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있으면 한국만큼 살기 좋은 곳은 없다고들 얘기한다.
많은 나라를 가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곳저곳들을 많이 다녀봤는데 위의 말이 사실일 수도 아닐수도 있다.

정확히 얘기하면,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원하는것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한국이다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원하는것을 얻을수 있다는것이 살기 좋다는 결론을 낼순 없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밤 12시에도 배가 출출하면 치킨을 시켜먹을수 있고, 집까지 배달을 해준다.
24시간 일하는곳이 주위에 널려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들을 가보면 정말 중심가가 아니고서는 6시 이후에는 대부분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최소한 내가 다녀본 나라의 지역에서는 치킨을 저녁 늦게 배달해주는 곳은 없었다.

그만큼 한국은 낮,밤없이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좋은것일까?
누구를 위해서 좋은것일까?
그렇게 밤,낮 없이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내가 프로그래머로 일할 시절 한국에서는 낮, 밤 없이 일했고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졌다.
그시절 외국출장도 여러번 갔었는데, 프로젝트 기간은 짧았고 그 기간안에 일을 다해야 했었다.
그런데 특이한것은 6시만 되면 같이 일해야될 현지 엔지니어들이 다 퇴근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일을 할 수 없기에 어쩔수 없이 나도 퇴근하면서 답답해 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일해서는 2주 안에 끝내야 할 프로젝트를 끝낼 수 없다는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국은 참 열심히 일한다.
야근하는것이 당연하고 정시에 퇴근하면 눈치를 주고, 일 못하는 사람으로 찍히고 승진에도 어려움이 있다.
일하지 않더라도 저녁에 야근을 해야지 인정을 받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러다보니깐 일의 양도 야근을 해야지만 할 수 있는 양이 주어진다.
그러니 일자리가 더 부족할 수도 있는것 같다.
모두 8시간 일할 양이 주어진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구지 한사람이 12시간씩 일해야 하니 다른 사람이 일할 양을 뺏어오는것 아닌가?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일'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준 일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보다 앞서서는 동물,식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이름 짓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가?
그런데 이 세상 모든 만물, 동물들의 이름을 아담과 하와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지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상상력, 창조력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다.
그것을 이용해서 정말 아름다운 이름들을 동물들에게 지어주었다.
그 일은 행복했었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최초의 일이었다.
그런데 범죄한 이후에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 땀을 흘려야만 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하여도 하나님께서 최초에 주셨던 '일'의 즐거움이 상실되는 건 아니었다.
'일'이 주는 기쁨은 유지되지만 거기에 '고통'이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주시는 기본적인 전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데 이 '일'이 우리에게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독'이 될때 문제다.
그리고 그 '일'이 지나쳐서 우리의 일상생활(가정, 개인의 삶 등)을 헤쳐버릴때 문제가 발생한다.
'일'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위치로 옮겨질때 문제는 발생한다.

지금의 현대 한국사회는 '일'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위치로 격상된것 같다.
그 밑바탕에는 '권력, 부, 명예'등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사람의 기본적인 양심을 무시하고 일을 처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며
인간성을 상실하고 오직 이윤추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들도 해버리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마음을 지키며 일에 임해야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때인것 같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며,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직업에서 기쁨으로 일하는지? 아니면 어쩔수 없이 돈벌기 위한 기계처럼 일하는건지 고민해봐야 한다.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할때 사장의 마인드로 일하는지, 그냥 하루하루 어쩔수 없이 시키니깐 일을 하는건지 고민해야한다.

문제는, 직장에서 만족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지키며 일하는 사람이
가정과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그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교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가르쳐온것이 한국교회의 주소였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으며 직장과 가정과 교회에서의 균형을 항상 가르쳐왔다.
특별히 한국은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상황으로 인하여 많은 우리 부모시대들이 열심히 일해왔었다.
어찌보면 그것은 필수적이었을 수 있으나 지금은 그 상황들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가정들이 무너져있으며, 많은 부분이 '돈'을 위해서 무리하게 '일'하는 분위기 속에 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집값의 문제이며 자녀교육의 문제이며 이 모든것들에 대해서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으나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서 고민을 하고 개인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들은 실천해야 할 중요한 시기인것 같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해온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이것을 되돌아 봐야 한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이 한국사회 속에서 지나치게 일해온 것이 교회 안에도 동일하게 있어왔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교회안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들은 신앙이 훌륭하다고 평가받으며, 그렇지 않은 이들은 반대로 평가받는 분위기가 있다.
이것은 한국사회와 동일한 모습이 교회안에 스며든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경계하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현 시대를 읽을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현 시대를 읽기 위해서는 '역사'를 살펴보고 '교회사'를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과거를 통해서 현 시대의 문제점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수 있는지 분별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건 아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역사를 통해서 분별해야 한다.

교회안에서 열심히 일하여 인정받는 사람들 중에 가정이 무너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또는 교회 안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사회속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가?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주어진 역할을 하며 모든 일들을 기쁨으로 해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대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찾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회속에서 사는것인가?
정말 그런것인가?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는듯하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항상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고,
우리의 믿음으로 인하여 핍박과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그것이 결코 사회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닌것이다.
또한 우리의 믿음으로 인하여 교회에서 충성을 다하지만, 그 충성으로 인하여 가정이 무너져서도 안되는 것이다.
또한 가정을 든든하게 세우기 위해서 가정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을 다함이 우리의 사회속에서 교회에서 해야하는 역할들을 무시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역할들이다.
이 역할들이 지금 이시대에는 정말 어려운 일일까?
이러한 역할들을 잘 해내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보기 어려운 일은 왜일까?
이러한 역할들을 잘 해내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넘친다면,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께 인도받지 않을까?
'믿음'은 '삶'이고 그 삶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언제 어디서든 넘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나도 아직 이러한 향기를 넘치지 못하는 것 같고, 이렇게 향기를 넘치는 사람을 잘 못본듯 하다.
나부터 이러한 향기를 넘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분 앞에서 잠잠히 기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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