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창세기 1장 16절.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누가 뭐라고 하든, 성경은 해와 달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해와 달을 창조하신 이유를 창세기 1장 16절에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태양은 낮을 주관하고 달은 밤을 주관한다.'는 분명한 사명감을 태양과 달에게 주셨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빛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매일 새로운 하루가 주어질때 단 '하루'만이라도 태양이 빛을 비추지 못한다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상상해본다면 일단 모든 사람들이 굉장히 두려움을 느낄것 같다.

 그것이 사람들의 첫 반응이라 생각이 든다.

 

 밤에 비취는 달은 어떤가?

 밤에 달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더 이상 밤에 달을 필요로 하지 않는것 처럼 보인다.

 분명 낮에 비하여 밤에 달은 우리에게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달이 사라져서는 안되겠지만, 최소한 현대인의 삶에 달이 주는 영향은 과거에 비하면 그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작은 광명체인 달이 밤을 주관한다고 이야기 한다.

 인류 문명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달이 밤을 주관할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주변의 밝은 조명들로 인하여, 보름달이 이전 과거에 비하여 밝게 비치지 않는다.

 그리고 별들도 이제는 더 이상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인류 문명의 결과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밤의 아름다운 조명들이 하늘의 달과 빛의 밝음을 어둡게 만든것이다.

 그래도 달과 별들의 빛을 없애지는 못하는것 같다.

 

 사람들은 추석을 맞이하여 보름달을 보면서 무엇인가 여전히 소원을 빌기도 한다.

 지성과 이성이 넘치는 시대에, 그리고 과학의 놀라운 발전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것일까?

 '달'이 아무런 능력이 없고 무엇인가 실제로 도와줄 수 없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도데체 

 "왜?"

 

  아마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놓으신 밤을 주관하게끔 하는 그 능력을 거부하지 못하는것 아닐까?

 달에게서 느껴지는 위엄을 어찌하지 못하는것 아닐까?

 

 진리를 아는자들은

 달의 비밀과 해의 비밀을 알고 있다.

 

 달과 해를 통해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1년에 한번 있는 추석.

 평소에는 잘 보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날만큼은 가족들과 모여서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감성에 젖어들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셨기에 자유롭게 우리는 이런 저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달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참 뜻을 알고자 하는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아니, 그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사실 타락한 죄인들의 본성이지만,

 그것을 알 수 있게 해준 것 또한 놀라운 은혜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추석을 맞이하여..

 보름달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창세기에 기록된

 밤을 주관하도록 명령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된다.

 

 

'주제별 성경연구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을 주신 이유  (0) 2019.09.13
진정한 쉼이란  (0) 2019.07.29
정체성이 흔들릴때  (0) 2019.05.30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  (0) 2019.04.22
실존하는 죽음 앞에 선 인생  (0) 2019.01.24
희망을 먹고 사는 인생  (0) 2019.01.24

 

1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절.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하나님께서 어찌 신자를 잊을 수 있는가? 그러한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자는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린것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고, 그러한 감정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옆에서 계시나 전혀 활동하지 않는것 같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우리의 삶에 일어난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영혼은 번민과 근심속에 깊이 빠져든다.

우리의 의로움과 상관없이 원수들은 우리의 의로움을 근거로 자신들의 악함을 자랑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3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일이 지속되면, 아무리 신실한 신자였다고 칭찬을 받는이들도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사망의 깊은 골짜기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일이다.

 

4절.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또한 하나님의 신자로써 의롭게 산 행위들이 존귀케 되는것이 아니라,

악인들의 죄악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인정받게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승리가 악인들에게 있는것 같은 역사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나 흔들릴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지 않고 악인들이 기뻐하는 심각한 어둠의 상황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5절.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시편기자의 마음을 살펴보자.

이러한 암울한 상황과 휘몰아치는 부정적인 마음들 가운데서 시편기자가 무엇을 의지하는가?

그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한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한 마음으로 인하여 주의 구원을 기뻐하게 된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한 것이고,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하여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주변의 상황과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희망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자의 마음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우리의 상황과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은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고, 우리의 통제 밖의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이 하시는 일의 방식,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영역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나타내신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영역은 그 누구도 들어 올 수 없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영역을 악한상황에 내어줄 수는 있다.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영역을 선함에 내어준다면, 우리의 마음은 선함과 기쁨으로 가득 넘치게 된다.

