도들이 쉽게 빠지는 것이다.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그들의 교리에 대해서 이해하게끔 교육하고, 우리가 믿는바 성경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믿음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 일에 상당히 소홀히 대하고 있다. 여전히 활동 위주의 사역과 단순히 사람들을 모으는 일에만 급급하다.

 

2. 광화문 집회금지에도 예정대로 강행한 전광훈 목사

 신천지 OUT이라는 문구도 부끄럽지만, 정부에서 광화문 집회를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집회를 이어가는 전광훈 목사를 보면서 우리 기독교계의 참담함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그는 왜 이렇게 집회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그 혼자만의 힘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전광훈 목사를 따르는 많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목사는 신도들이 만든다.

 

 모든 책임은 리더가 지지 않는다. 한국의 특성은 공동체 문화의 힘이 강한데, 대형교회와 일부 유명한 목사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대중들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광훈 목사는 그러한 것을 원하는 대중 그리스도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이러한 심각한 상황에도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이슈와 싸움에 자신의 모든것을 올인하고 있을까?

 

3. 중국인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우리들 중에 혹, 어떤이들은 그들이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피하거나 혐오, 차별하지 않고 있는가? 중국인 개개인은 잘못이 없다. 중국 정부, 그리고 바이러스가 발생하게 된 정확한 원인이 밝혀져야지 그 원인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잘못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아직은 원인도 모르고 어떻게 전파되고 있는지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우리 역시 중국인들처럼 도망치고 싶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와 경제적인 이유로 중국인들의 입국을 아직까지 허용하고 있다. 경제는 망하더라도 다시 복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어떠한 정치적인 이슈도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결정을 하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중국인들을 혐오해선 안된다. 그러나 중국인들을 통해서 전파되는 바이러스는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전면적으로 차단했어야 했다. 지금은 이미 늦었다. 지역감염이 시작된 시기이므로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바이러스는 계속 전파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이성적인 행동과 신앙적인 믿음의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성적으로 현재는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언제든지 바이러스가 걸릴 수 있음을 인식하고 개인 청결과 마스크 착용 등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 조정이 필요하다면 다양하게 조정을 해서 최대한 이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적인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과도한 불안과 불신앙은 우리 삶을 망쳐버릴 수 있다. 적절한 불안과 의심은 신앙에 도움을 줄 수 있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충분히 불안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서 현재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너무 많은 소식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세도 중요하다. 

 

 최소한의 뉴스는 봐야겠지만, 오랜시간 뉴스에 노출되면 더 불안해지고 상황을 확대 해석할 수 있는 경향이 사람들에게는 있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소식을 접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무너지지 않도록 잘 가꾸어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이기에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 

 

 가장 먼저는 중국이다. 그리고 대구도 사랑이 필요한 곳이다. 이러한 곳에 작은 손길을 내밀고 기도해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최상의 의무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안,밖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내적으로 자신의 안정을 지키면서 외적으로는 사회를 돌아봐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더욱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들의 부족함과 실수로 그리스도가 욕되게 하는 행위를 우리 스스로 하고 있지 않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철저하게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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