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11~12절.

11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교회의 사역자는 가난해야 하는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사역자이다.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사역자는 full-time 사역자들을 얘기하고자 한다. 목사, 선교사 등 세상의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고 교회를 세우거나 교회의 양떼들을 돌보는 일에 자신의 삶을 드린 이들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교회의 사역자가 가져야 하는 '이미지'나 '덕목'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롤 모델로써의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이 얘기하고자 하는바와 일치하는지 우리는 항상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목사,선교사는 가난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고정관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선교지에 있을때 재미난 일이 하나 있었다. 선교사들이 차를 살때 한국교회 성도들을 배려해서(?) 또는 의식해서(?) 차의 브랜드에 대해서 고민해서 사는 일들이 있었다. 내가 있던 지역에서는 벤츠가 가장 저렴하였다. 저렴한 벤츠는 100~200만원으로 살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차를 사면 수리비때문에 더 고생한다. 그리고 아우디, 혼다, 토요타 등 일본차들이 많이 있었다. 한국차도 있었지만, 부품구하기가 어렵고 내구성도 일본차에 비하여 좋지 못하였기에 별로 인기가 없었다.

 선교사들은 주로 일본차인 혼다나 토요타를 많이 선호했다. 선호하는 이유중에는 일본차가 확실히 내구성이 좋았고 여러가지로 장점이 많았었다. 선교지마다 차들의 종류가 다르겠지만 내가 있었던 지역에서는 토요타나 혼다가 주로 선호되는 브랜드였다. 그런데 선교사들중에 벤츠나 아우디를 타고 다니는 선교사들은 못본것 같다. 벤츠는 분명 좋은차였으나, 벤츠를 타고 다닌다고 하면 한국성도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난건 벤츠나 토요타나 가격에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오히려 년식이 오래된건 벤츠가 훨씬 저렴한것도 많았다. 벤츠가 더 저렴하더라도 벤츠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면 선교사들은 한국성도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한국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선교사들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국내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은 오죽할까? 얼마나 더욱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성도들은 만족하는것일까? 이는 성경대로 가르치지 못한 교사들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고, 또 한편으로 잘못된 사역자에 대한 '이미지'를 사역자들에게 강요하는 성도들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빌립보서 4장 11,12절 말씀에 보니 사도바울이 어떤 자세로 살았는지, 그리고 본인이 어떠한 형편에 있었는지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으로 사역자는 이렇게 살아야한다라고 결론지을 순 없겠지만, 어느정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성경의 관점들은 있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11절 서두에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분명 사도바울은 이 글을 쓸때는 궁핍하지 않았던것 같다. 그러면서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사도바울은 기록한다. 이 말은 사도바울은 가난할때도 있었고, 부할때도 있었다는 것이고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상관없이 본인이 주님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12절에 구체적으로 그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비천에 처했었다. 그리고 풍부에 처하기도 했었다. 배부른적도 있었고, 배고픈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그 상황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가난한적도 있었고, 부한적도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건 그가 가난하고 부한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상관없이 주님 안에서 풍부함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므로 가장 부요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그 부요한것을 버리시고 이 땅에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지내셨고, 모든 배고픔과 어려움을 친히 경험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때 가난하게만 지내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원래 그분은 부요하신 분이시다. 단지 그 부요함을 이땅에 살때 잠시 버리신것 뿐이다.

자. 다시 원질문으로 돌아와서 사역자는 가난해야한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바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사역자는 가난할수도 있고 부할수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히려  가난에 처하든지 부에 처하든지 그러한 상황에 개의치 않고 주님 안에서 마음을 굳건히 하는 자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역자는 가난해야 한다라고 우리들이 생각한다면, 그것을 사역자들에게 강요할 것이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고 있지 않은 바에 대해서 사역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역자들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은 바를 본인에게 적용하기 위해서 괜한 고생을 하게 된다.
사역자는 부해야 한다라고 우리들이 생각한다면 어떨까? 이 또한 문제가 있다. 성경은 사역자는 부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이렇게 가르쳐 진다면 교회내의 가난한 이들이 힘겨워할 수도 있다.

사역자는 가난과 부, 그 어떠한 것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실 가난해 지는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부해지는것 또한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더욱 어려운건, 가난하든, 부하든 그러한것에서 자유로워지는것 이것이다.
이것은 실로 간단하지 않다. 성경은 항상 '돈'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는데 그 '경계'의 근본 가르침은 '돈'을 가지지 말것이 아니라, '돈'을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돈'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 이다.

교회의 사역자는 분명 '돈'에 대해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그 자유로움이 반드시 가난해야 하는것도, 부해서는 안되는것도 아니다. 때로는 부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가난해 질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그 환경을 보지 않고 주님 주신 환경으로 인정하고 주님 앞에서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께서 사역자들에게 요구하는 덕목이라 여겨진다.

성경이 이와 같이 가르치고 있다면, 먼저는 사역자들도 당당하게 이러한 것을 가르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고, 성도들도 이와 같은 것들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은 바들이 있다면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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