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우리는 항상 새로운 걸 좋아한다. 이미 충분히 들었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색다른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 이미 모든것이 계시되어 있는데, 그 계시된 말씀을 보고 듣고 묵상하기 보다는, 유명한 목사님의 말씀을 즐겨찾는 이들도 있다. 귀를 즐겁게 하고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줄순 있어도 행동의 변화까지 일으켜주지는 못한다.

 사도요한은 새로운 계명을 쓴다고 하지 않았고 이미 쓰여진 옛 계명이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이다.


8절.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옛계명과 새계명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 가르치는 바가 동일하다. 더 중요한 비중이 있지 않고 모두 비중이 있다. 새 계명은 이전의 계명을 다시금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추어졌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의 어둠을 제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이야기 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그리스도의 빛이 심겨져 있는 것이다.

 

9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이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이들, 하나님의 외아들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이들. 이들이 빛 가운데 있는 자들이다. 빛이 비춰짐으로 인하여 이전의 어둠의 생활에서 벗어나서 빛가운데서 살 수 있는 근원을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셨다. 

 이러한 사실은 행함으로 증명되는데,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 안에 빛이 비춰지고 있다는것이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미워하고 그 미움을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못하는 자들은 어둠에 있는 자들이다. 일시적으로 형제를 미워할 수 있고, 큰 해를 당함으로 인하여 꽤 오랜 기간 형제를 미워할 순 있지만 결론적으로 빛이 그 안에 있는 자들은 형제의 악함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러한 힘은 실제적으로 작동한다.

 

 

10절.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원수같이 악한 일을 행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비록 그 형제의 행동은 미워할지라도 그 형제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되었고 나와 동일한 피를 나눈 형제라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다는 그 사실을 근거해서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속에 거리낌이 없다. 왜냐하면 그 근거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 모든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11절.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아직도 여전히 형제를 미워하는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성경은 어둠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아무리 악한 행동을 했을지라도 어둠에 있으면 갈바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그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왜냐하면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빛의 길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가고 있는 길이 맞는길이라고 착각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눈이 먼자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빛의 길을 볼 수 없을것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빛의 길을 보기를 위해서라도 원수같은 행동을 한 형제를 용서하자. 그가 어떻게 반응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용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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