 

6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상황이 변하지 않았지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결국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그 근거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덕을 생각했다.

 

새번역성경에는 이 은덕을,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대해주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너그럽게 대해주셨다는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악인들이 잘되고, 자신의 의로움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것이 어떻게 하나님이 너그럽게 대해주셨다는것인가?

 

주변의 상황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셨지만,

이 시편기자의 신자의 마음만큼은 악한자들의 마음대로 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은혜다.

상황은 악한자들이 승리하는것 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마음의 영역들을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하시고 승리로 이끄셨다.

 

 

 

1절.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경건하게 살면, 그들의 인생이 복받고 그들로 인하여 주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흘러 넘칠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충성되게 살아야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해피앤딩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많이 본다.

하나님께 경건하고 충실한 자들이 불의의 사고나 피할 수 없는 깊은 병환에 걸리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역사가운데서 볼 수 있다.

 

2절.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절.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오히려, 자만하고 교만하며 거짓을 이야기하는 악한 자들이 해피앤딩으로 끝나는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3절에 하나님께서 거짓과 아첨, 자랑의 혀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끊으실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보기에, 그리고 그들이 보기에 거짓된 혀와 아첨과 자랑의 혀가 이길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실제 그렇게 되어보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하실수 없는것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5절.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이러한 불합리하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가운데 많은 진실된 자들이 탄식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들이 일어난다.

경건한자들의 비참한 결과를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많은 이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들 모두를 하나님께서 안전한곳으로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안전한 곳은 도데체 어디인가?

우리의 삶의 환경의 개선인가?

악한자들의 멸망인가?

아니면, 다른 어떠한 시공간을 초월한 위치인가?

 

6절.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안전한 도피처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순결하고 아주 여러번 정제된 은과도 같다.

좋은 글들은 여러번 탈고를 거친 글들이 좋은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뛰어난 작가가 여러번 탈고를 거친것보다도 훨씬 더 완벽한 탈고를 마친 작품이다.

최고의 책이며, 실제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셔서 인간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의 현장이자 보증이다.

그 누구도 어떤 악인도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갈 순 없다.


7절.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8절.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여전히 비열한 인생이 높임을 많이 받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것이고, 악인들은 계속해서 승리한것처럼 보여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이러한 악인들의 횡포와 정의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 정의의 실현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우리는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지만,

우리가 정직하고 의롭게 산다고 세상이 의롭게 변한다는 보장은 없다.

보장이 있더라도 우리의 때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떠나서 우리가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영원히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의롭게 살아가는것을 보장해주고,

의롭게 산 결과에 대한 선물과 열매를 안겨다 준다.

 

의롭고 경건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은것 같은 믿음의 선진들, 믿음의 동지들의 삶의 끝에는,

하나님께서 위로와 칭찬의 말씀이 기다리고 있다.

그 달고 오묘한 말씀을 받아 누릴자가 결코 많지 않음을 알고 있는가?

 

여러분의 삶의 짐의 무게는 어떤가요?

 

마태복음 11장 28~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나라

 

휴가시즌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바캉스'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놀고, 먹고, 즐기고 등등이 떠오른다.

아니면, 이곳저곳 많은곳을 다니는 그러한 여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캉스(vacance) 말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인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또는 "비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많은 변화로 인하여 이러한 비움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너무 삶이 고되고 힘들어 모든것을 내려놓고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속에서 볼 수 있는듯 하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비울때 다시금 채워지는걸 경험하는 문화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참된 쉼, 휴가란 무엇일까?

 

우리는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인생은 각자 나름의 무겁고 힘겨운 짐을 지니고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는 말씀이다.

 

28절보다 중요한 말씀은 29절인데,

이유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쉬게 하실 수 있는지와 어떤 쉼을 줄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29절에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29절 마지막에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우리 삶의 여러가지 문제들, 어려운 점들, 짐들의 원인을 곰곰히 따져보면,

대부분 걱정과 염려, 근심등 마음의 문제임을 우리가 알 수 있다.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초조함으로 인하여 현재를 잘 살지 못하는 현상들.

그리고 현재의 괴로움이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들.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의 대부분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쉼은 우리의 환경이 나아지거나,

삶의 불편한것들이 해소되고 더 나은 삶이 되는것이 아니다.

분명 우리의 삶의 배경, 환경들은 이전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고, 더 좋아질 수도 있다.

