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에세이

천국에서의 추억

by ezrabible 2019. 12. 22.



선교지에서 한국으로 돌아온지 3년이 지났다.

이제 한국에서의 삶이 적응이 되어 문득 문득 언제 내가 그곳에 있었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잘 지내고 있을지 떠오른다.


여러가지로 많은 고생을 했었고, 좋은 시간도 많이 보내고, 인생의 다양한 관점을 넓혀 준, 나에게는 너무나 귀중하고도 아픈 시간들이었다.

슬픔도 많고, 기쁨도 많았던 시간. 그리고 절망과 괴로움에 맘 아파했던 시간들이 그곳에서의 삶이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지냈다는 것이 최근에는 잘 믿겨지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곳에서의 삶이고, 영화나 드라마 속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같이 느껴진다.

내가 이곳에 많이 적응이 된것 같다.


신기한 것은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추억의 영상이 되어 지금의 내 삶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게 된다.



이곳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에서 살아갈때를 희믜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선교지의 아픔과 슬픔과 기쁨이 모두 추억의 영상이 되어 현재의 내 삶에 여전히 살아 있는것 처럼,

이땅에서의 삶의 아픔과 슬픔, 기븜이 모두 추억의 그림이 되어 천국에서의 삶에 여전히 살아 있을 것 같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장 4절)



다시는 사망과 애통하는것과 슬픔과 아픔이 없는 그곳이지만,

이땅에서의 슬픔과 기쁨과 추억들이 여전히 살아서 기쁨으로 승화되는 그곳.


천국을 소망한다는 것은

이땅이 삶의 천국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고,

이땅에서 겪은 그 모든 것들이 기쁨으로 승화되어 영원한 곳에서 추억의 시간이라는 영화처럼 잔잔한 역동성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천국을 소망하는 자들은,

이땅에서의 순간 순간의 삶을 천국에서 기억하게 될 추억의 한 장면으로 인지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수 밖에 없으며,

그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 순간이 모여서 천국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의 사진첩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 추억의 사진첩은 결코 천국에서의 삶만이 더 고귀하다는 이원론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땅의 삶과 부활 후 천국에서의 삶이 신비스러운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큰 관점의 생각에서 나오게 된다.


나는 지금도 천국의 한 순간을 살고 있으며,

이 몸이 죽어 부활 한 그 순간 이후에도 천국을 살아가며,

부활의 몸을 입어서는 다시는 사망과 애통과 아픈것이 없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많은 시간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에, 조금 희미하게나마 영원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게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땅의 삶이 마감하고 살게 될 그곳에서

이 땅의 삶을 좋은 추억으로 승화되어 간직할 수 있다는 것.

심히 대단한 하나님의 섭리 아닌가?


'신앙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19를 대하는 신앙인의 자세  (0) 2020.02.23
천국에서의 추억  (0) 2019.12.22
달을 주신 이유  (0) 2019.09.13
진정한 쉼이란  (0) 2019.07.29
정체성이 흔들릴때  (0) 2019.05.30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  (0) 2019.04.22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