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부터 영적인 일과 세상적인 일을 구분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직장에서와 교회에서의 모습이 사뭇 다른것들을 볼 수 있다.
직장에서의 동료들의 평가와 교회에서의 평가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직장과, 교회와 가정에서의 평가가 모두 다르다.

그럼 어디에서 누가 하는 평가가 가장 정확한 것일까?
모든 평가가 잘못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거짓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직장과, 가정과, 교회에서의 평가는 많이 다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물론 직장과 가정과 교회에서의 평가보다 중요한것은 하나님의 평가다.
우리가 이것을 잃어버리면 믿음의 길에서 파선될 수 있다.

우리는 직위와 직분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와 교회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목사, 선교사 등을 더 영적인 사람으로 이해하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목사와 선교사등의 full time 사역자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그들이 어떤 그리스도인들보다도 더 많은 고충과 어려움 속에서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포지션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그리스도인보다 더 영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반대한다.
아니 그러해서도 안된다. 그 사람이 가진 포지션이 그 사람의 영적인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의 영적인 수준(?)을 우리 스스로 평가하거나 판단 할 수 있는 자격은 사실상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우리의 생각속에 있는 것들을 점검 해 보기는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어쨋거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을 더 영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어떤 사람의 메세지가 훌륭하면 그를 더 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메세지의 훌륭함과 그의 영성과는 관계가 있을수도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왜냐면 메세지의 훌륭함은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그 은사를 받아서 노력한 결과로 더 먹기에 좋은 음식이 될 순 있겠지만, 그러한 노력은 주신 선물로 인한것이지 그가 더 영적으로 성숙해서 그런 것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전한 메세지 그리고 그의 삶이 일치된다면 그는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그를 성도들은 존중하고 그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한 메세지와 그의 삶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그의 메세지는 존중받되, 그는 존중받아야 하는 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메세지가 성경적인 메세지인지 검증되어야 하는 것은 성도들의 마땅한 의무다.
모든 메세지를 아무여과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성경에 왜 계속적으로 거짓선지자들을 경계하는 말씀들이 있겠는가?

'제자'라는 말이 신약성경에 269번 나온다. '그리스도인'은 세 번 나오는데, 정확히 얘기하면 예수의 제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처음에 등장했다.
사실상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제자가 되는것을 동일하게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인과 제자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 같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음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되고, 구원받음과 동시에 제자가 되었다고 얘기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제자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일꾼이고 사역자이다.
구원 받음과 동시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사역자들이 된 것이다.
사역의 역할과 시간을 배분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상이하다.
그가 가진 은사와 재능과 배경과 삶의 형태와 지역과 시대와 여러가지것들이 고려되어서 그가 하는일이 정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것의 고려 없이 full time 사역자들을 더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더 영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고전12장 8절에는 어떤이에게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 예언함, 영들 분별함 등을 주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28절 이하에는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행하는 자, 병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것, 다스리는것 각종 방언 말하는것 등의 은사를 주셨다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에서는 모든이들이 선지자와 교사 등을 더 가치있는 일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교회안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 역할을 반드시 해야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인생의 full time을 말씀 연구와 실행, 가르침에 헌신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정말 몇 안된다. 그건 가지고 싶어서 가질 수 있는것도 아니고 주님편에서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러한 역할을 모든 이들이 동경하고 그일이 더욱 가치있는 일인것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교회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교회는 은사대로 섬겨져야 한다. 그것이 성경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주어진 은사에는 더 귀한것도 덜 귀한것도 없으며 모두가 동일하고 똑같이 가치 있는 일이다.

같은 의미로
교회안에서의 일과 교회 밖에서의 일의 중요성은 동일하다.
어떤것이 더 가치있고 어떤 것은 덜 가치있는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그 사람이 그 일을 기쁨으로 할때 그 일이 곧 영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일의 범위와 경계 그 일의 태도에 있어서 정직, 공의, 성실, 양심에 청결함 등이 그것을 영적인 일로 가능케 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순간 그 경계를 단순히 교회 밖의 일과 교회 안의 일로 결론을 지어 버렸다.
그것은 성경과는 멀어진 것이다.
심하게 표현한다면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니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의 속을 그 누가 알랴?

성경은 집안에서 아이들 돌보는 일과, 설겆이 하는일, 그리고 거리에서 지나가다가 휴지를 줍는일, 그리고 누군가를 도와주는일, 그리고 교회안에서의 여러가지 영적인 봉사들,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섬김들 그 모든 것들을 동일한 가치로 두고 평가 하는 것 같다.
그 일의 성격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사실은 그 일을 함에 있어서의 그의 내면의 상태, 동기, 하나님과 함께 행함의 여부 등이 성경이 지지하는 바이다.

내가 직장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일을 하고,
집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아내를 돌보며, 남편을 섬기고, 집안 일을 하고,
그리고 교회에서 주어진 은사대로 그 역할들을 해낸다면
그 어느것 하나 더 귀하고 덜 귀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귀하고 모든것이 가치 있고 모든것이 영적인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과 동기가 어떠한것인가와, 그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주님과의 동햄함이 우리의 일의 가치를 평가 하게 될 것이다.

나는 혹 어떤 일은 귀히여기고 어떤일은 반대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혹 어떤 사람은 더 귀히 여기고 어떤 사람은 덜 귀히 여기지 않는가?
나는 혹 직장과 교회와 가정에서 다른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혹 내 은사가 아닌데, 남의 은사를 탐내지는 않은가?

나는 혹 내 위치가 아닌데 그 위치에서 주는 명예와 인기를 탐하고 있지는 않은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