주변의 환경들, 나의 일의 성취 등 많은것들이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할지라도 나의 마음은 괴로울 수 있다.

많은것들이 이전보다 더 나빠지고 있더라도 나의 마음은 기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은 어떻게 기뻐하고 평안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쁨과 평안 가운데 계신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본인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 이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배우게 될때, 우리도 진정한 쉼을 얻고 누릴수 있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울때 우리 삶은 항상 휴가처럼 쉼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멍에를 주신다고 하셨다.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멍에' 를 잘 메고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게 될때,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멍에의 특징 중

첫번째는 쉽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가볍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감당하고 짊어지고 있는 짐이 혹시 무겁고 어려운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멍에가 아닌 나만의 멍에나, 다른 욕심의 멍에를 메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주제별 성경연구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을 주신 이유  (0) 2019.09.13
진정한 쉼이란  (0) 2019.07.29
정체성이 흔들릴때  (0) 2019.05.30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  (0) 2019.04.22
실존하는 죽음 앞에 선 인생  (0) 2019.01.24
희망을 먹고 사는 인생  (0) 2019.01.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1:21~22)

 

 

 모든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큰것보다는 안전하고 미래가 보장된 삶을 원한다. 그래서 안전한 직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등을 원한다. 경제적으로 안전한것처럼 보이는것이 나의 미래의 삶도 보장해 줄것이라 생각하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위의 반응과 그동안의 경험이 그것을 지지해 주는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사실이다. 가끔 변수가 생길때도 있지만 분명히 경제적 안정이 우리의 삶을 조금 평탄하게 해주고 우리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한가지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데, 경제적 안정, 안정된 직장, 안정된 삶이 우리의 믿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마태복음 21:21절 말씀은 전혀 적용하기 힘든 말씀으로 보여진다. 우리 삶에 산을 바다에 옮길 필요도 없으며 그러한 일은 정말이지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날 수도 없을것 같은 우리의 경험적 믿음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말씀에 기록된 믿음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믿음의 수준을 가지고 있을까?

 

그건 아마도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가 믿음을 실천하고 믿음을 배우려고 애쓴 흔적을 애초부터 없애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안정적인 직장, 우리의 안정적인 미래, 우리가 만들어 놓은 여러가지 안전장치들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시스템이 주는 안정적인 장치들을 더 신뢰하려고 노력하는건 아닐까?

 

믿음의 삶에 있어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것이 더 믿음을 배우고 실천하기에 좋은 환경적 요소라고 생각이 된다. 구지 노력해서 안정적인 환경을 없애면서까지 삶을 불확실성으로 몰아갈 필요까지는 없을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사회시스템이나 다양한 안정적인 장치들로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불안감을 없애려는 목적이 크다면, 이건 한번 깊이 고민해보고 하나님과 단둘이 얘기해봐야 할 영역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왔지만, 실천하는 믿음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잘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우리의 믿음의 역량, 믿음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우리를 좀 더 불확실성이 큰 환경으로 몰아가는 적극적인 태도도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불확실성이 큰 환경이 우리 앞에 다가올때 분명한것은 우리가 믿음을 실천하고 경험하기에는 더더욱 좋은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불확실성이 적은 환경 속에 사는 사람은 믿음을 실천하고 경험하기에 좋지 않은 상황과 환경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불확실성이 크면 클 수록, 우리의 믿음의 실천과 경험의 가능성이 더 좋아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생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계 문제가 아닌 산을 들어 바다로 던지게끔 하는 믿음도 원하신다. 그러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가? 아니 시도하기에 너무나 벅찬 과제인가?

 

그렇다면 구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왜 성경책에 기록하셔서 우리를 괴롭게 하시길 원하셨겠는가?

분명 우리를 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우리로 이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살으라고 하는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믿음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으신 것이다.

그 눈을 들어 하나님의 역사를 보려고 시도하는 자들만이 이 놀라운 믿음의 역사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자.

"나는 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

 

위 질문에 답이 어렵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떤가?

"하나님께서 마음을 먹으신다면, 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 쉬운일인가? 어려운 일인가?"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인생에 위기가 닥칠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항상 피난처가 가장 가까이에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 되시고, 하나님께 피신하는 길과 방법은 즉각적으로 가능하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피하여서 가장 안전한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에게 네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은 무슨의미일까?

