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 예수님께서 심령이 괴로워하셨다.
 - 함께 한 제자중에 한명이 자신을 팔것을 알고 계셨고, 이제는 제자들에게 그 얘기를 해야할 시기가 왔다.
 - 예수님은 무엇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셨을까?
 - 자신의 죽음때문은 아니었을것이고 자신이 사랑을 주었던 제자의 미래의 모습을 봐서일까?
 - 예수님은 12제자 모두에게 배신을 당하였다. 그렇다면 배신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신건 아닌듯 하다.
 - 자신을 판 제자의 앞으로의 인생을 보시고 심령이 괴로워하신듯 하다.
 -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 사랑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다.
 - 심지어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때 조차도 그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시며 괴로워하신다.
 -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들이 '죽음'의 길로 '사망'의 길로 가는것을 기뻐하는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 예수님은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가룟 유다에게 품었던것 같다.

22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 제자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 예수님의 마음은 그 제자를 향해있었지만, 제자들은 '정죄'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다른지를 드러내는가?
 -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를 사랑과 인자로 바라보시고 인도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정죄하고 있으니 말이다.
 - 아 우리 인생의 슬픔이 여기서 있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23절.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 요한복음의 저자는 요한이다.
 -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을 어떻게 바로보시고 인식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 그러므로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 지금도 동일하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며 사랑하신다.
 - 그것을 분명히 인식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게 될것이고, 그 사랑을 전파하게 될것이다.
 - 요한은 또한 예수님의 품에 누워있다. 그냥 누워있지 않고 그 품에 의지하고 있다
 - 우리는 누구 품에 있는가? 그리고 누구를 의지하는가?
 - 우리가 가진 재능,능력, 부인가? 
 - 통장의 잔고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 누구의 품이 가장안전할까?
 - 입으로는 '주님'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실제는 그 예수님의 품안에 있지 않고 통장의 잔고 안에 누워있지는 않는가?
 - 아니면 우리에게 '돈'을 주는 '회사'나 그 누군가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 그 뒤에서 우리를 먹여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할때 우리는 요한의 신앙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제자들은 12명이었으나, 예수님의 품을 차지한건 요한이었다.
 - 그 품안에서 요한은 누워 쉬고 있다.
 - 우리가 예수님의 품을 의지할때, 우리는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
 - 다른것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것들이다.
 - 이것을 믿고 있는가?

24절.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 요한은 그냥 예수님 품에 누워있었다.
 - 그런데 시몬 베드로는 누구인지 물어본다.
 - '베드로' 그는 자신보다는 항상 남들이 어떤지 관심이 많았던것 같다.
 - 경쟁의식도 심했던것 같다.
 - 다른이들과 비교하여 남들보다 자신이 낫다. 자신이 수제자다. 이러한 것들이 있어보인다.
 - 우리도 그렇지 아니한가?
 - 항상 주님 앞에, 성경 앞에 나 자신을 점검하고 비교하기보다는 주위의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가?
 - 혹은 역사속에 있었던 믿음의 선진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가?
 - 혹은 성경속에 있었던 믿음의 선진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가?
 - 그러나, 성경은,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과 나를 비교하라고 하신다.
 - 성경에 비추어서 잘못된것은 고치고, 주님의 뜻에 굴복될것을 요구한다.
 - 세상의 목소리가 아니라, 교회 안의 다른 형제들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 비교하여 나를 살펴보라 하신다.
 - 아 이 얼마나 엄위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말씀인가..
 - 성경에 비추어서 나를 살펴본다면 얼마나 성경과 멀어진 길을 걷고 있는가?
 -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오늘 하루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주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애쓴다. 

25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 아마 베드로가 요한에게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요청한듯 하다.
 - 예수의 가슴에 있었던 요한은 누군지 물어본다.
 - 요한이 물어보는 자세를 살펴보자.
 - 그는 예수님의 가슴을 의지하였다.
 - 우리는 모든것들에 있어서 그분을 의지하고 있는가?

26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 예수님은 그냥 가룟 유다라고 말씀하셔도 되는데, 왜 구지 떡 한조각을 그에게 주는가? 
 - 마지막까지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무리한 해석일까?

27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 그전에는 유다가 사탄의 조종속에 없었던 것인가?
 - 예수님이 조각을 건네주었고, 그 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 결국, 사탄도 우리 주님의 권한아래에 있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다.
 - 결국, 예수님을 팔기로 마음먹은건 사탄이 유다를 유혹해서가 아닌것이다.
 - 예수님을 팔기로 욕심을 가진건 분명 가룟 유다 본인 스스로 정한것이다.
 - 그리고 그 마음을 예수님은 아셨고, 그 일을 행하라고 유다에게 명령한다.
 - 그리고 그 명령 이후에 사탄도 예수님의 허락 하에 유다의 마음속 깊은곳에 들어가게 된다.
 - 순서를 보면, 가룟 유다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본인의 욕심을 위해서 사용하게 된다.
 -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지목하셔서 그 일을 행할것을 명하시고, 예수님의 권한 아래 사탄은 마음껏 유다를 사용하게 된다.
 - 우리가 잘못한것, 범죄한것, 그것들 사탄에게 화살을 돌리지 말자.
 - 대부분의것들은 우리 스스로 범죄한것이다. 아니 모든것일 수 있다.
 - 하나님께서 사탄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사탄은 마음대로 우리를 좌지우지 할 수 없다.
 - 우리를 좌지할 수 있는건 오직 우리가 선택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우리의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할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말씀해주신다. 
 -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때 우리에게 복이 있음을 말이다.

28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 말씀 그대로, 제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 분명 예수님은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오해했다.
- 오늘날도 동일하게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앞날을 예언해주고 계신다.
- 그런데, 우리가 그 말씀을 우리 좋은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 주님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마음속의 욕심때문이다.
 -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마음때문이다.
 -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왕국 건설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주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오늘날, 그 뜻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29절.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 얼마나 예수님의 계획과 차이가 나는가?
 - 예수님이 죽게 되는 것인데,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는가?
 - 우리라고 다를것이 있는가?
 -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나라, 주님의 왕국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그런데, 많은 순간 우리는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 때로는 세상속에서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기도 하며, 때로는 교회 안에서 우리의 왕국을 건설하기도 한다.
 - 교회 안이라고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의 뜻을 모르지 않았는가?
 -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의 뜻이 확실하다고 믿지는 말자.
 - 항상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주의깊게 보는 자세가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의 왕국을 교회안에서 건설하고 있을 것이다.
 - 인간은 원래 그러하다.
 - 얼마나 인간이 욕심이 많고 그 욕심을 본인들도 잘 모르는지 아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는 포장을 벗어버리고 그 깊숲한 내면의 뜻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 참혹한 현장을 보고 있지 않은가?
 - 주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던 십자군 전쟁...
 - 아픈역사를 기억하면서 우리가 그러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 보자.

30절.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 아 역사의 가장 슬픈 현장이여.
 - 유다는 실로 가장 슬픈 현장의 길을 걷고 있다.
 - 그러나 그러한 슬픈 현장의 길때문에 또한 많은 이들이 살아나게 되었다.
 - 우리가 그 슬픈 현장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슬픈 현장을 사용하셔서 축복의 자리로 바꾸셨다.
 - 얼마나 우리 주님의 역사가 놀라운가..
 -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설중의 역설의 역사아닌가?
 - 영광스럽고 전혀 흠이 없는 그분만이 하시 수 있는 놀라운 역사다.

 - 그 은혜 아래서 오늘 하루도 감격하는 하루를 사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의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