 

원문에는 내가, 너희가 란 주어가 없다.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내 영혼에게,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다.

이거는 다윗의 독백인가? 아니면 실제 원수들의 비난을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중요한건,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임이 분명하고 확실하지만

그것에 대한 의심은 원수들이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고,

내 자아가 그것을 제공할 수도 있다.

자기의 생각, 여러가지 의심들, 복잡한 환경들이 나에게 메세지로, 하나님이 아닌 다시금 네 산으로 도망하라는 메세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고 있다.

온전한 의가 이루어졌지만, 온전한 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에는 의로운 일들이 넘치지만, 여전히 죄악들도 넘쳐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죄악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여전히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들의 마음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고 계신다.

심지어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나의 심성 깊은곳까지 감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악인이 그 앞에서 거짓말 할 수 있을까..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사람은 우리가 쉽게 속일 수 있으며, 우리도 스스로에게 속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것을 정확히 사실 그대로 보신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악인이 이땅에서 무엇인가 많은 소득을 얻는것처럼 보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잔의 소득은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 실로 그들의 슬픈 미래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므로, 의로운 일을 좋아하신다.

우리가 정직히 하나님 앞에서 서고, 정직히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대할다면,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매순간 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처럼 의로운 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로운 일을 좋아하는 자들은,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매순간 보고, 경험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다 큰 좌절과 혼돈속에서 방황할때가 있다.

삶의 고난은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고난은 그저 우연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고난일 수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고난일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되었든,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우리는 그 속에서 숨겨진 하니님의 뜻을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러가지 고난중에서 우리를 아주 혼란스럽게 하고,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는 고난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때 극도로 어려워하고 심한 경우 자살에까지 이르게도 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것이 필요한데,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사실상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주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섭리가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승승장구하던 사업가가 하루아침에 사업이 망하는 경우가 있고,

대기업 임원에 대표까지 승진하였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권고사직등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어떠한 일도 못찾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그뿐인가? 잘 나가던 운동선수가 부상으로 인하여 더 이상 운동선수 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유명한 연예인이 교통사고로 더 이상 연예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위기에서 잘 이겨내는 사람도 있지만, 계속 어려움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위기가 본인에게 다가왔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특별히 내 정체성이 어떠한 사회적인 위치나 직업에 올인되어 있던 사람들의 경우 아주 위험할 수 있다.

그들의 정체성은 사회적 위치와 직업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러한 위치와 직업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큰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의 자존감은 극도로 떨어지고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으로 인하여 심한 우울증에 다양한 정신질환을 겪게 된다.

 

이러한 일이 내 삶에 벌어질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1:11~12)

 

 

예수님이 광야로 시험받으러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고 진정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것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께 '내 사랑 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말을 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 내셨다.

 

아주 적극적인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다만, 광야의 시험전 성부 하나님의 처방전이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이 말 한마디였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 하나님의 태도 였다.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리고 이 천지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위치에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결과물을 낼때 그 결과물로 인하여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많이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우리들이 좋은 결과물을 내지 못할때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비난, 무관심한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세상은 실로 그러하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갈것이기 때문에 열매와 결과물들에 우리의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신다.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기뻐하신다.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하나님의 작품이므로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들이다.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으로 기뻐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다시 일어서서 어깨를 당당히 펴고, 우리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신 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실로 그러하기에

우리의 믿음을 어디에 두고 사는지가 중요하다.

 

 

'주제별 성경연구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을 주신 이유  (0) 2019.09.13
진정한 쉼이란  (0) 2019.07.29
정체성이 흔들릴때  (0) 2019.05.30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  (0) 2019.04.22
실존하는 죽음 앞에 선 인생  (0) 2019.01.24
희망을 먹고 사는 인생  (0) 2019.01.24
    •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삶을 제시) 12:1~15:13

  • 하나님과 교회와 형제들을 향해 12:1~21

  • 국가와 세상을 향해 13:1~14

  • 이웃 및 믿음이 연약한 자를 향해 14:1~15:13

    • 결론 15:14~16:27

  • 저술한 목적-바울의 이유들 15:14~21

  • 기도 요청 - 바울의 계획 15:22~33

  • 기도할 이유 -바울의 인사 16:1~27

 

■ 하나님과 교회와 형제들을 향해 12:1~21

 (1) 하나님을 향해서(1~8절)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절.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으니라

6절.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절.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절.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1) 로마서의 결론

 - 1절 ' 그러므로',

 - '자비하심으로', ' 권하노니'

 - 로마서의 결론구절이다.

 -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로움으로 권한다. 강제로 또는 억지로 하게끔 하지 않으신다.

 

2)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자.

 - 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2절 '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무엇인가?

 - 레위기에 보면 제사 종류중에서 속죄제와 번제가 나온다. 그 구절을 잘 보면 번제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볼 수 있다.

 -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제사는 이 번제다.

 - 이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내용에 대해서 뒷 구절부터 나온다.

 

 (2) 그리스도인의 다른 신자들과의 관계(9~13절)

9절.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절.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절. 부지런하여 게으리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절.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 9~13절까지는 성도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3) 사회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자세(14~21절)

14절.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절.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절.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절.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 14~21절 까지는 비그리스도인들(믿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관계 해야 하는 지 다루고 있다.

 - 특별히, 15절 말씀을 보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것',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것', 우리는 그들과 함께 즐거워 하며 함께 울어 주는가?

 - 우리에게 원수처럼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

 - 이는 어떻게 우리가 할 수 있는가?

 

■ 국가와 세상을 향해 13:1~14

 (1) 국가의 권력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태도(1~7)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절.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절.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절.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절.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절.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절.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1) 하나님은 세상의 권세자들을 어떻게 보시는가?

  ㄱ) 4절 ' 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의 사역자', 6절 '하나님의 일꾼'

    - 그들이 그리스도인인지 비그리스도인인지 알 수 없다.

    -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권세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다.

    - 권세가 하나님으로 부터 왔기때문이며, 그 권세를 그들이 임의로 하는 것 같지만, 실제 하나님의 주권과 허락하심 없이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결국 그들의 권세를 주신 그 뒷 배경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권위 앞에 우리는 순종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국가의 위정자는 정치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복종해야할 필요가 있다.

    - 한가지 예외조건이 있다면, 불법에 대해서는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 그렇지 않고 단순히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동이라면 그런것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순종해야 한다.

 

 (2) 이웃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태도(8~14)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 그리스도로 옷 입고 이웃을 사랑하자.

 - 어떤 옷을 입는지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 입는 옷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가짐도 달라진다.

 -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행동할 수있다.

 -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이웃을 사랑 할 수 있다.

 

■ 이웃 및 믿음이 연약한 자를 향해 14:1~15:13

 (1) 연약한 자를 생각함(1~12)

 

1절.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절.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절.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절.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절.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절.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절.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절.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절.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절.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 자기의 신앙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여서는 안된다.

 -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신앙양심과 신앙의 기준을 지켜가는 것이 필요하다.

 - 우리의 생각에는 옳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전제가 항상 필요하다.

 - 하나님은 저 형제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2) 형제를 고려함(13~23)

 

13절.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절.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절.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절.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절.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절.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절.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절.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절.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1) 다른 형제를 배려하면서 내가 믿는 바를 행하는 것이 중요함

2) 본인이 믿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함 (믿음으로 행하는 것)

 

 

 (3)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위한 호소(15:1~7)

 

1절.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절.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절.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절.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절.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절.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1) 서로서로 받는것(이해하는것)의 중요성

 - 연합에 있어서 서로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 교리적으로 좀 다를 수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잘못된 것을 행할수도 있으나 그 잘못된 것 보다는 서로를 사랑함이 더욱 중요하다.

 

 (4)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8~13)

 

8절.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절.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절.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절.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절.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사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될 수 있다.

 - 우리가 각자 다르지만, 소망이 동일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

 - 우리의 소망하는 바가 예수 그리스도인가?

 

■ 저술한 목적-바울의 이유들 15:14~21

1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절.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썻노니

16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절.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절.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절.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썻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절.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1) 이방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 - 사도바울이 전했던 하나님의 복음

 - 16절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 18절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 우리는 이러한 사도바울과 같은 관점과 생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 기도 요청 - 바울의 계획 15:22~33

 

22절.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5절.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절.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절. 그러므로 내가 이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절.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절.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32절.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1) 

 

■ 기도할 이유 -바울의 인사 16:1~27

 

1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절.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절.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절.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절.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절.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절.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절.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절.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절.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절.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절.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절.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절.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7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절.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절.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1절.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2절.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23절.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5절.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절.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 Recent posts